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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피살 재력가 장부에 적힌 검사, 기소 대신 징계?

한세현 기자

입력 : 2014.08.06 11:35|수정 : 2014.08.06 15:23


기자 : “기소할 수 있을까요?”
검찰 :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네요. 그리고 죽은 사람은 말이 없습니다.”

수도권 모 지방검찰청에서 부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A 검사 얘기입니다. A 검사는 피살된 강서구 재력가 67살 송 모 씨의 장부에 이름이 적혀, 대검찰청 감찰본부의 수사를 받고 있습니다. 대검은 A 검사가 지난 2007년부터 2011년까지 10차례 걸쳐 숨진 송 씨에게 1,780만 원을 받은 혐의에 대해 수사하고 있습니다.

물론, 장부에 이름이 적혀 있다고 해서 A 검사가 송 씨로부터 금품이나 향응을 받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피살된 재력가가 기록한 장부에 검사의 이름이 적혀 있다는 것만으로도 논란거리가 되기엔 충분했고 결국, 대검찰청이 직접 A 검사에 대한 수사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앞서 소개한 어느 검찰 관계자 얘기처럼 수사는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 A 검사는 어떤 사람인가?

논란의 중심에 선 A 검사는 대검 공안 연구관을 거친 ‘공안검사’입니다. 실력을 인정받아 지금은 수도권 모 지방검찰청에서 굵직한 공안 사건을 맡고 있습니다. A 검사에 대한 법조계 내부의 평판은 매우 좋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A 검사와 함께 근무했던 모 부장검사는 A 검사를 이렇게 평했습니다. “한마디로 바른 생활 사나이입니다. 일도 매우 열심히 하고,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도 어디 흠 하나 잡을 데 없는 사람입니다.”

A 검사의 대학 동기인 한 경찰 간부도 “매우 성실하고 열심히 근무하는 검사입니다. 늘 공부하고 연구하는 자세로 주변에 모범이 되고 있습니다”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A 검사를 아는 다른 법조인들의 반응도 비슷했습니다. 그만큼 A 검사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평가는 매우 좋았습니다.

● A 검사는 재력가 송 씨 장부에 왜 적혔을까?

이렇게 ‘바른 생활 사나이’로 불리던 A 검사는 재력가 송 씨와는 어떻게 알게 됐을까요? 송 씨가 기록한 금전출납부엔 A 검사의 이름이 왜 적혀 있을까요? 당사자인 송 씨가 숨진 상황에서 정확한 이유를 확인하긴 쉽지 않습니다.

다만, 송 씨의 그동안의 행적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점은 있습니다.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하는 건 A 검사의 근무 이력입니다. A 검사는 지난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서울 남부지방검찰청에서 근무했습니다. 남부지검은 숨진 송 씨의 사무실이 위치한 강서구를 관할하고 있습니다. 당시 송 씨는 강서구에서 가장 활발하게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지 두 사람이 만날 기회가 만들어졌다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A 검사는 검찰조사에서, 지인의 소개로 송 씨를 만났고 수차례 식사를 대접받은 적이 있다고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주목해야 할 송 씨가 매일 기록했다는 금전출납부, 이른바 ‘매일 장부’입니다. 송 씨는 자신이 만난 사람과 쓴 돈의 액수 등을 매우 꼼꼼하게 기록해왔습니다. 송 씨는 심지어 택시비와 자장면 식사비까지 기록하는 치밀함을 보였습니다.

이에 대해 한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장부에 적힌 내용을 보면 송 씨가 돈에 대해 얼마나 철두철미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는 송 씨가 돈을 헛되게 쓰지 않았다는 걸 의미한다. 결국, 장부에 적힌 사람은 어떻게든 송 씨 자신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실제로 A 검사가 서울 남부지검에 근무했던 동안 송 씨는 여러 건의 송사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A 검사가 송 씨에게 편의를 봐주거나 사건에 개입한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 허술하고 엉성했던 검찰 수사

이런 논란이 계속되자, 수사를 맡은 남부지검은 장부에 A 검사 이름이 적힌 건 단 한 번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이 수사 초기 확보한 장부 원본엔 A 검사 이름이 열 번 가량 적혀 있다는 언론보도가 나오자, 1번이 아닌 2번이라고 말을 바꿉니다. 금액도 수백만 원에 불과하다고 설명했습니다. 검찰의 이런 주장에 대해 경찰이 다시 반박하고 나섰습니다. A 검사의 이름이 적힌 건 두 번이 아닌 열 번이 맞고, 금액도 2천만 원에 가깝다고 밝힌 겁니다.

두 수사기관의 주장이 어긋나자, 검찰은 다시 확인해보니 열 번 적혀 있었다고 입장을 번복합니다. 금액도 애초 밝힌 수백만 원이 아닌 1,780만 원이라고 정정했습니다. 남부지검은 송씨 아들이 장부를 검찰에 제출하기 전 A 검사의 이름을 수정액으로 지웠는데, 그걸 미처 다 확인하지 못했다고 해명했습니다. 또, 경찰이 원본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원본이 없다고 거짓말해 사실 확인이 늦어졌다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남부지검의 주장에 대해선 검찰 내부에서도 비판이 일었습니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검사가 할 수 있는 수준의 해명이 아니다. 장부를 확보하면 사람부터 꼼꼼하게 확인하는 게 수사의 기본이고 출발인데, 그걸 그렇게 허술하게 봤다는 게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검찰이 진행했던 과거 수사를 보면 남부지검의 설명은 더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지난 2009년 한명숙 전 총리 금품수수 사건 당시, 검찰은 장부에 적힌 'H'란 글자를 모두 한 전 총리를 지칭하는 것으로 판단해 기소했습니다. (남부지검 수사 담당자에게 이런 사실을 얘기하고, 이에 대한 입장을 물었지만 뚜렷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검찰이 장부와 관련된 사건을 축소하려고 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번 사건을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어차피 돈을 준 공여자가 죽은 상황에서, A 검사가 대가성이 있는 돈을 받았다는 걸 증명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잘못 건드렸다간 의혹만 커지고 나중에 혐의를 입증하지 못하면 수사하는 검찰 입장에선 매우 난처해진다. 검찰 내부 인사가 연루된 만큼, 살인교사 부분만 해결하고 장부는 덮고 가는 게 좋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 감찰본부의 수사 결과는?

이처럼 검찰이 제 식구 감싸기에 나섰다는 비판이 나오자, 김진태 검찰총장이 직접 나섰습니다. 대검 감찰본부에 직접 수사를 지시한 겁니다. 그동안 감찰본부는 감찰을 먼저 진행한 뒤 혐의점이 발견되면 수사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예외적으로 이 과정을 건너뛰고 바로 수사에 착수한 겁니다. 검찰 내부적으로 그만큼 이번 사건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결과적으로 검찰이 연이어 거짓말했다는 비판을 받게 되자, 검찰에 대한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꺼낸 고육지책이란 겁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또 다른 계산도 포함돼 있습니다. 검찰은 그동안 검사의 비위 사건이 발생하면 검찰총장이 ‘특임 검사’를 지명하는 방식으로 수사를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공여자가 숨진 상황에서 A 검사가 관련 혐의를 부인하면 사실상 기소가 어렵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기소가 어렵다면, 징계청구권이 있는 감찰본부를 통해 기소 대신 A 검사를 자체 징계하겠다는 계산을 수사를 시작하기 전부터 고민한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감찰본부는 지난 2일, A 검사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조사 했지만, 혐의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송 씨를 만나 식사 등을 한 적은 있지만, 금품을 받은 적은 없다”는 진술만 들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앞서 송 씨 아들도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했지만, “A 검사와 한 번 마주친 적이 있을 뿐이고 금품 전달 사실은 전혀 아는 바가 없다. 아버지한테 ‘아는 검사’란 얘기를 들은 정도”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감찰본부는 A 검사와 송 씨 사이의 연결고리 역할을 한 제3의 인물도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조사 했지만, 마찬가지로 혐의 입증엔 실패했습니다. 이들의 계좌도 추적해봤지만 별다른 단서를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무혐의 처분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선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며 말을 아꼈습니다. 하지만, 이미 내부적으로는 A 검사를 기소하지 않고 ‘검사 징계법’에 따라 징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 풀리지 않은 의혹

그러나 의혹은 여전합니다. 우선, A 검사가 송 씨의 형사 사건 처리와 관련해 청탁했는지에 대한 수사가 미진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A 검사가 송 씨에게 금품을 받은 것으로 기록된 2005~2011년, 송 씨는 여러 건의 사기 혐의 송사에 휘말렸습니다. 하지만, 감찰본부는 관련 수사기록만 검토한 뒤 A 검사가 편의를 봐주거나 사건에 개입한 흔적은 전혀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당시 A 검사와 송 씨 사건 담당 검사와의 통화 내역 등도 추적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송 씨 아들이 장부에서 A 검사의 이름을 삭제한 이유도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검찰은 “수정액으로 삭제한 이름 중엔 A 검사만 있는 것이 아니고, A 검사의 경우도 ‘검사’란 단어는 지우고 이름은 그대로 놔둔 것 등으로 볼 때, A 검사의 금품수수 혐의와 관련한 증거은폐로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감찰본부는 최선을 다해 조사할 만큼은 했다고 하면서도, 관련 법리검토를 면밀히 한 뒤 최종 감찰결과 보고서를 감찰위원회에 넘겨서 논의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대검 감찰본부는 언론의 감시를 피할 수 있는 토요일에 A 검사를 소환 조사했습니다. 결과 역시, ‘무혐의 처분’으로 기울고 있습니다. 감찰본부의 직접 수사는 떠들썩하게 시작했지만, '혹시나' 했던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고 '역시나'로 끝날 것으로 보입니다.

※ 취재과정에서 전·현직 법조인, 경찰, 언론인 10여 명의 자문과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