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에서 급진 무장반군의 발흥으로 사실상 내전이 벌어졌습니다. 수니파 무장세력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가 파죽지세로 수도 바그다드를 향해 남진을 계속해 바그다드 바로 북쪽에 전선이 그어진 상태입니다. ISIL은 이라크 정부군을 격퇴하거나 정부군이 포기하고 달아난 지역을 장악하며 바그다드 북쪽 여러 도시를 손에 넣었습니다. 미국은 이라크로 지상군을 보내니 마니, 항공모함을 파견하느니 마니 하면서 군사작전을 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이에 앞서 작년부터 이라크 정부에 본격적인 군사물자를 지원해주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드론, 헬파이어 미사일, 아파치 헬기, 최근엔 F-16 전투기까지 이라크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2011년 미군이 이라크에서 철군한 이후 도처의 반정부 세력을 제압할 정부군의 무장이 부족하니 미국이 힘을 빌려준다는 명분입니다.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좀 미심쩍었습니다. 미국이 무력으로 축출한 사담 후세인 정권도 미국이 지원해 만든 정권으로 미군 무기로 무장돼있었는데 최근 일련의 군사 원조도 그렇게 쓰이는 건 아닐까 하고요. 실제로 이라크 북부 모술에서 출발한 ISIL은 점령한 군 기지에서 수많은 무기들을 탈취하며 나날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이 중에 미군 무기가 있다면 이번 사태에 군사 개입하는 미군은 자신들의 최신 무기로 무장한 ISIL 반군과 싸우는 꼴입니다. 만약 정권이 ISIL이나 다른 반미 반정부 세력에게 넘어가면 미국 입장은 참 곤혹스러워 집니다.
● 드론에서 F-16까지…무기 배달 바쁜 미국
이라크는 이미 미국으로부터 헬파이어 미사일 80기와 스캔 이글 드론 수십대, 그리고 아파치 공격 헬기도 몇대 구입했습니다. 말이 구입이지 원가도 안되는 가격으로 넘기는 원조 형식입니다. 150억 달러 규모의 군사지원 계약에 따른 것인데 미국은 약속된 나머지 헬파이어와 스캔 이글 등의 선적 시기를 앞당기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계약 기간에 맞춰 느긋하게 무기 보냈다가는 나라 주인이 바뀐 뒤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라크는 현재는 헬 파이어 미사일을 소형 항공기에 장착해 반정부 세력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아파치 헬기가 이라크에 본격적으로 도착하면 아파치에 장착해 적들을 소탕하겠지요. 스캔 이글은 소형의 저고도 무인기로 정찰용입니다.
또 이라크는 미국에 F-16 전투기 36대를 요구했고, 이미 한 대가 이라크에 도착했습니다. F-16 제조사인 록히드 마틴은 한달에 한 대꼴로 이라크 F-16을 생산해 인도한다는 계획입니다. 내년 말이면 이라크 정부가 10대 이상의 F-16을 확보하게 되니 무주공산 이라크 영공의 제공권을 확실하게 틀어쥘 수 있을 겁니다. 조만간 공격용 드론도 이라크로 인도될 예정입니다. 미국의 이라크 군사 지원 목록에는 이밖에도 M-1 에이브람스 전차 140대, C-130 수송기 6대 등도 포함됐습니다. 미국이 이라크 군을 완전히 새롭게 재건하는 수준입니다.
● 미국 지원 무기는 지금 누구 손에
이미 이라크로 인도된 미국 무기들은 어디에 배치됐을까요? 만약 바그다드 북쪽에 뒀다면 ISIL 손에 들어갔을 공산이 큽니다. 이라크 정부군이 ISIL에게 속수무책 당하거나 싸워보지도 않고 달아났다는 외신 보도들이 미국산 무기가 이미 ISIL에게 빼앗겼을 것이란 우려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2003년 미국의 침공으로 완전히 무장 해제된 이라크 땅에서 미국의 원조 무기를 손에 쥐는 세력은 손 쉽게 ‘갑’이 될 수 있습니다. ISIL이 남진하는 무서운 속도를 보면 이미 '갑'이 된 건 아닌지 걱정 됩니다.
이라크 정부군이 ISIL과 맞서 싸울 능력을 이미 잃었으니 이라크 정부는 미국의 개입을 간절히 바라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미국이 이라크에 군사 개입하는 순간, 어쩌면 미국은 자기 돈으로 사서 건넨 무기로 무장한 세력과 전쟁을 벌여야 하는 당황스러운 처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침공과 철군으로 현재의 이라크 상황을 초래한 ‘원죄’는 미국에게 있는 만큼 미국은 누구한테 하소연할 수도 없습니다. 이번 ISIL 사태가 마무리되면 미국은 계산 잘해서 이라크에 군사 원조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