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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문항 오류로 판결한 까닭은…"옳은 선택지 없다"

입력 : 2014.10.16 17:56|수정 : 2014.10.16 17:56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세계지리 8번 문항에 출제 오류가 있다고 인정한 서울고법 판결은 '정답을 찾는 기술을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사실을 탐구하는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 수능의 목적'이라는 원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재판부는 "대학에서 수학할 능력이 있는지 측정하는 것이 수능의 특성이다. (따라서) 출제 의도에 의해 정답이라고 예정된 답안을 선택하는 데 장애가 없다 하더라도 사실에 부합하는 답항만 정답으로 인정돼야 한다"며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등을 상대로 한 수험생들의 청구를 받아들였다.

지난해 11월 7일 치러진 수능의 세계지리 8번은 인접 국가간 협력으로 '블록 경제'를 이루고 있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유럽연합(EU)에 대한 지식을 묻는 문항이었다.

㉠, ㉡, ㉢, ㉣의 네 개 지문을 통해 두 경제 협력체의 규모와 특징 등을 서술하고 옳은 설명을 고르는 문제였다.

하지만 정답이 공개되고 논란이 일파만파로 퍼졌다.

평가원은 NAFTA의 등장으로 멕시코의 외국 자본 투자가 급증했다는 ㉠ 지문과 함께 EU가 NAFTA보다 총생산에서 앞선다는 ㉢ 지문이 옳은 설명이라고 보고 이 둘을 조합한 선택지 2번을 정답으로 인정했다.

하지만 최신 통계에 따르면 NAFTA의 국민총생산(GDP)이 EU보다 많았다.

이에 수험생들은 문제 출제의 오류가 있어 평가원의 등급 결정을 인정할 수 없다며 소송을 냈다.

명백히 옳은 지문과 틀린 지문을 제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정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문항에 문제가 없다는 평가원 쪽과 사실과 다른 지문을 옳다고 보는 꼴이 되는 2번은 정답이 될 수 없다는 수험생 측이 팽팽히 맞섰다.

이 사건의 2심을 심리한 행정7부(민중기 수석부장판사)은 수험생들의 손을 들어줬다.

주요 근거는 '객관적인 사실에 부합해야 정답으로 인정한다'는 시험의 대원칙이다.

재판부는 "출제 의도에 따라 정답으로 예정된 답안을 택할 수도 있고, 이를 택하는 데 별다른 장애를 받지 않는다 하더라도 수능은 객관적인 사실에 부합하는 답항을 정답으로 선택할 것을 요구한다"며 "그것이 학생들로 하여금 진리를 탐구하도록 하는 교육의 목적과 대학에서 공부할 능력이 있는지 측정하는 수능의 목적에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8번 문제에서 ㉠지문은 명백히 옳고 ㉡,㉣지문은 명백히 틀렸기 때문에 평균 수준의 수험생이 (㉠ ㉢이 있는) 2번을 정답을 고르는 데 어려움이 없다"는 문제 풀이의 기술적인 측면을 고려해 원고 청구를 기각한 1심 잣대가 잘못됐음을 지적한 것이기도 하다.

재판부는 또 '교과서에 나와 있기 때문에 오류가 아니다'라고 일관적으로 주장해 온 평가원이 스스로 세운 원칙을 부정하는 '자가당착'을 범했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실제 평가원이 발표한 2014년 수능 시행기본계획을 보면 사회탐구영역 문제의 소재 선택은 교육과정의 범위와 수준에 근거하되 교과서 외 시사성 있는 소재와 내용도 출제에 포함하도록 정했다.

또 출제지침서와 출제업무요람에는 제시문에 통계자료를 이용할 경우에는 가능한 한 최신의 자료를 찾아서 사용할 것을 명시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재판부는 이런 사실을 고려, "신문 등 다수 언론이 2012년 11월∼2013년 8월 한국의 중국·일본과의 자유무역 협상에 대해 보도하면서 '협정이 체결되면 NAFTA, EU에 이은 세계 3위 규모의 지역통합시장이 된다'는 내용을 전했다"며 "EU가 'NAFTA보다 총생산액 규모가 크다'는 지문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아 틀리다"고 지적했다.

이어 "8번 문항에서 정답으로 선택할 수 있는 답이 없다"며 "2012년 기준 NAFTA와 EU의 총생산량 차이를 알고 있는 수험생에게 정답을 올바르게 택하지 못하게 했으므로 평가원의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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