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균을 행보를 보노라면 '가늘고 길게 가는 배우'라는 생각이 든다. 소위 '대박'이라 말하는 500만, 1,000만 이상의 히트작은 없지만, 출연 영화 대부분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이는 제작자들이 이선균이라는 배우를 신뢰하는 밑거름이 됐다. 안정적인 연기력에 대중의 폭넓은 인지도까지 갖추는 것은 쉬워 보이지만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이선균은 데뷔 후 꽤 오랜 무명생활을 보낸 뒤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2007)을 통해 연예계 중심 궤도 에 진입했다. 이후 7년, 그에겐 큰 부침이 없었다.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넘나들며 종횡무진 활약하고, 양쪽 모두 큰 실패를 거둔 적이 없다.
홍상수 감독의 페르소나로 베를린과 베니스국제영화제 레드카펫도 밟았고, '파스타', '골든타임' 등 드라마로도 승승장구했다. 그럼에도 대중의 뇌리에 가장 크게 각인된 작품은 여전히 '커피프린스 1호점'이었다. 대표작이 출세작이라는 건 배우 본인에게도 적잖은 아쉬움일 터. 하지만 올해 이선균에게 또 다른 대표작이 추가됐다. 바로 현재 극장가에서 흥행몰이 중인 영화 '끝까지 간다'(감독 김성훈)다.
'끝까지 간다'는 한 순간의 실수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형사 ‘고건수’(이선균)가 자신이 저지른 사건을 은폐하기 시작하며 벌어지는 예측불허의 이야기를 그린 범죄 액션 영화. 이선균은 이 작품에서 하루 아침에 뺑소니 살인범으로 쫓기는 형사 고건수 역을 맡았다.
기자가 이선균을 다시 마주하게 된 건 영화 '화차' 이후 2년 만이었다. 그때와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실제 이선균은 브라운관에 비치는 이미지와는 조금 다르다. 할 말은 안되 군말은 없는 인터뷰이다. 그 때문에 인터뷰가 말의 향연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이선균은 에너제틱했고, 약간 들떠 보이기까지 했다. 영화에 대한 강한 자신감이 얼굴과 입에서 터져 나온 것이다.
"'끝까지 간다'의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참신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개성에 매료돼 출연을 결정했다. 영화를 다 찍고 음악이 들어가지 않는 편집본을 보는데도 우리가 추구했던 방향대로 잘 빠졌구나, 적어도 관객들이 이 영화를 지루해하지는 않겠구나 하는 확신은 들었다"

'끝까지 간다'가 이선균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건 시나리오의 몫이 컸다. 특히 장르 영화로서의 확실한 개성을 보여주는 시체보관실 시퀀스는 이선균의 뇌리에 강렬하게 남았다.
이선균은 "어떻게 보면 그 장면 때문에 이 영화를 하게 된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배우로서 장르의 확장 같은 욕심은 있었다. 이 작품을 제대로 소화하면 액션 장르에 대한 자신감, 액션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넓히는 기회가 되겠구나 싶었달까. 하지만 그보다는 독특한 한국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액션과 스릴러의 장점을 고루 취하면서 코미디까지 유지하는 힘이 '끝까지 간다'의 매우 독특한 매력이었다"
스스로 '생계형 배우'라고 말하는 이선균이지만, '끝까지 간다'에서는 그야말로 '신 나게' 연기했다. 배우가 작품과 캐릭터를 즐기고 있다는 사실이 보는 이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될 정도다. 이선균은 이 작품에서 장르 영화에서 배우가 뽐낼 수 있는 연기 테크닉을 화려하게 구사하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캐릭터에 몰입하게 했다.
"현장의 분위기가 무척 좋았다. 촬영장에서 늘 좋을 수만은 없는데 이번 영화는 유독 감독과 스태프, 배우들간의 호흡이 좋았다. 회차가 쌓일수록 신뢰가 깊어지는 현장이었고 시너지는 커졌다. 특히 김성훈 감독은 배우들의 의견을 잘 경청해주고, 믿어줬다"

시체 안치실신은 이 영화의 시그니쳐에 가깝다. 이선균은 이 장면을 1인극에 출연한 연극배우처럼 소화해냈다. 좁은 공간, 제한된 동선 안에서 움직이며 '고건수'라는 인물이 처한 위기를 속도감 있게 보여줬다.
"2% 부족한 맥가이버처럼 보이고 싶었다. 절박하면서도 긴장감을 늦을 수 없는 고건수의 상황도 보여줘야 했다. 고건수가 이 상황을 코믹하게 연기하면 영화가 가벼워지고, 절박한 상황이 진실해 보이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진짜를 보여주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체를 유기하는 과정에서 고건수가 하는 행동들은 모두 실제로 한 것이다. 관 뚜껑을 실제로 박고, 실체를 밧줄로 당기고...그걸 지켜보는 관객은 웃겨 보일수도 있겠지만, 고건수의 입장이 된 나는 너무 머리가 아팠다. 너무 머리를 쓰면 머리가 핑 도는 것처럼...집중해서 찍었다. 그래서 잘 나온 것 같다"
'끝까지 간다'에서 이선균은 데뷔 이래 처음으로 제대로 된 액션 연기를 선보였다. 이선균은 치열하게 소화했던 액션 연기에 대해 "징글징글했다. 잔 부상도 많이 당해서 온몸이 아픈데도 카메라가 돌아가면 이선균이 아닌 고건수가 돼더라. '컷'소리가 나오면 다시 이선균의 몸으로 돌아와 삭신이 쑤시더라"고 말했다.
이선균 이번 영화를 위해 크랭크인 전 권투를 배웠다. 특별한 스킬을 배우기 위함이 아니라 체력 단련 차원이었다. 권투로 단단하게 만든 이선균은 쫓고 쫓기는 박창민과 고건수의 대립 관계를 생동감 넘치는 액션으로 보여줬다. 어린 시절 육상을 했던 기본기도 역동감있는 액션을 보여주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최근 몇 년간 다작해온 탓에 이선균의 에너지는 고갈된 감이 없잖았다. 실제로 그는 지난해 출연했던 SBS '행진-친구들의 이야기'에서 자신을 괴롭혔던 슬럼프에 대해 고백한 바 있다. 그러나 일주일간의 도보여행을 통해 큰 힐링을 받았고, 다시 일어났다.
그 여행으로 되찾은 활력을 모두 쏟아부은 작품이 '끝까지 간다'였다. 이선균은 '끝까지 간다'에 대해 "모든 작품이 다 나에게 의미있고 소중하지만, '끝까지 간다'는 내가 끌고 가야 한다는 부담과 책임감을 크게 느꼈던 작품이라 더욱 특별하다. 그 과정에서 내가 좀 더 튼튼해졌다"라고 말했다.
더불어 "이 작품을 통해 좋은 감독님과 좋은 형, 동생을 얻은 게 가장 기쁘다. 감독님, (조)진웅이에 대한 신뢰를 확인했다. 작품이 끝나도 오랫동안 함께 갈 친구가 생겼다"고 덧붙였다.
이선균은 "'끝까지 간다'는 나에게 많은 여지를 준 작품이다.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며 '이선균이 이런 것도 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결과를 떠나 나에게 많은 공부가 됐던 영화다"라고 깊은 애착을 드러냈다.
'끝까지 간다'는 개봉 4주차에 전국 200만 명을 돌파하며 신바람 흥행 중이다. 이선균의 노력은 관객과의 교감으로도 이어진 셈이다.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김지혜 기자)
<사진 = 김현철 기자khc21@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