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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안철수는 정말 '공천 선회' 예측 못했을까?

김지성 기자

입력 : 2014.04.11 09:59


10일 새정치민주연합의 당원투표와 여론조사 결과는 철통 보안 속에서 발표됐습니다. 전날 밤 10시까지 조사를 모두 마친 뒤 미가공 데이터(Raw Data) 상태로 봉인했고, 이튿날 새벽 여론조사 기관별로 통계를 냈습니다. 이후 오전 8시 30분, 조사 관리위원장을 맡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 이석현 의원실로 역시 밀봉된 상태로 자료를 가져와 그 자리에서 합산했습니다.

합산 결과도 봉인된 상태로 안철수, 김한길 대표에게 보고됐습니다. 이석현 의원실로 모였던 당직자들과 관리위원들은 합산 결과가 외부로 유출될 것을 우려해, 발표가 끝날 때까지 외부와의 연락을 끊은 채 의원실 밖으로 나오지 않는 치밀함까지 보였습니다.

보고 받기 직전 안철수 대표는 "사전 보고 안 받았다. 결과를 전혀 모른다", "기자회견문이나 입장 발표문도 준비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적어도 최종 결과를 보고 받을 때까지 안철수 대표가 조사 결과를 몰랐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 이해 안 되는 안철수의 '초강수'

의문점은 조사 결과가 무공천 철회 쪽으로, 즉 공천을 하자는 쪽으로 나올 것이란 예측도 못했냐는 것입니다. 안철수 대표가 기존 무공천 방침에서 한 발 물러나 "국민과 당원의 뜻을 묻겠다"고 했을 때부터 공천 의견이 더 많지 않겠냐는 전망이 당 안팎에서 나왔습니다.

새누리당이 공천을 강행하기로 하고, 청와대가 안철수 대표의 박근혜 대통령 면담 요청을 거부해, 야권 지지층 내에서 여권에 대한 반감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었고, 이번 조사의 성격이 '공천 폐지 대선 공약을 지키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선거를 여야가 공정하게 치르느냐, 마느냐'는 프레임이기 때문에 공천 쪽이 더 많을 것이란 분석이었습니다. 새누리당에서도 '결국 공천으로 선회하기 위한 수순 밟기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습니다.

하지만 이 때에도 안철수 대표는 잇따라 초강수를 뒀습니다. 공개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의 무공천 소신을 지지해 달라고 국민과 당원에게 호소했고, 비공개 의원총회에서는 "정치 생명을 걸겠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의아하게 여긴 기자들이 정확한 의원총회 워딩을 확인해 달라고 당직자들에게 요청하자, 당직자들은 "정치 생명이라는 말은 안 했다", "정확한 워딩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 말은 오히려 김한길 대표가 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그 자리에 있던 복수의 의원들은 분명히 워딩을 들었다고 답했습니다. 당직자들도 '안 대표가 너무 나갔다'고 판단한 듯 합니다. 당직자들도 '공천 쪽으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했던 모양입니다. 그날 언론에는 일제히 "정치 생명을 걸겠다"는 워딩이 주요 타이틀로 뽑혔습니다.

■ "설문 문항, 공천 쪽에 유리"

이 때까지도 안철수 대표가 결과를 예측 못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사 관리위원회가 마련한 설문 문항을 본 순간, 더 많은 인사들이 "공천 쪽이 우세할 것"으로 점쳤습니다. "누가 봐도 편향적이다", "공천 쪽으로 유도하는 질문이다"라는 평가가 쏟아졌습니다.

설문 문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번 지방선거와 관련하여 대선 때 여야 후보들은 기초공천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지만, 새누리당은 공천을 강행하고 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새누리당이 공천을 하는 상황에서 공천을 안 하면 불공정한 선거가 되므로 공천해야 한다는 의견과, 새누리당이 공천하더라도 애초의 무공천 방침대로 공천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디에 공감하십니까?'

참 길죠. '대선 공약'이라는 표현은 한 번에 불과하지만, '새누리당은 공천한다'는 표현이 세 번이나 들어가 있습니다. '안철수 대표가 국민에게 약속했다'는 문구는 없습니다. 더욱이 이번 조사는 새누리당을 제외하고 새정치민주연합과 무당파만을 대상으로 진행됐습니다. 먼저 지지 정당을 물은 뒤 새누리당이라고 답하면 조사를 중단하는 식입니다. "만약 무공천 의지가 정말 강했다면 설문 문항을 이런 식으로 구성하면 안 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 것도 이 때문입니다.

안철수 김한길■ '6시간 30분 장고(長考)'의 의미

이해할 수 없는 대목입니다.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안철수 대표의 무공천 의지가 의외로 강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누군가 잘못된 정보를 안 대표에게 줬을 가능성입니다. 안 대표가 거듭 초강수를 뒀던 것에 비춰볼 때 전자보다는 후자에 무게가 쏠립니다.

실제로 안 대표가 '국민여론조사 50% + 당원투표 50%'라는 해법을 제시했을 때 안 대표 측과 김한길 대표 측, 이른바 신주류 측에서는 "미리 시뮬레이션을 돌려봤는데 무조건 무공천으로 나온다"는 얘기가 흘러 나왔습니다. 구체적인 데이터까지 제시했습니다. '당원들 사이에서는 공천을 하자는 쪽이 더 많지만 조사 대상이 많아질수록 여론조사와 결과가 비슷해진다', '이번 당원 조사는 전(全) 당원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여론조사와 비슷할 것이다'라는 해석까지 덧붙였습니다.

물론, 시뮬레이션에서는 분명히 무공천 쪽이 많았지만, 친노 진영을 비롯한 구주류 측이 하루 사이 적극적인 여론 플레이를 해 공천 쪽 의견이 많아졌다고 반론을 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안철수 대표의 무공천 지지 호소가 더욱 언론에 노출이 많이 됐기 때문에 그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결국 어떤 세력이 안철수 대표의 눈을 가리지 않았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잘못된 정보로 판단력을 흐리지 않았냐는 것입니다.

안철수 대표는 여론조사와 당원투표 결과가 발표된 뒤 6시간 30분 동안 대표실에 들어가 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주된 이유는 국민들에게 밝힐 입장을 정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당 지도부 사이에서도 안 대표의 입장 표명이 너무 늦어진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당초 오전에 하려고 했는데 갈수록 늦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혹시, 복잡한 심경을 다스리느라 시간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