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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나바로, 그리고 삼성의 '머니볼'

이성훈 기자

입력 : 2014.11.15 06:59|수정 : 2014.11.15 06:59


 올 시즌을 앞두고 외국인 선수 제도가 바뀌었다. 팀당 보유할 수 있는 외국인 선수가 2명에서 3명으로 늘었고, 포지션이 달라야 한다는 규정이 생겼다. 그래서 오랜만에 외국인 타자를 뽑아야 했던 지난겨울, 대부분의 팀들은 1루와 3루, 좌익수 같은 '코너 포지션'의 야수를 물색했다. 외국인 선수 제도 변경의 취지가 '공격력 강화'였기에 어찌 보면 당연하고 가장 쉬운 결론이었다. 타격실력이 뛰어난 야수들은 코너 포지션에 모여 있기 때문이다.

주목받지 않은 사실은,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포지션별 공격력'의 분포는 비슷하다는 점이었다. 아래 표는 2013년 수비 포지션별 평균 OPS다.이성훈 기자 취파 거의 모든 시즌에서 그렇듯, 가장 높은 공격력을 보인 포지션은 1루수다. 이 토종 1루수들을 외국인 1루수로 대체했을 때 '추가 공격력'의 양을 A라고 하자. 2루수-유격수-중견수 등 '센터 포지션'에는 민첩한 수비의 중요성 때문에 상대적으로 공격력이 떨어지는 야수들이 많다. 그런데 만약 1루수와 비슷한 공격력을 갖고 있는 센터 포지션의 외국인 야수를 영입할 수 있다면? 그가 창출하게 될 추가 공격력은, A보다 훨씬 클 확률이 높다.
 
문제는 '공격되고 센터 포지션 수비도 되는' 야수는 대부분 한국이 아니라 메이저리그로 간다는 점이다. 능력이 있는데 메이저에 자리를 못 잡은 선수는 대부분 '멘탈'에 문제가 있다고 낙인 찍힌 선수들이다. 바로 야마이코 나바로처럼.

보스턴 레드삭스의 마이너리그에서, 나바로는 야구 능력만큼은 인정받는 유격수 유망주였다. 하지만 스카우팅 리포트들마다 '게으르다'는 평가가 빠지지 않았다. 자기 관리에 대한 물음표는 피츠버그로 트레이드된 뒤에도 떨어지지 않았고, 결국 나바로는 빅리그 정착에 실패했다.

(보스턴은 2006년, 나바로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가졌지만 역시 '정신 자세'에 문제가 있다는 평가를 내린 유격수 유망주 핸리 라미레즈를 플로리다의 에이스 조시 베켓과 트레이드했다. 핸리 라미레즈는 이듬해 내셔널리그 신인왕, 이후 세 차례 올스타에 선정됐다.)

미국에서 낙인찍혀 저평가된 나바로를, 삼성은 다른 눈으로 봤다. 지난해 삼성이 가장 적은 공격력을 얻은 포지션은 2루수였다. 그리고 중견수 배영섭이 입대했다. 삼성 스카우트팀의 눈에, 유격수-2루수에 외야수까지 가능한 나바로는 '정신 자세만 관리할 수 있다면' 잭팟을 터뜨릴 원석이었다. 도미니카 윈터리그에서 홈런과 타점 1위에 오른 나바로의 불방망이는, 삼성 스카우트팀의 평가를 확신으로 바꾸었다. 단점을 감추고, 장점을 취하기로 결정했다.
 
올해 삼성에서도 나바로는 몇 차례 우려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캠프에서 한국 특유의 많은 훈련량을 힘들어했다. 면도를 바라는 류중일 감독과 신경전을 펼치기도 했다. 시즌 중에도 때때로 나태한 모습으로 모두를 긴장시켰다. 한국시리즈 5차전 전날 자율훈련에 유일하게 결석한 선수도 나바로였다.

그래도 삼성 구단은, 그리고 류 감독은 끝까지 나바로의 장점을 믿었다. 때로는 달래고 때로는 호통을 치며, 나바로의 특기, 즉 뛰어난 야구 실력을 살리려 했다. 그 결과 삼성은 9개 구단 가운데 외국인 타자의 포지션에서 지난해 대비 가장 많은 '추가 공격력'을 얻었다.이성훈 기자 취파야구 통계 연구의 공통 결론 중에 하나는, '추가 10점'은 대략 정규 시즌 '1승'으로 환산된다는 것이다. 만약 다른 팀들처럼 코너 포지션의 외국인 선수를 뽑았다면, 삼성이 외국인 선수를 통해 얻을 추가 공격력은 나바로에 비해 대폭 감소했을 것이 유력하다. 그래서 삼성과 넥센의 정규 시즌 승차 '반 경기'가 위태로웠을 것이다. 지난 12년 동안 정규 시즌 1위는 한국시리즈 우승의 '예약증'이었다.

'다른 이들이 저평가한 선수 찾기'는 야구팬들이 너무나 익숙한 마이클 루이스의 명저 '머니볼'의 테마다. 삼성은 나바로를 통해, 또 다른 의미의 '머니볼'을 펼친 셈이다.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하고 박석민을 불러내 끌어안던 나바로의 모습은, 자신을 처음으로 믿어준 팀에 대한 '감사 인사'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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