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해난 참사 중 최악으로 기록된 서해훼리호의 악몽이 재현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16일) 전남 진도 해상에서 세월호가 침몰, 수학여행길에 오른 고교생 등 459명의 승객 중 293명의 생사가 오후 5시까지 확인되지 않자 21년 전 서해훼리호 사고 수습에 참여했던 전북 군산시청 A 과장은 탄식했습니다.
"아직 꽃도 피워보지 못한 어린 학생들이 어서 빨리 구조돼야 할 텐데…죽음의 신이 여객선을 유혹하지 않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서해훼리호(110t)는 1993년 10월10일 오전 10시20분 전북 부안군 위도면을 떠나 격포항으로 가던 중 출발 30분 만에 침몰했습니다.
위도 주민과 낚시꾼 등 362명이 승선, 292명이 숨진 사상 최악의 해상 사고였습니다.
불과 70명만이 구조됐습니다.
사망자는 대부분 선체 내에서 발견됐습니다.
서해훼리호는 당시 높은 파도 때문에 운항이 어렵자 회항하려고 선수를 돌리는 순간 전복돼 침몰했습니다.
세월호 출항 당시 인천항과 앞바다에 안개가 심해 출항이 지연됐던 것처럼 서해훼리호도 출항 당시 북서풍이 초당 10∼14m, 파고 2∼3m로 해상 기상이 좋지 않았습니다.
폭풍주의보 등 기상특보가 내려지지는 않았지만, 여객선이 출항하기에는 악천후였던 것입니다.
서해훼리호는 결국 높은 파도 때문에 운항이 어렵게 되자 회항하려다 사고를 당했습니다.
특히 서해훼리호는 정원이 221명인 비교적 작은 배였는데도 무려 362명이 승선한 사실이 드러나 당시 사회적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낚시꾼 중 일부가 월요일 출근을 위해 무리하게 이 배에 탑승, 정원을 초과한 것입니다.
세월호는 서해훼리호와 달리 여객 정원 921명, 차량 180대,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52개를 동시에 적재할 수 있는 초대형 여객선입니다.
여객선은 로얄실, 패밀리룸, 단체여행객용 객실과 휴게실·편의점·식당·게임룸·샤워실 등 편의시설도 갖추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세월호가 높은 파도 등으로 좌초해 순식간에 침몰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실종자 중 상당수의 생존자를 기대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사상 최악의 해난사고를 겪은 부안·군산 시민 역시 서해훼리호 침몰사고의 악몽이 재현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또 세월호 사고 현장에는 해경과 해군 함정 72척, 관공선 등 15척이 동원돼 수상에서, 헬기 18대가 항공에서 신속한 수색을 벌이고 있어 생존자가 늘어날 것으로 이들은 기대했습니다.
군산시청 A과장은 "변을 당한 학생들과 부모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진다"면서 "민·관·군이 모든 힘을 쏟아 실종되거나 배에 갇힌 사람들을 신속하고 무사하게 구조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SBS 뉴미디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