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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칼럼] 냉전 종식 25년, 신냉전의 시대?

김인기 기자

입력 : 2014.11.06 09:51|수정 : 2014.11.06 09:51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28년 간 동서 베를린을 갈라놓은 장벽은 그 자체로 동서 유럽, 나아가 미국을 비롯한 서방과 소련권의 대립의 상징이었습니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바로 동구 공산권의 붕괴, 소련의 해체, 이어서 냉전 체제 붕괴로 이어졌습니다. 현대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로부터 25년, 4반세기가 흘렀습니다. 세계는 어떻게 변했을까요? 독일은 통일됐습니다. 소련은 해체돼 15개 국가로 나뉘어졌습니다. 미국과 함께 양 강으로 꼽혔던 소련은 사라졌습니다. 대신 중국이 부상해 미국과 더불어 G-2로 불리고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단일 국가를 지향하는 유럽연합(EU)이 탄생했습니다. 한 마디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중국의 부상과 관련해 작지만 독특한 일화가 있습니다. 최근 루마니아의 대선에서 1위를 차지해 결선 투표에 진출한 빅토르 폰타 전 총리는 친 중국파, 2위로 결선 진출한 클라우스 요하니스 후보는 친 미국파라고 루마니아 리베라지가 분석했습니다. 과거 소련의 영향력 아래 있던 루마니아마저도 이제는 러시아를 바라보는 게 아니라 미국이나 중국을 향하고 있는 것이 국제 정치의 현실입니다.

그러면 냉전 체제가 종식되면서 전쟁이 사라졌을까요? 우선 유럽에서만 봐도 유고연방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전쟁을 겪었습니다. 복잡하게 얽힌 종교와 민족 간의 다툼 양상이 참혹한 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웃 코소보도 전쟁 와중에 끌려들었습니다.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도 종교와 영토 문제로 언제라도 다시 전쟁에 돌입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는 과거 연방국이었던 조지아와 전쟁을 했고, 내부적으로는 아직도 체첸 공화국의 반군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와 날선 공방을 벌이고 있습니다.

지금 유럽인들은 우크라이나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러시아가 크리미아를 강제로 귀속시킨 이후 동부 지역 반군을 지원한다는 의혹을 받으면서 EU 차원에서 러시아에 경제 제재를 가하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또 이에 반발하면서 새로운 냉전의 기운이 감돌고 있습니다. 이미 신 냉전이 시작됐다고 보는 시각도 많습니다.

EU와 러시아가 대립하면서 내년이 중대한 고비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EU의 이스턴 파트너십 회의가 내년 여름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서 열립니다. 당초 EU는 구 소련권이었던 국가 중 6개국, 동유럽의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 몰도바 그리고 코카서스 지역의 조지아와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을 파트너로 삼기를 희망했습니다. 서쪽과 남쪽에서 러시아를 압박한다는 계산이 작용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가 이에 강력히 반발하면서 경제 제재 까지 실행하자 3개국은 EU와 협력을 포기했습니다. 현재로서는 우크라이나와 몰도바, 그리고 러시아와 전쟁 까지 치렀던 조지아 3개국만 이스턴 파트너십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만만치 않자 러시아도 반격의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구 소련권 국가들을 한데 묶으려 시도하고 있습니다. 유라시아 경제 연합(EEU)이 그것입니다. 지금은 러시아와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아르메니아가 서명을 마쳤고, 올 연말 키르기즈스탄이 동참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 기구에 앞서 관세 동맹을 통해 협력 관계를 맺은 우즈베키스탄이나 타지키스탄도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유러시아 경제 연합은 내년 1월 공식 출범합니다.

이렇게 EU와 러시아가 서로 동맹을 확대하면서 부딪친 접점이 우크라이나입니다. 그런데 러시아의 강경한 태도에 EU가 주춤거리는 모습을 보이면서 상당한 논란이 일었습니다. 게다가 이스턴 파트너십을 강하게 추진하던 두 정치인, 칼 빌트 전 스웨덴 총리와 라도스와프 시코르스키 현 폴란드 하원의장이 정치적으로 곤경에 처하면서 이 프로그램의 미래가 더 어두워지고 있다고 루마니아의 레비스타 22는 지적했습니다. 레비스타 22는 내년에 서방의 동방 외교가 한층 더 어려움에 처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EU가 구 소련권 국가들의 신뢰를 얻는 데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의 부활을 선언하면서 강하게 밀어붙이는 배경에는 에너지가 있습니다. 석유와 가스를 바탕으로 한 러시아 경제의 부흥을 이끌어 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겨울 EU의 경제 제재가 계속되고 유가 하락이 이어지면 푸틴의 계획에도 상당한 차질이 예상됩니다. 겨울철이 다가오고 있는 데도 유가는 오르기는 커녕 오히려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에 경제 제재로 인한 신용등급 하락 등이 이어지면 러시아 경제가 또다시 위협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김인기 논설위원 대일단 EU와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사이에 두고 경제 냉전에 들어갔습니다. 서로 세 불리기를 하면서 경제적으로 고통을 주려하고 있습니다. 러시아가 이스턴 파트너십에 참여한 국가들에게 경제 제재로 압박하고 있는 것이나, EU가 참여 국가들에게 다양한 경제 지원을 하는 것, 또 EU와 러시아가 서로 경제 제재를 하는 것, 이런 것이 신 냉전의 형태입니다.

아직 남북한이라는 냉엄한 냉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이런 상황 발전이 달갑지 않습니다. 군사적 대립에 그치지 않고 경제적 대립 까지 이어진다면 무역대국인 우리에게도 어떤 식으로든 타격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내부 만이 아닌 국제정치에 좀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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