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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84시간, 2호선을 지배한 위험 인자들

최우철 기자

입력 : 2014.05.09 09:20|수정 : 2014.05.09 12:48

추돌 사고 낳은 위험인자 그리고 안전불감증


 믿기 어려운 사고는 5월 2일 오후 3시 30분에 발생했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깊은 상처가 전국을 짓누르고 있던 터라, 충격은 더 컸습니다. 249명이 부상하고, 49명은 이틀 넘게 입원치료를 받았습니다. 지금껏 수사 결과를 보면, 사고는 몇 가지 작은 위험요소가 겹치면서 발생했습니다. 한 가지 요소만으론 사고로 이어지지 않는, 작은 위험인자입니다. 그러나 충분히 일상 업무로도 알아차릴 수 있고 고칠 수 있는 게 바로 위험인자입니다. 알고도 방치된 위험인자들. 그래서 이번 2014년 5월의 상왕십리 2호선 추돌사고도 안전 불감증이 낳은 후진국형 사고라고 정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평일 오후, 그래서 더 위험했던 시간

사고는 평일 오후에 일어났습니다. 그나마 탑승객이 적었기에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하지만 평일 오후였기에 생긴 위험인자도 있습니다.
 
사고 차량의 제어 시스템은 ATS(열차 자동정지 장치)입니다. 쉽게 말해 구형 방식입니다. 신형 AT0(열차 자동운전 장치)와 비교하면, 정지 신호가 뜨면 자동정지가 가능하다는 점이 똑같습니다. 기관사의 수동제어와 신호에 따른 자동제어까지 2중 제어방식은 같습니다. 신형 ATO 열차는 관제소에서 원격으로 열차를 멈추고 움직이게 하는 기능까지 갖춘 점이 다릅니다. 3중 제어인 ATO가 좀 더 안전한 겁니다.
 
그래서 서울메트로는 출퇴근 시간엔 ATO 열차만 투입합니다. 2호선엔 하루 79대의 열차가 투입됩니다. 구형 ATS 차량은 45대, 신형 ATO는 34편입니다. 출퇴근 시간엔 배차 간격이 2분까지 줄어듭니다. 이번 사고는 사고 구간의 '속도'를 높이려고 데이터를 수정했는데, 이게 '신호'에 오류를 주면서 발생했습니다. 오류는 구형인 ATS에만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래서 출퇴근 시간 2호선을 달린 열차는 사고위험이 거의 없었던 겁니다.
 
평일 오전과 오후,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면 배차간격이 6분까지 늘어납니다. 신호 오류를 일으켰다고 해도, 열차가 역으로 들어올 때, 앞차가 멈춰서 있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이런 사고는 없었던 겁니다. 하지만, 이번엔 한산한 시간에만 운영되는 구형 제어시스템의 오류와 앞 열차의 출발지연이란 위험요소가 결합한 겁니다.

 배차시간 6분, 사고 한번 없었던 평소 경험에 직원들도 안이했습니다. 사고 앞 열차와 종합관제소가 특히 그렇습니다.
 
사고 당일 상왕십리역에 정차해 있던 전동차는 스크린도어가 제대로 닫히지 않아 출발이 1분 32초 지연됐습니다. 그러나 이 기관사는 이런 사실을 관제소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관제소도 앞선 전동차의 출발 지연 사실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출발하라는 무전을 보냈는데, 이미 사고 난 이후였습니다. 기관사와 관제소 모두 ‘6분’이란 간격을 지나치게 믿었고, 뒤에서 열차가 들어와도 ‘신호’가 알아서 멈추게 해 줄 거라고 여긴 겁니다.
 
긴 배차간격과 신호에 의한 자동정지 시스템. 두 가지를 믿고 아무도 손을 쓰지 않는 동안, 잠복했던 위험인자는 결합했습니다. 오후 3시 30분, 신당역에서 상왕십리역으로 들어오던 열차 기관사는 128미터 앞에서야 마지막 빨간 정지신호를 봤고, 필사의 제동을 했지만 사고를 피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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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오류로 알았다”

사고 당일 안이한 분위기에 앞서, 근본적인 위험인자는 사고 사흘 전 이미 싹튼 상태였습니다. 지난달 29일 새벽, 충정로역에서 상왕십리역 구간의 열차 속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을지로입구역 선로 전환기의 데이터를 수정했습니다. 이때부터 신호기에 오류가 발생했다고, 서울메트로는 사고 다음날 밝혔습니다. 신속한 원인 공개였습니다. ‘속도’ 데이터를 고친 게, ‘신호’ 데이터 오류로 이어질지는 몰랐다고 메트로는 해명했습니다.
 
사고의 근본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기술적인 위험인자가 발생한 겁니다. 그러나 위험인자는 무려 나흘 간, 84시간 동안 방치됐습니다. 심지어 평소 업무에만 충실했어도 이 근본적인 위험인자는 제거할 수 있었다는 게, 경찰 수사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서울메트로 신호기계팀 직원은 사고 당일에도 신호기의 오류 사실을 알았지만, 대수롭지 않게 판단해 고치지 않았다고 진술한 겁니다.

서울메트로는 사고가 날 때까진 오류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주장해왔습니다. 그러나 경찰이 서울메트로 신호기계팀을 조사했더니, 사고 당일 새벽부터 이미 사고 때와 같은 오류가 난 것으로 나타나 있었습니다. 서울메트로 담당 직원을 조사한 결과, 사고 당일 새벽, 3일 전 변경한 신호 데이터가 오류가 난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습니다. 사고 14시간 전이었습니다.
 
이 직원은 평소에 자주 발생하는 일반적인 오류라고 생각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경찰에 진술했습니다. 경찰은 지난 6일, 신호기 오류 사실을 인지하고도 조치를 하지 않은 책임 소재를 가리기 위해 서울메트로와 신호 데이터 업체 등 4곳을 추가로 압수수색했습니다. 경찰은 압수수색을 통해 데이터 변경과 점검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조사하고 있습니다. 

애초에 데이터 변경을 제대로 했으면 사고위험조차 없었을 텐데, 위험은 84시간이나 방치됐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이번 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데이터 변경작업은 지난달 29일에 있었습니다. 지하철 2호선 신호기 관리 외부업체가 데이터 변경작업을 끝낸 시각은 새벽 3시쯤입니다. 이 업체와 서울메트로는 새벽 1시 10분부터 10분간 데이터를 입력한 뒤 2시간 가까이 점검을 했다고 경찰 조사에서 진술했습니다. 그런데 신호기 오류는 새벽 3시 10분부터 일어났습니다. 메트로와 외부업체가 2시간이나 점검을 했다고 하는 시점입니다. 사고 사흘 전에 한 번, 사고 나던 날 또 한 번, 미리 사고를 막을 기회를 놓친 겁니다.


참사를 막은 행운 요소들…그러나
 
 추돌 직전, 사고 열차 기관사는 시속 15킬로미터까지 감속했습니다. 128미터 앞에서 그나마, 정상 작동 중이던 빨간색 정지신호를 봤기 때문입니다. 앞에 있던 두 신호기는 노란색 주의, 빨간색 정지 신호 대신 녹색 진행 신호로 오작동 상태였습니다. 마지막 신호마저 정상이 아니었다면, 피해는 더 커졌을 겁니다.
 
그런데 여기엔 작은 행운 요소가 숨어 있었습니다. 정상 작동한 신호기는 앞에 두 개와 달리, 성수역에서 제어를 받고 있던 겁니다. 이것마저 오류를 일으킨 을지로입구역 제어를 받지 않은 게, 불행 중 다행입니다.
 
하지만 출퇴근 시간에도 사고 가능성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닙니다. ATO 열차도 정기점검이나 갑작스러운 이상이 발견되면 운행을 못 하기 때문입니다. 그동안은 사고가 난 ATS 열차가 대신 투입됩니다. 하고 싶지 않은 가정이지만, 만약 출퇴근 시간 ATS 열차가 대신 투입됐을 때, 신호기가 오작동을 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배차 간격 2분, 입추의 여지 없이 승객들로 가득 찬 열차가 같은 사고를 일으켰다면, 결과는 상상하기도 싫습니다.
 
사고위험은 나흘 동안 서울 강북의 2호선 6km 구간에 퍼져 있었습니다. 그동안 하나의 작은 위험인자만 발견해 제거했더라도, 사고는 없었을 겁니다. 이번 사고는 철저한 위험인자 색출과 이를 통한 재발방지의 계기가 돼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