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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참전용사가 남긴 '한국전쟁의 망중한'

입력 : 2014.06.24 05:00

참전용사협회 더크 루 회장, 아버지 남긴 당시 사진 공개


'밀집 모자를 쓴 채 타작을 하는 농부들' '수차(水車)에 올라 장난삼아 돌려보며 재미있어하는 벽안의 참전용사' '한강 다리를 건너는 군용 지프 차' '우물가에 앉아 빨래하는 아낙네들'… 한국전쟁이 중반에 돌입할 무렵 남아프리카공화국 공군 참전용사 요하네스 루(1998년 72세로 사망)의 카메라에 담긴 한국의 풍경들이다.

한국전쟁 64주년을 앞두고 남아공 한국전참전용사협회(SAKWVA) 회장이자 루의 아들인 더크 루(57) 대령이 24일 연합뉴스를 통해 당시의 생생한 모습을 담은 컬러사진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검정 고무신을 신은 아낙은 바가지에 담긴 콩을 조리질하고 흰 고무신을 신은 아낙은 구정물을 비우고, 다른 아낙은 빨래를 해 풀밭에 널어 말린다.

무거운 짐을 머리에 일 때 받치는 고리 모양의 똬리와 바가지, 싸리로 엮어 만든 광주리 등 옛날 가정용품들이 정겨워 보인다.

전쟁통에도 백인 병사의 카메라에 미소를 지어 보이는 초로의 아주머니 모습도 여유가 있어 보인다.

적산가옥으로 보이는 일본식 2층 집 앞에서 짐꾼인 듯한 남성이 조금은 지쳐 보이는 황소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남성의 두터운 모자와 코트와 목도리를 걸친 여성들의 옷차림, 앙상한 가로수 등이 한가로운 초겨울 정취를 느끼게 한다.

푸른 초원을 배경으로 타작을 한 뒤 검불을 걷어내는 농부들의 모습은 자못 목가적이기까지 하다.

한국전에 참전한 외국인 용사들이 참호를 판 뒤 잠시 포즈를 취한 장면과 'HAN RIVER HIGHWAY BRIDGE'(한강 도로교)라고 영문으로 쓰인 한강 다리를 건너는 군용 지프 등에서 약하게나마 전쟁상황을 느낄 수 있을 뿐이다.

남아공 현역 공군 대령인 루 회장은 참전용사들이 고령화됨에 따라 지난해 참전용사가 아닌 후손으로는 처음으로 회장을 맡았다.

루 회장은 "이 사진은 아버지가 한국전에 참전했던 1952년 9월 4일부터 같은해 11월 12일 사이에 촬영한 것으로 영사기용 슬라이드로 보관해오던 것"이라며 "시간이 오래 경과했음에도 불구하고 보관상태가 너무 좋고 색감이나 선명함이 믿을 수 없이 깨끗하다"고 말했다.

루 회장은 "아버지가 생존해 계실 때 한국전쟁과 고아 등에 대해 지겨울 정도로 들었지만 그때는 흘려들었다"고 고백하고 "회장이 되면서 한국전과 남아공 참전용사들의 활약상에 대해 더 알기 위해 자료를 정리하고 더 오래 보관하기 위해 디지털화하면서 '아버지의 얘기가 이 사진 얘기구나' 하는 것이 많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남아공에서 한국전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이 몇 명 없으며 이것이 참전용사협회를 관리하고 사진을 정리해서 공개하는 이유"라고 말하고 "아버지가 좋아하실 것 같다"며 웃어보였다.

아버지는 한국 사람들과 한국전에서 보았던 고아들 이야기를 자주 했으나 "좋은 전쟁은 없다(There is no good war)"라며 전쟁에서 있었던 잔인함이나 폭력에 대해서는 잘 언급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루 회장은 그러면서 부친이 지난 1992년 한국을 방문하고 나서 "너무도 발전해 도무지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면서 항상 한국을 격찬했다고 덧붙였다.

루 회장의 아버지는 6·25 당시 진해의 K10 기지 등에서 남아공의 제2 비행대대 지상요원으로 근무했다.

루 회장은 "한국에서 해마다 한국전 참전용사 모임이 있었는데 노병들이 나이가 너무 많아 작년에 끝이 났다"면서 "그 후손들은 아버지가 몸바쳐 싸웠던 나라에 가보는 기회가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남아공은 한국전에 연인원 800여 명의 공군 전투비행대대와 34명의 육군 병력을 파병했으며 34명의 조종사 등 모두 36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됐다.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