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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적자생존'…도마뱀의 적응

안영인 기자

입력 : 2014.10.13 09:14|수정 : 2014.10.13 09:14


적자생존(適者生存, survival of the fittest), 환경에 잘 적응하는 생물이 살아남는다.

지구온난화로 계속해서 기온이 올라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은 혹시 적응하지 못하는 생물이 멸종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어떤 생물이든 환경이 급격하게 변하면 생존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되고 변화의 폭이 일정 수준 즉, 임계점을 넘어서면 지구상에서 사라질 가능성도 있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제5차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33년 동안(1880~2012) 지구 평균기온은 0.85도나 높아졌다. 특히 한반도 지역은 기온이 더욱 급격하게 올라가 서울의 경우 1908~2007년까지 100년 동안 2.4도나 상승했다.

모든 생물은 자신이 편하게 살 수 있는 기온 범위가 있게 마련인데 온난화로 기온이 변하게 되면 스트레스(heat stress)를 받게 마련이다. 지속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생존에 큰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의 걱정과 달리 온난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생물도 있다.

미국 다트머스대학과 버지니아대학 공동 연구팀이 바하마 제도에 사는 도마뱀(anolis sagrei lizards)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Logan et al, 2014). 열대지역에 사는 도마뱀은 그들이 생존할 수 있는 온도 범위가 매우 좁기 때문에 온난화로 기온이 지속적으로 상승할 경우 멸종이 우려되는 동물이다. 연구팀은 한 집단은 현재 살고 있는 상대적으로 시원한 숲속에 그대로 두고 다른 한 집단은 원래 살던 숲보다 평균 기온이 2~3℃ 정도 높고 일교차나 계절별 기온 변화가 심한 주변 지역으로 옮겼다. 도마뱀이 급격한 온난화와 비슷한 환경에 노출되도록 서식지를 옮긴 것이다. 연구팀은 번식기가 시작되는 5월과 번식기가 끝나는 8월말 등 2차례에 걸쳐 두 서식지에 사는 도마뱀의 체온과 달리는 속도(운동 능력)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측정했다.

측정결과 기온이 높고 기온 변화가 심한 거친 환경에 노출된 도마뱀의 체온은 원래 서식지에 사는 도마뱀의 체온보다 평균 1.5℃나 높았다. 도마뱀은 변온동물인 만큼 고온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체온이 높아진 것이다. 특히 기온이 높고 기온 변화가 심한 환경에서 살아남은 도마뱀은 원래 살던 서식지 기온이 아니라 높아진 기온에서 가장 빨리 달릴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높아진 기온에 스트레스는 받았겠지만 운동 능력을 최고로 발휘할 수 있는 온도가 몇 달 만에 바뀐 것이다. 고온 환경에서 살아남은 도마뱀은 원래 서식지에서보다 보다 빨리 달리면서 먹이를 보다 많이 얻을 수 있었고 천적도 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고온 환경에 빠르게 적응함으로써 경쟁에서도 이기고 멸종도 피한 것이다.

물론 온난화는 기온이 한번 상승하고 멈추는 것이 아니다. 지속적으로 상승한다.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온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이 여러 세대에 걸쳐 지속적으로 나타나야 한다. 온난화에 대한 적응능력이 대대손손 자손에게 이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앞선 세대의 적응력을 바탕으로 다음 세대는 조금 더 높은 기온에도 적응할 수 있어야 지속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연구에서 도마뱀의 적응 능력이 자손으로 이어지면서 높아진다는 증거는 없다. 적응 능력이 대대손손 이어지면서 높아질 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 또 현재 온난화로 인한 기온 변화의 폭이 도마뱀이 살아남을 수 있는 한계치보다 낮아 빨리 적응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기온이 조금만 변해도 멸종될 가능성이 있다는 당초 많은 사람들의 우려와는 달리 생물들이 온난화에 아주 빠르게 적응해 살아남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빠르게 진행되는 지구온난화 시대,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변화에 적응을 잘 할 뿐 아니라 그 적응 능력을 대대손손 전할 수 있는 종이 살아남는다.

<참고문헌>

* Logan, M., R. Cox, and R. Calsbeek, 2014: Natural selection on thermal performance in a novel thermal environment.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11, 14165-14169. doi 10.1073/pnas.140488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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