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박사님, 이리 와 보세요. 이 뼈는 아무리 봐도 성인 뼈가 아닌 것 같아요. 어린아이 같아요." "그런 듯하네요. 출산하다 돌아가셨나?"
서울대병원 법의학연구소 신동훈 교수와 단국대 의과대학 해부학교실 김명주 교수는 경남 하동군 금난면 진정리 '점골' 소재 진양정씨 문중묘역에서 발견된 미라 1구를 문중의 동의를 얻어 복식사 전공자들과 함께 서울대병원 부검실로 옮겨 조사하던 중에 다른 사람의 인골로 보이는 뼈 조각들을 발견했습니다.
상태로 보아 어린아이 것이 분명했으며, 더구나 그것이 발견된 지점으로 보아 바깥 구경을 하지 못하고 엄마 뱃속에서, 혹은 출산 중에 사망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미라는 조선 중기 때 정희현(1601~1650)이라는 사람의 두 번째 부인 온양정씨였습니다.
대략 350년 만에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온양정씨에 대해 신 교수는 생몰연도가 족보에도 기록되지 않은 이 여인이 "이가 마모된 상태나 머리카락 상태로 보아 굉장히 젊은 나이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그런데 미라에서 채취한 체내물을 분석한 단국대 의과대학 기생충학교실 서민 교수팀은 폐흡충알 수천여 개를 발견했습니다.
폐흡충알은 폐를 비롯해 간, 장 등지의 장기에서 고루 검출됐는데 알의 분포와 규모를 토대로 적어도 100여 마리에 이르는 성충이 체내에 기생한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보통 성충 5-10마리가 몸 안에서 활동하면 기침과 피가 섞인 가래가 나오고 기관지염이 생기는 등의 감염 증상이 일어난다는 폐흡충이 임산부에게 이토록 많이 발견됐으니, 사망원인은 이에서 찾아야 했습니다.
따라서 하동 미라는 출산 중에 사망했다기 보다는 기생충 감염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훨씬 커졌습니다.
그렇다면 이 여인은 도대체 어떤 경로를 통해 폐흡충에 감염되었을까? 폐흡충은 폐디스토마라고도 불리는 기생충으로 민물게(참게), 우렁, 가재 등을 날것으로 먹을 때 감염됩니다.
서 교수는 하동 여인은 민물가재를 갈아 생즙으로 복용했기 때문에 감염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습니다.
그 이유를 서 교수는 조선시대 기록이나 구전을 보면 가재즙을 이용한 민간요법이 소개되고, 특히 임신 중 질병을 치료하려고 가재즙을 다량 마신 일이 더러 보인 사실을 들었습니다.
이 하동 미라에서 보듯이 미라와 기생충은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조선시대 생활의 일면을 밝혀서 안내하는 CSI인 셈입니다.
기생충과 관련해 최근 들어 곳곳이 대규모 공사에 그에 따른 고고학 발굴이 이뤄진 서울 사대문 안 사정은 가히 충격적인 사실을 알려줍니다.
신동훈 서민 교수 등이 이들 발굴지역에서 채취한 흙시료를 분석한 결과 광화문 앞에서 세종로로 이어지는 서울의 중심가가 온통 분뇨로 덮였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입니다.
조선왕조실록 등의 고문헌에 한양의 심각한 인분 오염 상태가 기록되긴 했지만 흙에서 추출한 기생충알로 실증적으로 밝혀진 것입니다.
연구팀이 밝혀낸 기생충은 간흡충(간디스토마), 회충, 편충, 광절열두조충 등이었습니다.
이들은 포유류나 어류 등 동물을 숙주로 삼아 인체로 침투한 후 장기에서 기생하다 변을 통해 다시 밖으로 나옵니다.
경복궁 앞에서 추출한 흙에서는 1g당 최고 165개의 알이 나왔고, 나머지 샘플에서도 평균 35개의 알이 발견됐습니다.
이 정도면 당시 인분에 의한 흙의 오염도가 상당히 우려할 수준이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렇게 기생충을 매개로 당시 생활사를 생생하게 되살려내는 연구기관들은 미라의 경우 조사 분석을 끝낸 다음에는 관련 기관이나 유족(대체로 문중)한테 미라를 돌려줍니다.
이런 까닭에 현재 국내에 보존된 미라는 총 10~20구 정도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인체 미라를 여타 다른 고고학 출토 유물처럼 전시하기는 곤란하지만 연구 기반은 조속히 확립되어야 할 것으로 지적됩니다.
신동훈 교수는 "미라가 지닌 역사문화적, 의과학적 가치를 고려하면 현재와 같은 불안한 상태의 연구조사보다는 좀 더 안정적인 연구기반을 국내에도 갖추어야 한다"면서 "대개 어느 선진국도 미라 연구는 허용하며 이에 대해 지원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참고해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요컨대 미라와 기생충도 '문화재' 혹은 문화재에 버금가는 인류의 유산이라는 발상 전환과 이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시급한 실정이라는 것입니다.
(SBS 뉴미디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