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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은 놓쳤지만…" 한국 과학기술의 가능성을 보다

입력 : 2014.10.08 19:58|수정 : 2014.10.08 19:58


"노벨상을 타는 게 그렇게 쉬울 거라고 생각은 안했지만…기대했는데 그래도 아쉽네요."

8일 오후 대전 KAIST(한국과학기술원) 내 유룡 기초과학연구원 단장(KAIST 화학과 교수)의 연구실이 있는 화학과 건물.

이날 오후 건물 3층 대회의실에서 노벨화학상 수상자 발표 생중계를 지켜보던 KAIST 학생들과 취재진은 최종 결과가 발표되자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며 탄식을 내뱉었다.

유 단장은 매년 자체 보유한 연구인용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유력 노벨상 후보자 명단을 예측해 발표해 오고 있는 톰슨 로이터의 노벨화학상 분야 수상 예측 인물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인으로서는 처음 노벨상 후보에 든 만큼 주위의 기대가 컸지만, 유 단장 본인은 정작 "확률은 0%"라고 단언하며 침착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한국 과학기술의 수준이 그만큼 올라갔다는 평가다.

유 단장은 연구의 개척도와 논문의 피인용지수 등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노벨상 후보 명단에 올랐다.

유 단장이 몸담은 분야는 '기능성 메조나노다공성 탄소물질' 및 '제올라이트'.

2∼50나노미터(㎚, 10억분의 1m) 크기의 메조 나노 구멍으로 이뤄진 나노다공성물질을 거푸집으로 이용해 나노구조의 새로운 물질을 합성하는 방법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1999년 이를 이용해 만든 탄소나노벌집은 KAIST(한국과학기술원)에서 만든 탄소 나노구조물이라는 뜻의 'CMK'라는 고유 명사로 통용되고 있다.

이어 2006년 이 기술을 제올라이트에 적용, 메조 나노 구멍과 지름 2나노미터 이하의 나노 구멍이 규칙적으로 배열된 벌집모양의 제올라이트 구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제올라이트는 무수히 많은 초미세한 구멍 구조를 가진 일종의 광물로, 지름 1나노미터(㎚, 10억분의 1m) 크기의 구멍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을 이용해 산업 현장에서 흡착제나 촉매제 등으로 쓰거나 의학 분야에서 주사 매개체 등으로 사용할 수 있다.

그동안 1나노미터보다 큰 분자는 구멍에 들어갈 수 없다는 문제 때문에 세계 많은 과학자가 더 큰 크기의 구멍을 배열한 제올라이트를 합성하기 위해 연구해왔다.

관련 연구 결과는 '네이처'와 '네이처 머티리얼스' 등 관련 분야 최고 학술지에 잇따라 등재된 데 이어, 2011년 세계적인 과학저널 '사이언스'가 선정한 올해의 10대 과학성과에 선정되기도 했다.

기능성 메조다공성 물질의 설계에 관한 유 단장의 연구 성과는 현재까지 인용횟수가 2만회를 넘어섰으며, 특히 고인용 논문(피인용 횟수가 상위 1%인 논문) 수 만해도 12편에 달한다.

유 단장은 이 같은 성과를 인정받아 2007년 국가과학자에 선정된 데 이어 2010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제올라이트 분야 노벨상이라 불리는 '브렉상'을 수상했다.

유 단장이 연구해온 메조 나노 다공성 물질 분야는 앞으로 나노 반도체 물질을 개발하는데 근간이 되는 신소재로, 최근 과학자들의 집중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영국왕립학회 저널을 비롯해 사이언스 등 해외 유수 저널에서 나노물질을 미래 유망 분야로 손꼽는 만큼, 올해가 아니어도 언젠가는 수상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점치는 이유이다.

이철위 한국화학연구원 그린화학연구본부장은 "나노 다공성 제올라이트는 석유 화학공업 전반에서 널리 사용되는 촉매"라며 "우리나라에서도 연간 수백t 이상 사용되고 있고, 세제나 흡착제 등으로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유룡 교수는 다공성 기공의 크기와 구조를 새롭게 만들어 나노다공성 물질 분야에서 독보적 지위를 인정받고 있다"며 "청색 LED나 그래핀처럼 산업화 가능성이 열린다면 언젠가는 (노벨상도) 가능하지 않겠느냐"라고 기대를 나타냈다.

조강희 IBS 나노물질연구단 박사도 "올해는 노벨상을 못 탔지만 후보로 거론된 만큼 앞으로 수년 안에 수상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아쉬움을 달랬다.

올해 노벨화학상은 광학현미경의 한계를 뛰어넘는 초고해상도 형광 현미경 기술을 개발한 미국 하워드휴즈의학연구소 에릭 베칙 박사와 스탠퍼드대 윌리엄 E.

뫼너 교수, 독일 막스플랑크 생물물리화학연구소 슈테판 W.

헬 박사 등 3명에게 돌아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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