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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엔저 겨냥 발언에 외환 당국 대응 주목

입력 : 2014.11.17 12:08|수정 : 2014.11.17 13:21

선진국 통화정책 엇갈려…당국, 국제 공조 강화


박근혜 대통령이 호주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공개적으로 엔저에 대해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은 엔저에 따른 신흥국의 부담을 반영한 것으로 보입니다.

박 대통령은 G20 정상회의 둘째 날인 지난 16일(현지시간) "최근 선진국들이 서로 다른 방향의 통화정책을 펴면서 국제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면서 "주요 선진국 통화가치의 쏠림 현상은 일부 신흥국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명시적으로 일본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최근 일본의 추가 양적완화 등에 따른 엔저가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의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지적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입니다.

이에 따라 외환당국의 대응이 주목되고 있습니다.

지난달 엔저 대책을 발표했던 당국은 구체적인 대응책은 밝히지 않고 있지만 기존 대책의 성과 등을 점검하면서 추가 보완 대책이 필요한지를 살펴볼 계획입니다.

박 대통령은 G20 정상회의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대통령기 전용기에서 엔저를 겨냥한 자신의 발언 배경에 대해 직접 설명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경제가 어려웠을 때 신흥국의 경제적 기여로 선진국도 그 효과를 보지 않았나. 그 덕에 선진국 경제가 좀 회복됐다고 자국 입장만 고려해 경제 및 통화정책을 펴서는 안되는 것 아닌가"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글로벌 경제가 하나로 연결돼 있어 어느 한쪽의 정책이 곧바로 다른 곳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런 취지에서 얘기한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선진국 경제가 침체했을 때 중국 등 신흥국의 선전으로 세계 경제가 지탱할 수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이제는 선진국들이 세계 경제가 새로운 위기를 맞지 않도록 협력해야 할 시점이라는 것을 밝힌 것입니다.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지난해 5월 양적완화 출구 전략 가능성을 언급했을 당시 신흥국에서는 대규모 자금이탈이 발생해 위기를 맞았습니다.

신흥국의 위기는 선진국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선진국의 수출이 불안해질 수 있고 이런 부작용은 세계 경제를 다시 위험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박 대통령도 "자국 여건만을 고려한 선진국의 경제 및 통화정책은 신흥국에 부정적 파급효과(spillover)를 미치고, 이것이 다시 선진국 경제에 악영향을 주는 역파급효과(spillback)를 가져올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국회 시정연설에서 저성장, 저물가와 함께 엔저를 언급했고 미얀마에서 열린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에서도 엔저와 미국의 금리 인상 움직임 등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호주 G20 정상회의에서 현재 세계 경제 상황에 대해 "어떤 나라는 히터를 켜고 어떤 나라는 에어컨을 켜는 상황"이라고 묘사했습니다.

각국 경제가 처한 상황이 다르다 보니 처방전이 다르고 이 와중에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증폭되고 있다고 설명한 대목입니다.

미국은 에어컨을 가동할 준비를 서두르고 있습니다.

미국 연준은 지난달 말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지표가 연준이 현재 예상하는 고용 및 인플레이션 목표에 더 빨리 접근한다면 금리 인상 또한 예측보다 빨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예상보다 빨라질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입니다.

하루 뒤인 일본은 1년간 매입하는 자산을 현재의 약 60조∼70조엔에서 80조엔으로 늘리는 추가 양적완화 결정을 내렸습니다.

추가적인 돈 풀기에 나서겠다는 것입니다.

디플레이션 우려에 시달리는 유럽연합(EU)도 추가 양적완화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는 기본적으로 국제금융시장에서 혼란을 의미합니다.

달러화 강세 국면에서 미국으로 자금이 회수되는 가운데 일본과 유로존 등에서 통화 공급량이 늘어나면서 각국 통화가치가 크게 흔들렸습니다.

엔·달러 환율은 달러당 116엔까지 오른 가운데 내년에 120∼125엔까지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원화 가치 역시 엔화에 연동되면서 1,100원선까지 치솟았습니다.

내년 원화 가치가 강세로 갈 것이라는 주장과 약세로 갈 것이라는 주장이 함께 나오는 형국입니다.

일본의 추가적인 돈 풀기는 엔화 약세를 강화시켜 한국 수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큽니다.

마침 한국의 최대 수출국인 중국 경제가 성장세 둔화로 몸살을 앓는 상황에서 한국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 약화는 부담스러운 부분입니다.

외환당국은 일본이 과도한 양적완화를 하지 못하도록 국제 공조를 통해 지속적으로 '견제구'를 날릴 계획입니다.

각국이 통화정책을 펼 때 스필오버(역파급효과)를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일본의 무리한 양적완화를 견제하겠다는 것입니다.

대통령도 여러 차례 '작심 발언'을 쏟아낸 만큼, 당분간 정부는 국제회의 등을 통해 같은 목소리를 연달아 낼 것으로 전망됩니다.

당국의 한 관계자는 "엔저가 양날의 칼이지만 불확실성을 높이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는 점에서 국제 사회에 견제구를 던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며 "국제사회에 앞으로도 이런 내용을 계속 얘기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당국은 국제사회에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낼 경우 일본의 양적완화를 '자국 경제를 위해 이웃 나라를 어렵게 만드는' 근린궁핍화 정책으로 보는 국제 사회의 여론을 키우는 효과를 볼 수 있스니다.

사실 정부로서는 엔·달러 환율 급등에도 뾰족한 국내 시장 대응 방안 등이 없어 국제 공조를 더 강조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이미 지난달 환변동보험 가입 활성화 등 '엔저 대책'을 내놓은데다 추가로 취할 수 있는 조치도 마땅치 않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일단 지난 대책의 성과를 점검하며 추가 보완 조치 등을 검토하겠다는 방침입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조만간 각 부처 차관들이 모여 저성장·저물가·엔저 등 '신 3저' 관련 점검회의를 열고 엔저 대응책도 추가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시장에서는 박 대통령의 엔저 우회적 비판이 국제 사회의 공감을 이끌어냈지만 미국, EU, 일본 등 선진국들의 사정이 서로 달라 국제 공조를 끌어내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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