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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선 기관고장이 준 행운, 고선박 '마도4호선' 발견

입력 : 2014.11.05 16:43|수정 : 2014.11.05 16:43


지난 9월 초, 바닷속 경주로 일컫는 태안 마도 해역을 시굴조사 중이던 290t급 발굴조사선 '누리안호'가 기관 고장을 일으키자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잠시 발굴작업을 중단해야 했습니다.

그 기간에 연구소는 작은 탐사선 18t급 '씨뮤즈호'를 동원해 조사지역 인근에서 별도 해역 탐색을 하던 중에 도자기가 묻힌 징후를 발견합니다.

이렇게 해서 연구소는 곧바로 시굴에 착수했습니다.

비교적 가볍게 시작한 일이지만 성과는 놀라웠습니다.

50x20m 규모로 그리드(조사전체구역) 구획을 한 다음 10m 간격으로 폭과 깊이 각각 1m 크기로 해저면을 걷어내자 백자가 다발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나중에 헤아려 보니 백자는 총수량이 111점이었습니다.

대부분이 상태가 온전한 18세기 후반~19세기 초반 무렵 조선후기 백자였습니다.

품질이 최고급이 아니지만, 해양 발굴에서는 처음으로 조선 백자를 대량으로 인양한 것입니다.

물론 백자 촛대 2점은 고고학 발굴을 통해서는 처음으로 확보한 희귀품으로 분류됩니다.

한데 백자를 기종별로 나눠 보니 이상한 점이 드러났습니다.

촛대 세트를 제외하고는 사발 59점, 접시 40점, 잔 10점이었습니다.

10점 단위로 다발을 묶었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밝혀진 것입니다.

사발이 59점인 것은 틀림없이 1점이 유실됐기 때문입니다.마도 해역 보물_6어떻든 이들 백자가 선박에 적재됐다가 침몰한 것임은 분명했습니다.

따라서 잘하면 이들 백자를 적재했을 조선시대 선박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 조사원들은 부풀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현대와 가장 가깝지만 이상하게도 조선시대 선박은 단 한 척도 실물로 알려진 적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이 이내 선박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선체는 300°방향(남동↔북서)으로 놓인 상태이며 우현으로 기울어져 매몰됐습니다.

선수는 남동쪽입니다.

인양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현 상태에서 4단까지 확인된 좌현 외판재 주변에 원통형 목재가 다수 발견됐고 선미재는 일부만 남은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이어 수중 발굴을 계속하던 조사단을 당혹하게 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선체 내부에 1×1m, 깊이 약 2m 크기로 시굴 조사 구덩이를 팠더니 그 안에서 15세기 무렵 조선 초기 분청사기 사발 2점이 발견된 것입니다.

다발로 발견된 조선 후기 백자와 이 분청사기의 제작 유통 시기는 너무나 차이가 컸습니다.

400년가량이나 격차가 나는 것입니다.

물론 이를 설명할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선박 내부에서 발견된 것은 분청사기이며, 조선후기 백자 다발은 선박이 묻힌 해저면 상부에서 발견됐습니다.

다시 말해 침몰 선박은 분청사기를 싣고 가던 것이며, 백자다발은 이로부터 수백년 뒤에 그 상부로 모종의 이유로 침하한 셈이 됩니다.

선체는 아직 인양이 되지 않아 정확한 규모나 잔존 상태는 확인이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모습을 드러낸 외판재를 기준으로 하면 길이 11.5m에 폭 6m가량이었습니다.

조사단은 이를 '마도 4호선'으로 명명했습니다.

태안 앞바다에서 다섯 번째로 확인된 선박입니다.

연구소는 이 선박이 그토록 찾던 조선시대 배인지 최종 판단은 미룬 상태입니다.

내년에 본격적인 조사가 이뤄지면 그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아울러 조사단은 조선후기 백자가 대량으로 발견된 점을 의미 있게 봅니다.

우선 기능과 관련해서는 양반가의 제기나 일상용기일 것으로 봅니다.

배에 실은 이유는 장거리 유통을 위해서였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선 후기에는 백자 보급이 전국으로 확산함에 따라 가까운 지역에서 생산한 백자를 썼다는 것이 통설이지만, 이번 성과는 자칫 그런 통설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마도 해역 보물_6오늘(5일) 언론에 공개된 발굴현장에서 연구소는 닻에 달린 목제 갈고리인 닻가지를 인양했습니다.

길이 2m가량인 것으로 미루어 닻은 4m 이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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