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소련 외무장관이던 에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가 지난 7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전 세계인에게 셰바르드나제의 이름은 귀에 익습니다. 소련 붕괴 당시 고르바초프와 함께 동서 냉전 종식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그는 결국 세계 질서를 재편했습니다.
셰바르드나제가 1985년 소련 외무장관으로서 처음 국제 외교 무대에 등장했을 때 세계는 상당히 당황했습니다. 당시 소련 외무장관은 1957년 부터 무려 28년 간 안드레이 그로미코가 계속 해 왔습니다. 그런데 고르바초프가 이름도 생소한 셰바르드나제 당시 조지아 공화국 제 1서기를 외무장관에 기용했던 것입니다. 기자 초년병이었던 저는 지금도 외신에 거의 매일 등장하던 셰바르드나제의 이름을 익히기 어려웠던 기억이 납니다. 심지어 당시 뉴스에 한 기자가 셰바르드나제의 정확한 이름을 발음하지 못해 '셰바르나드제'라고 발음했던 웃지못할 기억도 있습니다.
생소했던 셰바르드나제는 그러나 곧 세계인의 관심의 초점이 됐습니다. 미.소 양국으로 대표되던 냉전 시대의 한 축이기도 했지만 고르바초프와 함께 펼치는 페레스트로이카, 글라스노스트라는 과감한 정책에 모두가 주목한 것입니다. 개혁 개방으로 번역되는 이 정책으로 소련 뿐 아니라 세계가 변했습니다. 1985년 부터 1991년 사이 셰바르드나제가 소련 외무장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독일이 통일됐고, 동구권이 소련에서 떨어져 나왔습니다. 89년 12월 고르바초프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몰타에서 회담을 가진 자리에서 엄숙히 선언합니다. "소련은 더이상 미국의 적이 아니다" 냉전의 벽이 사라졌습니다. 91년 말에는 결국 소련이 붕괴됐습니다. 세계 질서가 변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변화의 한 가운데에는 고르바초프와 셰바르드나제가 있었습니다.
우리와도 직접 상관이 있는 것이 당시 노태우 정권의 북방정책과 맞물려 있었습니다. 노태우 정권은 소련, 중국과 수교할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소련의 외무장관이 바로 셰바르드나제였던 것입니다. 그는 결국 한국과 소련이 수교할 당시 한 축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1990년 유엔 본부에서 '한소 수교 공동성명서'에 서명했습니다. 한국과 소련 수교의 직접 당사자인 것입니다.
셰바르드나제는 이후 또 한 차례 세계의 주목을 받습니다. 이번에는 찬사의 대상이 아니라 비난의 대상이었습니다. 92년 고향인 조지아로 돌아가 국가평의회 서기에 취임한 뒤 95년 대통령에 당선돼 최고 권력을 누렸지만 권력이 그를 망쳤습니다. 2003년 11월 부정선거 시비로 촉발된 이른바 '장미 혁명'으로 권좌에서 쫓겨났습니다. 셰바르드나제가 초기에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이유가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 제 1서기 당시 강력하게 추진했던 반부패운동 때문이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부패 때문에 쫓겨났다는 것은 아이러니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에 대한 평가는 이중적입니다. 소련 외무장관 시절에 대한 평가는 당연히 세계 역사를 바꾼 업적이 위주가 되고, '장미 혁명'의 대상이었다는 점에서는 부패, 권력 남용의 상징이 되기도 합니다. 영국의 가디언 지는 '우리 시대의 중요한 인물 중 하나로 역사에 남을 가치가 있는 사람, 소련을 냉전에서 벗어나게 한 인물, 압하지야 분리주의자들의 위협에서 국가의 주권을 수호한 사람, 그러나 자신과 가족의 부패 의혹으로 명성에 먹칠을 한 사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조지아 정부는 국가장례위원회를 구성해 장례를 치를 준비에 나섰습니다. 그만큼 중요한 인물이라는 인식입니다. 애도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조지언타임스에 따르면 하비에르 솔라나 전 나토 사무총장은 "독일 통일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아마도 그의 업적에 대한 최상의 평가일 것입니다. 마야 외무장관은 독일인들이 아직도 셰바르드나제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심지어 '장미 혁명'을 통해 그를 몰아 냈던 미하일 샤카쉬빌리 전 대통령도 "소련 붕괴 시대의 세바르드나제는 중요한 인물이었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조국 조지아는 또 한 차례 반전을 맞습니다. 셰바르드나제를 몰아내고 대통령이 된 샤카쉬빌리는 2008년 러시아와 전쟁을 벌여 자국의 영토였던 남 오세티아를 사실상 빼앗겼습니다. 평생 조지아를 위해서 살았던 셰바르드나제는 어떤 생각을 하며 숨을 거뒀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