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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영흥도선'이 통일신라시대 선박인 이유

입력 : 2014.09.19 09:29

청자 발견안돼·뚜껑없는 철제솥 12점 선적·고려이전 문양 확인


2000년대 접어들어 활기를 띠기 시작한 수중고고학은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신안선 발굴이 대표하는 1970년대 해저 인양이 있기는 했지만, 본격적인 인력과 조직을 갖추고 체계적인 수중조사를 시작한 때는 아무래도 2000년대 이후로 봐야 한다.

한데 이상한 점은 바닷속 경주로 일컫는 태안 마도 인근 해저를 필두로 적지 않은 숫자가 발견된 고대 선박이 모조리 고려시대에 속한다는 사실이었다.

조선시대 선박도 없고, 그 이전 통일신라시대 선박도 발견된 적이 없었다.

이것이 한국 수중고고학 미스터리였다.

이런 갈증이 마침내 어느 정도 풀렸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인천 옹진군 영흥면 섬업벌 해역에서 2012년과 2013년 두 차례에 걸쳐 수중 발굴조사한 결과 수습한 목제 선박이 8세기 무렵 통일신라시대 배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 선박은 다른 수중 조사가 그렇듯이 우연한 일을 계기로 발견됐다.

2000년, 고려시대 자기 다수가 발견됐다는 신고가 문화재청에 들어왔다.

이에 산하 해양문화재연구소는 조사에 착수했다.

현재까지 조사 결과 이곳에서는 선박 잔존체 외에도 도자기 870여 점을 출수(出水)한 상황이다.

선체는 2012년 제1차 조사에서 존재가 드러났다.

하지만 강한 조류와 높은 파고로 당시 장비로는 정밀 발굴조사가 어려웠다.

그러다가 지난해 수중 발굴조사 전용 인양선인 '누리안호'가 투입됨으로써 선체와 내부 유물 조사가 가능했다.

잔존 선체는 길이 약 6m에 폭 1.4m의 3단으로 결구(結構)한 상태였다.

그 위에는 철제 솥과 도기를 비롯해 비교적 무거운 선적물에 눌린 부분만 남아있었다.

다른 부분은 유실된 것이다.

선체 부재는 밑에 대는 널빤지인 저판(底板) 1열과 저판과 외판을 연결하는 L자형 부재인 만곡종통재(彎曲從通材) 2단을 합친 총 3단이었다.

이를 통일신라시대 배로 확정한 근거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우선 저판과 만곡종통재를 연결하는 데 사용한 장삭이라는 나무못이 기존 고려시대 선박 9척의 것과는 달랐다.

즉, 고려시대 선박에서 장삭이 저판을 관통하는 것과는 달리 같은 통일신라시대 선박인 경주 안압지선과 유사하게 밖으로 노출되어 연결된 특징을 보였다.

장삭이란 전통 한선(韓船)에서 배 바닥판이나 타판(舵板)을 고착하는 데 사용하는 가로로 길게 연결하는 긴 나무못을 말한다.

또한 선체 내부에서는 청자가 단 1점도 발견되지 않았다.

대신 도기(陶器) 6점과 철제 솥 12점, 동제 용기 1점, 사슴뿔 2점이 확인됐다.

대체로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보는 유물들이었다.

이 중 도기병 1점에서는 향기가 나는 투명한 황갈색 내용물이 확인됐다.

정확한 성분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현재까지 분석 결과 예전부터 최고급 도료로 사용된 황칠과 유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도기병 동체부에서는 고려시대 이전 유물에서 주로 보이는 파상집선문(波狀集線文)이라는 문양이 확인됐다.

파도 모양 선을 여러 개 겹친 이 문양은 5세기 무렵 이래 백제와 신라 지역 도·토기(陶土器)에서 집중적으로 보이다가 9세기 전반 이후에는 점차 소멸한 것으로 알려졌다.

논산 표정리, 장도 청해진, 해남 백야리 모시골 가마 등 통일신라시대 유적에서 비슷한 문양을 한 유물들이 확인된 적이 있다.

철제 솥 12점은 겹겹이 쌓은 모습, 다시 말해 선적한 화물 형태로 발견됐다.

모두 다리가 없는 가마솥(釜) 형태다.

양주 대모산성, 창녕 말흘리 유적, 경주 황남동 376 유적 등지에서 유사한 형태의 철제 솥이 출토됐다.

이상한 점은 솥뚜껑이 1점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조사단은 고려시대 이전에는 철제 솥뚜껑을 사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 유물로 추정하는 근거 중 하나로 제시했다.

선체 내부가 아닌 주변 해역에서는 자기가 다량 발견됐다.

청자가 851점으로 대부분이지만 백자 13점, 도기 12점도 있다.

청자는 식생활용 그릇인 발, 접시, 뚜껑, 잔 등이다.

대부분이 포개서 구워낸 조질청자(粗質靑磁), 다시 말해 그다지 고급성은 없는 것들이었다.

제작방식이나 형태 등으로 미루어 12세기 중후반 작품들로 추정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