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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전문가들 "고노담화는 정확…아베 발언에 할말 잃어"

입력 : 2014.10.04 04:55|수정 : 2014.10.04 04:55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또다시 고노(河野)담화의 근간을 훼손하는 공개 발언을 내놓자 2007년 미국 하원의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작성에 관여했던 미국 싱크탱크 전문가들이 이를 강력히 비판하고 나섰다.

미 의회조사국(CRS) 선임연구원 출신인 래리 닉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구원은 3일(현지시간) 연합뉴스에 보낸 논평에서 "고노담화는 역사적으로 정확하다"며 "일본의 역사수정주의자들이 고노담화를 허물기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는 일본 시간으로 3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해 아사히(朝日)신문이 '요시다 증언' 관련 오보를 인정한 것을 거론하며 "일본의 이미지가 크게 상처났다"며 "일본이 국가적으로 성노예를 삼았다는 근거없는 중상이 세계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요시다 증언은 1942년부터 3년간 일본 야마구치현 노무보국회 동원부장으로 일했던 고(故) 요시다 세이지(吉田淸治)씨가 1982년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일본군이 제주도에서 여성들을 위안부로 강제 연행했다"고 발언한 것으로, 아사히신문은 지난달 오보를 공식 인정하고 32년 만에 기사를 취소했다.

닉쉬 연구원은 "일부 저명한 전문가들이 요시다 증언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했음에도, 아사히신문은 너무 오랜 기간 자신들의 보도를 고수해왔다"며 "일본의 다른 언론과 자민당 인사들이 자신들 나름의 이유로 아사히 신문을 공격하는데 대해서는 내가 문제삼을 일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요시다 증언을 둘러싼 현재의 논쟁은 고노담화와 관련된 것"이라며 "일본의 역사수정주의자들은 요시다 증언이 ▲2007년 미국 하원 위안부결의안 통과에 과도한 영향을 끼쳤고 ▲아사히신문의 기사철회가 일제의 위안부 강제동원이 없었음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논쟁을 확산시키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어떤 것도 사실이 아니다"며 "고노담화를 허물기 위해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거듭 비판했다.

닉쉬 연구원은 특히 "지난 6월 일본 정부의 고노담화 검증보고서 결론에 낙담한 일본 역사 수정주의자들은 요시다 증언의 철회를 계기로 위안부 강제동원과 관련한 고노담화의 표현을 공격하려고 한다"고 분석했다.

닉쉬 연구원은 "내가 연구한 바로는 미국 하원의 위안부 결의안이 통과됐던 2007년이나 지금이나 고노담화는 역사적으로 정확하다"며 "아베 총리와 박근혜 대통령,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세 사람이 '나는 고노담화가 역사적으로 정확하다'는 말을 한다면 과거사 문제를 올바른 방향으로 해결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 하원 전문위원을 지낸 데니스 핼핀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연구원도 연합뉴스에 "2차 세계대전에 대해 일본 내 상당수 여론지도자들이 기본적인 오해를 하고 있고 갈수록 국제사회와는 다른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핼핀 연구원은 "유엔과 주요국은 2차 세계대전의 3대 추축국(독일·이탈리아·일본)이 주요 전쟁범죄와 역사적인 반인륜 범죄에 관여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독일 국민과 독일 정부는 뉘른베르크 재판으로 나타난 역사의 판단을 받아들이고 있고 이탈리아 국민과 이탈리아 정부도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뉘른베르크 재판은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나치 독일의 전범들과 유대인 학살 관여자들에 대한 연합국의 국제 군사재판이다.

핼핀 연구원은 그러나 "제국주의 일본은 독일의 히틀러,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와 삼국 동맹조약을 맺었고 진주만 공격으로 하룻밤에 아시아와 유럽의 지역전쟁을 세계전쟁으로 탈바꿈시켰다"며 "특히 일본은 나치, 파시스트 정권과 마찬가지로 전쟁범죄와 반인륜범죄를 저질렀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이미 오래전에 정리된 2차 세계대전 역사를 다시 수정하려는 움직임은 일본 국민과 주변국과의 관계, 그리고 미국과의 동맹관계에 비생산적"이라고 지적했다.

민디 코틀러 아시아 폴리시 포인트 소장은 연합뉴스에 "할 말을 잃었다"며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단어는 '이디시'(동유럽 등지에서 쓰이던 유대인 언어) 말로 'MESHUGGE'(미쳤다) 밖에 없다"고 비난했다.

코틀러 소장은 이어 "그럼에도 나는 아베 정권이 과거사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알리려고 하는 것을 환영한다"며 "일본 내에서 과거사 문제에 대해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과거사를 조사하는 문제가 일본 극우세력의 어두운 밀실에서 나오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강조했다.

코틀러 소장은 "아베 총리는 일본 국민들로 하여금 극우세력과 과거의 전쟁역사가 나라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에 초점을 맞추도록 하고 있다"며 "따라서 더 많은 사람에게 사실을 전달하고 일본 국민이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게 더 쉬워졌다"고 밝혔다.

그는 "아베 정권은 일본 국민이 자신들의 역사관을 받아들일 것으로 가정해서는 안 된다"며 "일본 국민들에 이어 미국인들과 호주인들, 그리고 다른 국가의 국민들도 과거사 논의가 역내 안보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닉쉬 연구원과 핼핀 연구원, 코틀러 소장은 지난달 25일 마이크 모치즈키 조지워싱턴대 교수와 함께 '요시다 증언'이 미국 하원의 위안부 결의안 작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처럼 보도한 일본 마이니치(每日)신문에 대해 정정보도를 촉구하는 공동기고문을 미국 정치정보지인 '넬슨 리포트'에 게재한 바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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