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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살인범 도피생활 16년 만에 교수가 됐지만…

우상욱 논설위원

입력 : 2014.04.28 10:43|수정 : 2014.04.28 15:57


대은(大隱)이라 불린 동방삭의 나라 중국

한무제 때 동방삭이라는 인물은 학식이 많고 재치가 있어 뛰어난 재담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습니다. 이 동방삭은 흔히 삼천갑자 동방삭이라고 불립니다.

도망자21갑자는 60년, 이 시간을 3천번 반복한 것이니 무려 1만8천년을 살았다는 뜻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동방삭은 서왕모의 복숭아를 세 개나 먹은데다 번뜩이는 재치로 저승사자를 번번히 따돌려 이렇게 긴 세월을 살 수 있었다고 합니다. 동방삭은 스스로를 대은(大隱), 큰 은둔자라고 불렀습니다. 요즘말로 하면 진정한 도망자라 하겠습니다.

저승사자를 피해 1만8천년이나 살았던 동방삭의 후손 답게 중국에는 막강한 공안의 추적을 따돌리고 몇 십 년씩 도피 생활을 하는 빔죄자가 적지 않습니다. 유럽 대륙보다도 넓은 땅에 50여개 민족이 섞여 살다보니 어느 구석으로 슬쩍 스며들어 신분 세탁을 하면 찾아내기가 간단치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런 일도 생깁니다.

사소한 다툼이 살인으로

중국 윈난성 쿤밍시에 살던 런위에펑은 1997년 여자 친구와 함께 서양음식점을 차립니다. 양순밍이라는 지배인에게 음식점 관리를 맡겼습니다. 그런데 그해 4월 장부를 점검하다 양순밍이 공금에 손을 댄 흔적을 발견합니다. 런씨는 양순밍을 해고하면서 빼돌린 공금을 내놓으라고 요구합니다. 하지만 양씨는 "공금에 손을 댄 적이 없다. 증거가 있냐?"면서 버텼습니다.

도망자1양측의 갈등이 커지자 양순밍의 형인 양순샹이 중재에 나섰습니다. 협상 끝에 6천 위안을 되돌려주기로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2천2백 위안만 실제 오갔습니다.

그해 6월 양순샹은 나머지 돈을 주겠다며 런씨를 한 술집으로 불러냅니다. 런씨가 친구 3명과 함께 가보니 양순샹은 여러 명의 건장한 남성과 함께 와있었습니다. 양측이 패싸움을 벌였습니다. 런씨와 친구들은 양순샹을 억지로 택시에 태워 근처 산으로 끌고 갔습니다. 런씨 등에게 몰매를 맞던 양씨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습니다. 런씨의 친구들이 급히 양씨를 병원으로 옮겼지만 끝내 숨졌습니다.

집도, 직장도 버리고 추적의 길로

자신의 일이 발단이 돼 형이 살해 당하자 양순밍씨는 속된 말로 눈이 돌아갔습니다. 주범격인 런위에펑을 찾아 나섰지만 이미 몸을 숨긴 뒤였습니다. 1년 동안 풍비박산난 집안을 정리하고, 큰아들을 잃은 부모를 다독인 뒤 1997년부터 본격적으로 런위에펑의 추적에 나섭니다. 98년 6월 런씨가 광둥성 광저우로 달아났다는 소식을 접합니다. 바로 광저우에 가서 일주일간 도시를 샅샅이 뒤졌지만 아무 흔적도 찾지 못했습니다.

2007년 3월 런위에펑이 상하이의 한 쇼핑몰에 나타났다는 정보를 얻습니다. 양씨는 쿤밍의 집을 처분하고 아예 상하이로 이사를 갔습니다. 문제의 쇼핑몰 주변에서 생활하며 런씨의 행적을 캤지만 아무 소득도 얻지 못했습니다. 2008년 5월에는 런씨가 서부의 구이저우성 구이양시에 있다는 말을 듣습니다. 상하이에서 어렵게 구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이번에는 구이양으로 거주지를 옮깁니다. 런씨를 찾는데 인생을 건 셈이었습니다.

도망자5긴 도피생활 끝 인생역전

1997년 6월 양순샹을 숨지게 하자 런씨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갑니다. 먼저 이웃 도시인 다리시로 달아났습니다. 그리고 한달 뒤에는 윈난성을 벗어나 구이저우의 구이양시로 숨어들었습니다.

그곳에서 상당한 돈을 들여 위조 이주증을 샀습니다. 이를 근거로 '란겅성'이라는 새로운 이름의 신분증을 얻습니다. 쿤밍시의 런위에펑은 이렇게 구이양시의 란겅성으로 변신했습니다.

1999년 구이양에서 사귄 친구와 합작해 창업 컨설팅 회사를 차립니다. 기대를 넘어서는 성공을 거뒀습니다. 이에 힘 입어 란겅성, 옛 런위에펑은 '중국책략연구소'의 기술 감독겸 구이양 분소 소장직도 맡습니다.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명함의 제일 첫머리에 구이양시 한 대학의 객원교수라는 직함까지 올렸습니다. 살인 사건을 저지른 도피자가 대학 교수가 되는 인생역전을 이뤘습니다.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고

모든 사달은 항상 방심에서 비롯됩니다. 너무나 성공적인 도피생활을 하던 란겅성은 대담하게도 고향인 윈난성에도 드나들게 됐습니다.도망자4
지난해 5월15일 쿤밍에서 멀지 않은 한 식당 방에서 양순밍이 친구 4명과 함께 저녁을 먹고 있었습니다. 같은 시간 다른 방에서 란겅성도 모임을 가지는 중이었습니다. 고향 친구인 천모씨는 란겅성과도 친한 사이였습니다. 우연히 식당 복도에서 란씨와 만나자 반갑게 인사를 하고 방 앞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 모습이 양씨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분명 매우 익숙한 인물이었습니다. 순간 양씨는 란겅성이 자신의 불구대천 원수인 런위에펑이라고 느꼈습니다. 양씨는 식당 주인을 조용히 불러 란씨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리고 소개를 시켜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잠시후 란씨가 방으로 들어와 양씨와 그 일행들에게 술을 돌리며 인사를 나눴습니다. 양씨는 혹시 자신을 알아볼까 고개를 푹 숙이고 얼굴을 손으로 가린 채 식당 주인 뒤에 숨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확인했습니다. 란겅성은 런위에펑이었습니다.

양씨는 친구 천씨에게 란씨에 술을 많이 권해서 취하게 만들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천씨는 영문도 모른 채 충실히 부탁해 응했고 방안은 금방 취기가 도도해졌습니다. 양씨는 몸을 빼내 근처 파출소로 향했습니다. 마침 그 파출소에서 근무하던 잘아는 경찰에게 미리 전화로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경찰 1명과 방범대원 5명을 데리고 식당으로 되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란겅성이자 런위에펑을 체포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표류인생의 성공은 한낱 일장춘몽일뿐

도망자6란겅성은 자신이 런위에펑임을 순순히 시인했습니다. 과거보다 살이 더 쪘고, 머리 모양과 입성이 완전히 달라졌지만 양씨의 눈은 피하지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십수년 동안 많이 변했으니까요. 하지만 습관적으로 한쪽 눈을 찡긋거리는 버릇은 그대로더군요. 그때문에 확실히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최근 런위에펑에 대한 공판이 시작됐습니다. 런씨는 양순샹을 죽이려 했던 것은 아니라고 변론을 폈습니다. 자신에게 잘못을 하고도 사과는 커녕 오히려 먼저 폭력을 행사하려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아울러 자신이 도피 생활을 하면서 대단히 성실하게 살았고, 이때문에 상당한 성공을 거뒀다며 이미 갱생의 길을 걷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양씨와 양씨의 부모는 반박합니다. "자신의 범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한 채 신분을 속이고 거둔 성공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가족의 죽음으로 생활이 무너지다시피한 우리에게 무슨 배상을 했나요? 반드시 죗값을 치르도록 할 것입니다."

런위에펑은 범행 이후 대단히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도피 생활을 하면서도 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석사 학위도 얻었습니다. 지역 사회에서 성공한 기업인으로, 인기있는 교육자로 나름 역할을 다했습니다. 그는 현대판 장발장일까요? 아니면 후안무치한 도피자일 뿐일까요? 여러분이 재판관이라면 어떻게 판단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