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뉴스

뉴스 > 스포츠

[한범연의 썸풋볼] 양귀비꽃의 기억

입력 : 2014.11.11 09:43|수정 : 2014.11.11 09:43


(양귀비꽃에 둘러 쌓인 런던타워)


11월 11일.

한국에서는 빼빼로와 가래떡의 밀어내기 싸움이 한창일 날에 조금은 다른 분위기로 그 시간을 맞이하는 곳이 있다. 영연방 소속의 국가들은 11월 11일을 국가를 위해 전쟁의 포화 속에서 자신을 희생한 사람들을 위한 추도일로 정해놓았다. 올해 역시 추도일을 맞이해 영국 전역은 양귀비꽃으로 뒤덮이는 중이다.

곳곳에서는 참전 용사를 돕기 위한 모금이 이루어지고 있고, 많은 이들이 자랑스럽게 양귀비꽃 모형을 가슴에 꽂아둔다. 양귀비꽃이 추도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것은 세계 제1차 대전에서 숨진 전우의 장례식을 치른 존 맥크래이의 시에서부터였다.


이미지
(영국 곳곳에서 양귀비꽃 모형과 팔찌 판매를 통해 모금을 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영국 전역이 붉은 양귀비꽃으로 뒤덮인 가운데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역시 이 추도일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는 11월 11일 11시가 되면 2분간 희생자들의 뜻을 기리는 묵념의 시간을 가지는데, 프리미어 리그는 그 추도일이 속한 주말의 경기에서 킥오프 직전 선수와 스태프, 관중이 하나가 되어 경기장을 뜻깊은 침묵에 잠기도록 한다. 클럽들은 이미 자신들이 함께하고 있음을 여러 곳에서 드러내기 시작했다. 경기 시간이 되면 팬들 역시 함께하게 될 것이다.


이미지
(카드 섹션을 통해 거대한 양귀비꽃을 연출한 왓포드의 팬들. 왓포트 트위터 캡쳐)


추도일은 그들의 문화이고, 우린 현충일을 통해 국가에 바친 넋을 기리고 있다. 그렇기에 추도일 자체에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우리는 충분히 가슴에 담고 있는지, 그들의 모습에서 다시 한 번 되돌아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축구는 사회적인 역할에 조금 더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축구에서의 득점은 기타 스포츠와는 그 주목도가 다르다. 야구는 홈런 후 기쁨을 크게 드러내지 않는 것이 관례이고, 수십 개의 득점이 빠르게 오고 가는 농구에서 주목받는 의견을 드러내긴 어렵다. 일주일에 한 번의 축구 경기, 아예 없을지도 모르는 득점의 순간 모든 카메라는 그 주인공을 클로즈업하기 마련이다. 그 경기장에 함께하는 이들과 화면을 통해 지켜보는 이들의 눈을 순간적으로 한곳에 모을 수 있는 기회는 흔하지 않다.

피파는 정치적인 의사표현을 금지하고 있다. 정작 가장 정치적인 스포츠 집단인 피파이기에 실소를 금할 수 없지만, 축구가 정치적일 필요까진 없다. 우린 주변에 정치적이지 않은, 그러나 우리가 눈을 돌려야 하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도 있고, 잊지 말아야 할 일들도 많다. 득점 후 쏟아지는 환호성에 둘러싸여 도움이 필요한 이야기가 적힌 내의를 들어 보이는 것은 경고 한 장과 바꿀만하다. 6.25를 맞아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골 뒤풀이는 일분 이분의 시간을 뺏을 가치가 있다. 축구의 스토리는 공과 함께여야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플랑드르의 들판에 양귀비꽃이 피었네
줄 맞춰선 십자가 사이사이
우리 이곳에 있노라고
하늘에 종달새가 여전히 용감히 지저귀며 날지만
총성에 덮여 나지막이 들려오네

우린 떠난 이들.
며칠 전까지 우린 살아 숨쉬며 새벽을 느끼고 석양을 바라보았네
사랑했고, 사랑 받았지만
여기 플랑드르 들판에 우리 지금 누웠네

적들과의 싸움을 시작하는 우리
무거워져만 가는 손으로 횃불을 던지니
그대 받아 높이 치켜들어라
우리 죽은 이들과의 신의를 져버린다면
우린 잠들지 않으리
여기 플랑드르 들판에 양귀비꽃 피어나더라도

(존 매크래이- 플랑드르의 들판에서)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여러분의 승패예측은? 모먼트플레이와 함께 하세요'


모먼트플레이 구글 플레이스토어 다운받기             모먼트플레이 IOS 앱스토어 다운받기

    
SBS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