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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우리도 '복자'가 아니었을까?

권종오 기자

입력 : 2014.08.18 09:21


 프란치스코 교황이 오늘 낮 방한일정을 마치고 바티칸으로 돌아갑니다. 4박5일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가난한 이의 성자’로 불리는 교황이 남긴 울림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그의 메시지와 일거수일투족은 국민적 관심 속에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이른바 ‘프란치스코 신드롬’, ‘프란치스코 효과’가 바로 그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참석한 각종 행사 가운데 가장 규모가 컸고 의미가 깊었던 것은 역시  16일 광화문에서 열렸던 윤지충 바오로를 비롯한 124위 시복식이었습니다. 저는 가톨릭 신자의 자격으로 입장권을 얻어 시복식에 참석했습니다. 시복식에서는 신자였지만 직업이 기자이기 때문에 ‘신자 반, 기자 반’의 마음가짐으로 이 거대한 행사의 처음과 끝을 자세히 관찰했습니다. 당일 서울시청에서 광화문까지 근래 보기 드문 인파가 몰렸습니다. 대회 주최 측과 경찰도 추산만 할 뿐이지 실제로 정확히 얼마나 모였는지는 아무도 모를 만큼 엄청났습니다. ‘인산인해’(人山人海)란 말이 정말 실감날 정도였습니다.

시복식에 참석하기 위해 저는 새벽 3시40분에 잠에서 깼습니다. 집합 예정시간인 새벽 4시20분에 딱 맞추어 성당에 도착했는데 제가 가장 늦게 온 사람이란 걸 확인했습니다. 400여명 가운데 단 한명도 지각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대형 버스를 타고 종각역에서 300m 떨어진 곳에 하차한 뒤 광화문까지 걸어서 갔습니다.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았지만 이미 수많은 사람과 경찰이 대로를 가득 메웠습니다. 지방에서 온 사람들도 대부분 이미 도착해 있었습니다. 영호남 지역 신자의 경우 전날 밤 10시에 출발해 밤새 달려왔다고 했습니다. 제 자리는 이순신 장군 동상 바로 앞이었습니다. 제가 앉은 구역 바로 뒤에 <세월호> 유가족들이 있었습니다. 오랜 농성으로 매우 지친 때문인지 절반은 잠자고 있는 모습이 주위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시복식에 참석하며 느낀 것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불평’이 거의 없었다는 점입니다. 밤새 달려왔거나 새벽에 일어난 사람들이 교통 통제로 많이 걸어야 했음에도 별로 힘든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불필요할 정도로 삼엄했던 경찰의 통제와 검문검색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인파에 비해 말도 안 되게 좁았던 보행 통로, 한번 가려면 큰 ‘결심’을 해야 할 정도로 부족했던 화장실, 경호 문제로 오전 10시 이후에나 지급했던 식수, 땡볕에 땅바닥에 앉아 7시간 이상 버텨야 하는 고역, 사각지대 때문에 상당수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대형 LED화면 등 여러 악조건에도 수십만 명의 참석자들은 말없이 참고 또 참았습니다. 한국인의 평균적인 감성을 감안할 때 이 정도 상황에서는 반드시 어느 정도의 불평이 나오기 마련인데도 말입니다.       
 
또 하나 놀라운 것은 높은 시민 의식입니다. 제가 살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공간에서 이렇게 공공질서가 잘 지켜진 것은 본 적이 없었습니다. 시복식이 끝난 뒤에 계획대로 구역별로 차례로 퇴장한 덕분에 당초 오후 5시까지로 예상했던 광화문 일대 교통 통제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위해 맨 마지막에 퇴장한 서울대교구 신자의 경우 1시간쯤 가만히 앉아 기다려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대형 행사나 대형 스포츠 경기가 있을 때마다 반복되던 쓰레기 문제도 ‘기우’에 불과하다는 것이 확인됐습니다. 광화문에서 서울시청까지를 가득 메웠던 인파가 지나간 자리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깨끗했습니다. 노약자와 어린이도 상당수 참석했는데도 다친 사람이 거의 없을 만큼 안전에서도 문제가 없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카퍼레이드를 할 때 일부가 좀 더 가까이에서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으려고 바리케이드 쪽으로 몰렸지만 대부분은 제 자리를 지켜 불상사가 일어날 가능성을 크게 줄였습니다.    
           
시복식이 끝나고 귀가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한마디로 “몸은 고단하지만 마음은 기쁘다”였습니다. 표정은 하나같이 밝았습니다. 시복식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성모승천대축일 미사에 참석한 신자들, 아시아 청년대회에 참가한 청년들, 충북 음성 꽃동네 장애인들의 얼굴에서 행복감과 만족감을 읽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아시다시피 교황은 16일 시복식에서 순교자 124위를 ‘복자’(福者)로 선포했습니다. 저는 그 순간 우리도 다른 의미의 ‘복자’가 아닐까라고 생각했습니다. 로마 가톨릭에서 승인하는 신앙적 의미의 ‘복자’가 아니라 말 그대로 ‘복 받은 사람’이란 뜻의 ‘복자’ 말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4박5일 동안 한국에 머물며 우리에게 선사한 가장 큰 선물이자 ‘프란치스코 효과’의 핵심이 바로 이것 아닐까요? 이 선물의 유효 기간을 늘리는 것과 가톨릭 신자 여부와 상관없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그의 힘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깨닫는 것은 당연히 우리가 풀어야할 과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