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뉴스

뉴스 > 생활·문화

'런던도서전' 한국문학 달라진 위상 확인하고 폐막

입력 : 2014.04.11 07:07

"단순번역 넘어 한국학 전문가 길러내야"


한국이 주빈국(마켓 포커스)으로 참가한 '2014 런던도서전'이 10일(이하 현지시간) 사흘간 일정을 마치고 폐막했다.

한국은 도서전이 열린 영국 런던 얼스코트 전시장에서 운영한 '마켓 포커스관'(516㎡)을 통해 출판 및 문학 콘텐츠의 우수성 알리기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국제 도서전에서 한국이 주빈국 자격으로 참여한 것은 2005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이후 처음이다.

런던도서전은 프랑크푸르트 도서전과 더불어 양대 북페어로 꼽힌다. 200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이 한국 출판과 문학을 세계에 일방적으로 알리는 행사였다면 이번 런던도서전에서는 10년 전 뿌린 씨앗이 맺은 결실을 어느 정도 확인하는 성과를 거뒀다.

◇ 9년 만의 주빈국 참가 도서전…달라진 위상

200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는 행사 전후로 한국 작가 62명이 독일을 찾았다. 그러나 이들의 작품이 영미권에서 출판된 경우는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었다. 

도서전에서도 역시 수출은 드물었고 외국의 뛰어난 작품을 경쟁하고 선점하는 자리에 그쳤다. 해외 유명 작가의 작품을 놓고 한국의 과열 경쟁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이번 런던도서전은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한국 작가 10명이 참가했는데, 이들은 각자 여러 권의 작품이 영어로 번역돼 해외에 소개된 작가였다.

소설가 황석영, 이문열, 이승우, 신경숙, 김인숙, 김영하, 한강, 시인 김혜순, 아동문학 작가 황선미, 웹툰 작가 윤태호 등 작가 10명은 쏟아지는 인터뷰 요청에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몇몇 작가는 에이전트가 나서 일정을 관리했다. 

결과는 눈부셨다. 아동문학 작가 황선미 씨의 '마당을 나온 암탉'과 소설가 이정명 씨의 '별을 스치는 바람'은 영국 런던의 주요 서점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마켓 포커스관'을 비롯한 한국의 행사장에는 해외 대형 출판사들뿐 아니라 펌프킨 프레스, 콤마 프레스 등과 같은 중소형 출판사 관계자들까지 찾아와 한국 문학에 큰 관심을 보였다.

콤마 프레스의 케이티 슬레이드 편집자는 "도시와 작가를 연계해 책을 내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면서 "이번에는 서울과 한국 작가를 연계한 책을 기획하고 있다. 한국 작가 김영하, 김연수에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미생'으로 유명한 웹툰작가 윤태호는 해외에서 작품을 발표한 적이 없는데도 영국 쪽에서 먼저 작품에 관심을 두고 접근해 와 이번 도서전에 참가했다. 도서전 부대행사로 8일 주영 한국문화원에서 영국 독자들과 만난 행사에는 100여 명이 몰렸다.

포털사이트 네이버는 이번 도서전에서 현지 출판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한국 웹툰을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런던도서전에 차려진 한국 전자출판관에는 사흘 동안 다양한 나라에서 온 수백 여명의 출판인들이 찾아와 사업과 관련한 상담을 했다.

◇ 아직은 먼 '문학 한류'…장기적 지원 절실

런던도서전은 한국의 전자출판과 웹툰이 신시장을 개척하는 무대이자 한국 문학에 대한 대접이 달라졌음을 체감하는 계기였다.

소설가 김영하 씨는 "문학 세미나를 포함해 여러 행사에 참여했는데, 사전 준비가 굉장히 잘 돼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사회자, 대담자들이 영국 유명 출판사의 편집자거나 유력 언론사의 기자들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는 "작품이 영문판으로 나오면 불어판, 독어판보다 훨씬 확산성이 있다. 영어판을 검토할 수 있는 편집자가 많기 때문"이라며 "사실 영국 독자들은 많지 않고 영국 출판 시장 자체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영국에서 책이 출간될 때의 상대적인 이점을 무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한국 문학에 대한 대접이 달라지고 일부 작품이 현지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르긴 했지만 이를 두고 '문학 한류'라고 포장할 수는 없다. '문학 한류'는 비영어권 작가들에게 여전히 폐쇄적인 영미 출판계의 현실을 무시한 과장된 표현이다.

"미국의 경우 비영어권 저서를 번역한 출판물이 전체의 3%에 불과하다고 들었어요. 그중 문학서적의 비중은 더더욱 낮겠죠. 한국 문학이 영미권에 진출하는 것은 낙타가 바늘 귀에 들어가는 것만큼 어렵습니다." (신경숙)

"문학 자체가 죽고 있잖아요. 그나마 인기가 있는 것은 장르문학이고 본격 문학 자체에 대해서는 전 세계적으로 관심이 없어요. 최근 들어 한국 문학이 조금씩 관심을 얻고 있긴 하지만 큰 붐이 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더군다나 여기에서 판권 계약이 된다고 해도 책은 번역의 특성상 1~2년 후에 나오잖아요. 문학은 영화나 드라마에 비해 굉장히 느린 장르죠. 이번 런던도서전이 어느 정도 성과를 낼지는 좀 더 두고 봐야합니다." (김영하)

런던도서전을 계기로 한국 문학이 더 크게 뻗어나가려면 장기적 프로젝트를 짜서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밀고 나가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권세훈 한국문학번역원 번역출판본부장은 "영어 번역자들은 질적·양적으로 늘어난 상황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과제는 한국 문학 작품을 판단하고 평가해줄 수 있는 한국학 전문가를 길러내는 일"이라며 "정부 차원의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