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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밥 먹고 하는 일'만 잘했더라면…

박아름 기자

입력 : 2014.06.16 13:08


세월호 침몰 사고가 나고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 일입니다.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체육관에서 뉴스특보 중계와 취재를 맡아 며칠째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취재를 위해 몇몇 가족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는데 워낙 언론에 대한 불신이 큰 시기였던지라 대부분 “SBS 박아름 기자라고 합니다.”라는 말만 들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리를 피하거나 격한 반응을 보일 때였습니다.

그날은 한 시간쯤 체육관 안팎을 전전하던 중 한 부부를 만났습니다. 단원고 2학년 여학생의 부모님이었습니다. 두 분은 지친 표정으로 나란히 앉아 TV 뉴스를 보고 계셨습니다. 제가 잠시 얘기를 나눠도 되겠느냐고 묻자 어머님의 첫 마디는 “SBS 기자라고? 우린 SBS 안 믿는데?”였습니다. 어머님의 경계심이 느껴졌지만 사실 그때의 솔직한 심정으로는 대답이라도 해주시는 게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어머님은 사고 초기 ‘전원 구조’ 오보로 인한 가족들의 상처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후에도 지상파 3사를 비롯한 기성 언론들이 구조 작업에 대한 명확한 사실을 제공하지 않았다며 불만을 토로하셨습니다. 어머님의 말씀이 길어지자 무거운 표정으로 무릎 꿇고 앉아 얘기를 듣는 제가 안쓰러웠던지 옆에 있던 아버님께서 편을 들어주셨습니다.

“에이 그만해. 젊은 기자 양반이 뭘 할 수 있겠어. 정부가 그렇게 얘기하는데 이 사람들도 무슨 도리가 있겠어. 어쩔 수 없었겠지 뭐.”

“아닙니다. 저희가 더 잘했어야죠.”

다시 한 번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는 찰나에 어머님께서 하신 말씀이 비수처럼 꽂혔습니다.

“무슨 소리야. 원래 기자들은 정부가 하는 말이 맞는지 아닌지 확인하는 게 일이야. 밥 먹고 하는 일이 그거라니까. 그러려고 기자 된 거 아니야? 욕먹어도 싸지.”

가슴이 쿵 내려앉고 말문이 막혔습니다. 너무 부끄러워서 쥐구멍이라도 찾아 숨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체육관에 온 뒤로 가족들을 마주칠 때마다 입에 달고 살았던 죄송하단 말조차 무색하게 느껴질 만큼 그들을 마주할 면목이 없었습니다. 아직 바다에 있는 열여덟 어린 자식을 가슴에 먼저 묻고 있던 그들에게 저는 그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한 명의 가해자일 뿐이었습니다.


● 모두가 ‘밥 먹고 하는 일’에 소홀했던 사이..

이제 꼬박 두 달이 지났습니다. 그날의 대화가 아직도 문득 문득 생각납니다. 얼굴이 화끈거리던 그 순간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아마 그날 제가 어떤 반박도 하지 못한 채 슬그머니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났던 건 스스로 밥 먹고 하는 일을 잘해내고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일 겁니다.

이번 사고와 관련해 책임 있는 사람들은 어떨까요? 그들이 ‘밥 먹고 하는 일’은 무엇인지 따져봤습니다.

화물 적재량을 늘려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기 전에 선박의 안전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청해진해운과 실소유주 유병언 씨 일가, 여객선의 안전 상태를 철저하게 점검해야 할 의무가 있는 한국선급, 이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관리·감독하는 해양수산부, 비상 상황에서 승객들에게 퇴선 명령을 내리고 안전하게 탈출시켜야 하는 이준석 선장과 선박직 선원들, 해양 사고가 났을 때 신속한 구조 활동을 해야 할 의무가 있는 해양경찰, 사회적 재난이 심각한 상태가 되면 모든 상황을 직접 지휘하고 총괄해야 하는 안전행정부, 재해를 예방하고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대통령과 국가.

사고 이후 지금까지 드러난 것은 어느 하나 자신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지 않았단 겁니다. 누구도 제 역할을 못하는 사이 우리 국민 304명이 세월호와 함께 심해로 가라앉았습니다. 이 가운데 12명은 아직도 가족들의 품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 개인의 잘못으로 결론 나서는 안 될 일

사회가 제대로 굴러가려면 누구든 제 위치에서 맡은 일을 잘 해내야 합니다. 넘치도록 잘하진 않더라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최소한은 해야 합니다. 각자가 맡은 바를 잘하고 있을 거라고 서로를 믿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안정적인 체계라는 게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만난 어머님께서 말씀하셨던 ‘밥 먹고 하는 일’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특히 공직자들에게는 ‘밥 먹고 하는 일’의 잣대가 더 엄격하게 적용돼야 합니다. 그들이 먹는 밥은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주어진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전해집니다.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건 청해진해운과 실소유주 일가라고 볼 수 있겠지만 그 배경에는 그들을 제대로 관리 감독하지 않고 방치했던 (혹은 알면서도 눈감아줬던) 관계당국이 존재합니다. 국민의 목숨을 걸고 직무를 태만히 했거나 비리를 저지른 이들은 엄벌에 처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들의 과오는 희미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모든 관심은 유병언 씨가 잡히느냐 마느냐 에만 쏠려 있습니다. 유씨 일가에 대한 수사가 중요하단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행여 한쪽에만 쏠려버린 집중이 이번 사건의 본질을 흐리게 할까 걱정됩니다.

이번 사건은 탐욕스런 개인의 잘못으로 결론 나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또다시 이런 비극이 생기지 않도록 하려면 사태의 본질을 밝혀내고 뿌리부터 바꿔야 합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검찰 수사든 앞으로 진행될 국정 조사든 이번 일의 진상 조사를 맡은 이들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이들을 감시하고 비판해야 할 언론의 역할 역시 중요합니다. 지난 잘못들에 대한 반성을 토대로, 이제는 정말, 우리 모두가 ‘밥 먹고 하는 일’에 충실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