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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면 넘어간다"…검경 신원확인 절차 '허술'

입력 : 2014.11.09 08:47|수정 : 2014.11.09 08:47

사건 접수 때 한번 속이면 '신분 세탁' 일사천리
검찰, 엉뚱한 사람 피해 주고…사후처리 '어물쩍'


검찰과 경찰이 남의 신분증을 내민 10대 성매매 피의자에게 속아 엉뚱한 여성에게 형사처분을 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개인정보 보호를 강조하는 수사기관의 허술한 신원확인 절차에 명의 도용 피해자들은 속출하고 있다.

B(20·여)씨는 지난 5월 초 광주지검으로부터 한 통의 우편물을 받았다.

검찰이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에 대해 기소유예 결정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것도 황당했지만, 죄명은 더 기가 찼다.

난데없이 성매매 여성이 된 B씨는 검찰을 찾아 필체와 지문 감정까지 거치고 나서야 누명을 벗었다.

검찰의 재수사로 드러난 자초지종은 이랬다.

B씨는 지난해 8월 도로에서 주민등록증을 잃어버렸다. 이를 주워 보관하던 A(19·여)씨는 4개월 후 속칭 키스방에서 유사성행위를 하다가 적발되자 경찰관에게 이 주민증을 내밀었다.

A씨는 현장에서 작성한 진술서에 B씨의 주민증에 적힌 대로 주민등록번호, 등록기준지, 이름 등을 적었다. 경찰서에서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 끝에도 B씨의 이름을 적었다.

이 죄명은 수사자료표 작성 시 피의자의 지문을 채취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사실상 유일한 신원확인 수단인 주민증을 경찰이 제대로 살펴보지 않은 탓에 '신분 세탁'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수사 기록만 들여다보고 추가 확인절차 없이 기소유예 결정을 했다.

A씨는 결국 선처를 받았던 성매매 혐의에 공문서 부정행사 등 혐의까지 더해져 최근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허술한 절차를 정비해야 할 검찰은 사후처리도 어물쩍이었다. A씨를 조사한 경찰관은 검찰로부터 어떤 통보도 받지 못해 속아 넘어간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수사기관은 물론 법원까지 속아 넘어가 엉뚱한 농민이 수배되는 사례도 있었다.

지난 3월 광주지검 목포지청에 구속 기소된 C(55)씨는 2012년 7월 30일 상해사건 피의자로 해경 조사를 받으면서 사전에 알고 있던 동명이인 D(57)씨의 주민번호, 본적지 등을 댔다.

해경, 검찰, 법원이 차례로 속아 넘어가 D씨는 약식재판으로 선고된 벌금 70만원을 내지 않아 수배되고 수배자 신분으로 검찰에 잡혀가는 고초를 겪었다.

수사기관의 한 관계자는 "최초 사건을 접수할 때 신원을 확인한 뒤로는 이전 기록을 토대로 수사하다 보니 신원 도용이 바로잡히지 않는 경우가 더러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광주=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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