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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리퍼트, 중재역을 맡아, 말아?

이성철 기자

입력 : 2014.06.20 14:01


"도대체 미국과 가까운 나라들 사이에 한국, 일본 만큼 관계가 어려운 나라가 없죠. 리퍼트씨! 한일 관계 개선을 어떻게 추진할 생각입니까?"

미 의회 상원 덕슨 빌딩 419호. 6월 17일 주한 미 대사 인준 청문회에서 민주당 카딘 의원이 마크 리퍼트 (Mark Lippert) 대사 지명자에게 던진 질문이다.

"대사로 인준된다면 케네디 대사, 그리고 워싱턴의 국무부 팀과 함께 중재역을..."

'mediation role - 한일 관계 중재역'이라니.. 일본의 과거사 부정과 군사력 확장으로 동북아 정세가 어느 때보다 복잡한 때 귀를 쫑긋하게 하는 말이었다. 서울과 도쿄에서 미국의 두 대사가 나서서 중재역을...? 케네디는 캐롤라인 케네디 주일 미국 대사를 일컫는다.

월드컵 와중, 그것도 한국 대표팀이 러시아와 첫 경기를 치르는 날이었지만 서둘러 써야 할 기사였다. 청문회가 끝나고 한국과 일본 취재진이 리퍼트에게 이런 저런 질문을 쏟아부었다. 묵묵부답이었다. 하도 답답해서 ‘한국과 미국이 월드컵 결승에서 맞붙는다면 어느 팀을 응원할 거냐?’는 질문까지 던져봤다.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초여름 끈적끈적한 무더위에 급하게 지국으로 돌아왔다. ‘중재역’ 기사를 쓰면서 비공식 녹취록과 함께 의회 상원 외교위 웹사이트를 뒤졌다. 동영상을 돌려보며 리퍼트의 말을 다시 확인해야 했다.

이성철 취재파일"중재역을 맡겠다(would)?" "맡지 않겠다(wouldn't)?" ‘중재역’이라는 말은 확실한데 이걸 맡겠다는 건지 맡지 않겠다는 건지 발음을 확신할 수 없었다. 전후 맥락도 모호했다.

한국과 러시아 1:1. 월드컵 첫 경기는 끝나가고 뉴스 시간은 다가오고.. 확인하지 않은 것을 기사로 쓸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한-일 간 대화 권장'을 포인트로 기사를 작성했다.

아니나 다를까.. 워싱턴 시간 심야, 한국 시간 정오 즈음에 사단이 난 모양이었다. "중재역을 맡겠다"고 장문의 기사를 쓴 한 유력 매체는 정정 보도를 냈다. "중재역을 맡지 않겠다"고. 다음날 아침에 나온 뉴스도 매체마다 중구난방이었다.

'외교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한 정부 고위 당국자, 그것도 대사 지명자의 인준 청문회 발언이 180도 정반대로 알려지다니..'

국무부 동아태국이 발칵 뒤집혔다. 서울의 미국 대사관을 통해 정정 보도를 요구했다고 한다. 문제가 불거지자 워싱턴의 주미 한국대사관도 청문회 동영상을 돌려보며 확인했다는 후문이다.

워싱턴의 외교가에서는 미국이 통상 한일 간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지만 중재역(mediator)을 할 수는 없다는 게 기본 입장이라고 얘기를 해 온 것으로 보고 있다. 정치적으로 예민한 문제인데다 자칫 떠맡게 될 위험도 크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이 'would' - 중재역을 맡겠다 - 고 했다면 그게 이상한 거죠."
한 외교 소식통의 설명이다.

그러니까 더더욱 언론의 귀를 쫑긋하게 했고, 꼭 전해야 할 뉴스 감이었으리라.

이성철 취재파일국무부 동아태국에서 공보 업무를 맡고 있는 젊은 친구에게 확인을 요청하는 메일을 보냈더니 곧 답장이 왔다.

"중재 역할을 맡지 않겠다(wouldn't)"고 말했습니다."

짧은 답변과 함께 해당 부분 문답을 담은 녹취록을 첨부했다.

'허! 영어를 더 잘 해야 하나?'

대화는 화자(話者)와 청자(廳者) 간의 소통이다. 의회 청문회에서 화자는 1명이지만 청자는 청문회장 자리를 지키는 3~4명 소수 의원들만이 아니다. 누구나 청문회 장에 와 방청할 수 있다. 역시 관심 있는 이해 관계자는 전 세계 어디서든 미 의회 웹사이트를 통해 생중계로 지켜볼 수 있다.

리퍼트가 헷갈리는 'wouldn't' 대신에 'would NOT'이라는 표현을 썼으면 어땠을까? 영어를 모국어로 쓰지 않는 청자들에게도 의도를 좀 더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지 않았을까?

41살의 젊은 나이에 초임 대사가 될 리퍼트도 '앗 뜨거!' 했을 성싶다. 복잡한 한미일 3각 관계에서 소통의 어려움, 민감성을 깨달았으리라. 물론 오해의 최종 책임이 뉴스를 잘못 전달한 언론에 있음에는 두말 할 나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