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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월드컵보다 센 아시안게임, 황당한 병역 특례

권종오 기자

입력 : 2014.10.05 13:04|수정 : 2014.10.05 13:04


2014 인천 아시안게임이 막을 내렸습니다. 한국 선수단이 5회 연속 종합 2위를 달성한 가운데 특히 남자 축구와 남자 농구에서 짜릿한 드라마를 연출하며 국민들을 열광케 했습니다. 남자 축구 선수들은 그라운드뿐만 아니라 라커룸에 들어와서도 환호성을 터뜨리며 덩실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감격이 너무 컸던 때문인지도 몰라도 어떤 선수는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되는 기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맞습니다.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는 4주간의 기초군사훈련만 받으면 병역을 면제받는 혜택을 누립니다. 스포츠 선수가 이런 특례를 받는 길은 딱 2가지입니다. 동하계 올림픽에서 동메달 이상을 획득하거나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뿐입니다.

스포츠 선수가 갖는 병역 특례의 정당성 여부를 여기서 따지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지적해야 할 것은 현재 병역 특례 제도가 안고 있는 모순점입니다. 만약 한국축구가 2014 브라질 월드컵 우승과 아시안게임 축구 우승을 모두 달성했다고 가정합시다. 이 가운데 어느 것이 더 큰 업적일까요?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전자입니다. 그런데 현재 법 규정으로는 월드컵 축구에서 우승을 해도 병역 혜택을 받을 수 없습니다. 농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농구선수권(농구 월드컵)에서 세계 최강인 미국 드림팀을 꺾고 정상에 올라도 병역면에서는 아무 혜택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A라는 한국 단거리 선수는 세계육상선수권 남자 100m에서 9초4의 세계신기록으로 자메이카의 우사인 볼트를 제치고 금메달을 차지했습니다. A선수의 팀동료인 B선수는 아시안게임에서 10초2로 금메달을 땄습니다. 실력에서는 비교도 안되지만 병역 면제는 B선수만 받습니다.

 그럼 왜 이런 황당한 모순이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요? 체육계의 설명은 대체로 이렇습니다. "축구 월드컵이 아무리 세계적 축제이고, 최고 권위를 자랑해도  결국 축구 세계선수권에 불과하다. 만약 월드컵 우승에 병역 특례를 적용하면 형평의 논리상 다른 비인기 종목의 세계선수권에도 같은 규정을 적용해야 한다. 또 세계선수권은 1년마다 개최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어떤 종목은 4년에 한번씩 열려 형평을 맞추기도 쉽지 않다. 세계선수권과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에게 모두 병역 특례를 주면 가장 좋지만 이럴 경우 군 면제자가 너무 많아져 국방부가 허용하지 않는다. 결국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아시안게임은 올림픽처럼 국가별로 종합순위를 가리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포기하기 어렵다.만약 아시안게임 병역 혜택을 없앤다면 우리 남자 선수들이 이번처럼 죽어라 뛸 마음이 생기겠는가? 종합 2위가 아니라 4,5위까지도 밀릴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그에 대한 책임을 누가 감당하겠는가?  무엇보다 세계선수권보다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이 훨씬 쉽기 때문에 선수와 지도자 모두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다. 현행 제도에 문제점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바꿀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병무청은 현 병역 특례 제도가 안고 있는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9월 개선안을 마련했습니다. 각 대회별로 포인트를 배분해 누적점수 100점을 넘으면 병역 혜택을 주기로 했습니다. 이 안에 따르면 올림픽에서 금메달과 은메달을 따면 바로 면제를 받습니다. 아시안게임의 경우는 금메달 1개에 50점이 부여됩니다. 즉 한 대회에서 2관왕에 오르거나 2회 연속 우승을 하면 100점이 돼 특례 대상자가 됩니다. 세계선수권도 개최주기별로 점수를 차등 배분해 병역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습니다. 나름대로 합리적인 방안이었지만 국가대표 선수와 지도자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현재 병역 특례 대상자 가운데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가 약 80%나 될만큼 절대 다수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아시아권에서는 정상이지만 세계와의 격차는 큰 종목의 경우는 결사 반대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하지만 현재 스포츠 선수에 대한 병역 특례 제도는 대의명분과 일반인의 상식에서 동떨어져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아시안게임 종합순위가 국력의 바로미터라는 것도 냉전시대의 낡은 관념입니다. 아시안게임 금메달 1개가 곧바로 '군대 면제증'으로 인식되는 현재의 풍토는 반드시 바뀌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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