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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진의 SBS 전망대] "구급차로 상봉했던 이산가족 별세…유골은 북한으로 모시고파"

입력 : 2014.04.10 10:23|수정 : 2014.04.10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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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 지난 2월 남북이산가족 상봉자 故김섬경 할아버지 아들 김진황 씨

▷ 한수진/사회자:
지난 2월 이산가족 행사 때 구급차에 실려 아들과 딸을 만났던 김섬경 할아버지 많이들 기억하실 텐데요. 죽어도 북녘의 아들, 딸 한 번 보고 죽겠다고 하시며 구급차에 몸을 실으셨죠. 그런데 그 김 할아버님께서 지난 주 토요일 아흔 한 살을 일기로 숨을 거두셨다고 합니다. 관련해서 고인의 아들 김진황 씨와 이야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 김진황 씨 / 지난 2월 남북이산가족 상봉자 故김섬경 할아버지 아들:
안녕하세요.

▷ 한수진/사회자:
먼저 김섬경 할아버님 명복을 빌겠습니다.
아버님 삼우제를 어제 치르셨다던데요. 어느 곳에 모셨습니까?

▶ 김진황 씨 / 지난 2월 남북이산가족 상봉자 故김섬경 할아버지 아들:
이천에 있는 호국원이라고요. 거기에 안장 했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국립 이천 호국원이요.

▶ 김진황 씨 / 지난 2월 남북이산가족 상봉자 故김섬경 할아버지 아들:
네, 아버님이 6.25 참전 용사이셔서 그렇게 거기 모실 수 있게 되었거든요.

▷ 한수진/사회자:
91살, 고령이기도 하셨지만 이산가족 상봉 이후에 건강이 많이 악화되셨다고요.

▶ 김진황 씨 / 지난 2월 남북이산가족 상봉자 故김섬경 할아버지 아들:
네, 다녀오셔서 두 번 다시 못 본다는 것을 아시고 많이 슬퍼하시고 갑자기 식사도 제대로 못 하시고 그러시다보니까 기력이 많이 쇠하셔가지고, 감기, 폐렴이 드셨어요. 그래서 복합 병으로 중환자실에서 운명하셨거든요.

▷ 한수진/사회자:
그러니까 짧은 이산가족 상봉 이후에 많은 분들이 허탈감이나 그리움 때문에 후유증에 시달리신다고 하더라고요. 할아버님께서도 몸과 마음이 다 아프셨군요.
구급차 이산가족 상
▶ 김진황 씨 / 지난 2월 남북이산가족 상봉자 故김섬경 할아버지 아들:
가시기 전에도 노환 때문에 많이 아프셨는데 다녀오고 나니까 더 그리우신 것 같더라고요. 자꾸 북쪽에 계신 큰 누님, 형님, 춘순 누님하고 진천 형님, 입으로 오물오물 말씀하시는데 제가 어떻게 해드릴 건 없고, 저예요, 저예요 그렇게만 대답 했거든요.

▷ 한수진/사회자:
지금 김진황 씨께는 형님, 누님 되시는 분들이고 할아버지께서는 따님, 아드님 되는 분들이세요. 그런데 그렇게 상봉 때도 사실 건강 상태가 그리 좋지는 않으셨는데 꼭 가야겠다고 하셨던 모양이에요.

▶ 김진황 씨 / 지난 2월 남북이산가족 상봉자 故김섬경 할아버지 아들:
당시 속초에서 집결했을 때 건강이 악화되셔가지고 사실 내심 걱정을 했는데 아버지가, 가서 죽겠다고 말씀하시니까 저로서는 어떻게 할 수 없고 저도 좀 아버지 마지막 소원을 풀어드렸으면 하고 말씀을 많이 드렸죠.

▷ 한수진/사회자:
할아버님께서 이렇게 북에 가족을 남겨두고 오시게 된 게 어떤 이유 때문이었나요?

▶ 김진황 씨 / 지난 2월 남북이산가족 상봉자 故김섬경 할아버지 아들:
제가 말씀을 전해 듣기로는 큰 누님이, 춘순 누님이 6살 때 이고 아들인 진천 형님이 3살 때이고 그리고 북쪽에 계신 아버지의 처 되시는 분이죠. 아내 되시는 분 뱃속에 9달 된 아이가 있었답니다. 막내였는데 그 분은 돌아가시고 안 나오셨어요. 그 분, 막내아들이 뱃속에 있으니까 피난은 못 나오고 아버지는 강 건너니까요, 그 임진강 쪽에 사시는 건데, 2~3일만 지나면 다시 돌아갈 수 있을 줄 알고 잠깐 피신했던 거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6.25가 나서 인민군이 오고 그러니까 시간이 오래 되고 이렇게 된 거죠.

▷ 한수진/사회자:
부인께서 만삭이어서, 잠시만 기다려 달라, 이러고 내려오셨는데 그게 그렇게 긴 이별이 되고 말았어요. 그토록 오래 보고 싶었던 아들 딸 만나셨는데 할아버님, 상봉 때 참 많이 좋아하셨죠?

▶ 김진황 씨 / 지난 2월 남북이산가족 상봉자 故김섬경 할아버지 아들:
많이 좋아하셨고요. 저도 아버지, 그런 모습은 처음 뵌 것 같아요. 그 때 구급차에서 많이 탈진하셔가지고 눈도 감으시고 말씀도 제대로 못 하셨어요, 목도 부으시고요. 근데 그 때 북쪽에 있는 누님하고 형님이 오시니까 말씀을 하시고 눈을 뜨시더라고요.

▷ 한수진/사회자:
목소리만 들으시고.

▶ 김진황 씨 / 지난 2월 남북이산가족 상봉자 故김섬경 할아버지 아들:
진천 형님이 아버지, 그러면서 들어오는데. 눈을 뜨시면서 쳐다보시고, ‘춘순이냐, 진천이냐.’ 하시는데, 그 때 기력이, 너무 한이 되셨구나, 하는 생각이 딱 들더라고요.

▷ 한수진/사회자:
북한 가족들에게 할아버님 부음을 전할 방편은 좀 있었습니까?

▶ 김진황 씨 / 지난 2월 남북이산가족 상봉자 故김섬경 할아버지 아들:
전할 길이 없으니까, 적십자사에게 알려드린 거고요. 이게 방송이 북쪽 형제들에게 전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한수진/사회자: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네요. 통일이 되면 꼭 이루고 싶은 일이 있으시다고요?

▶ 김진황 씨 / 지난 2월 남북이산가족 상봉자 故김섬경 할아버지 아들:
네, 그 때 금강산에서 아버지가 앉아계실 때 그 때 정신이 또렷하셨거든요. 그 때 자연스럽게 아버지 사후 이야기가 나왔어요. 북쪽의 형제들이 ‘오래 못 사실 것 같다.’,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그랬더니, 매장 하지 말고 유골을 잘 갖고 있다가 통일이 되면 북으로 보내주었으면 하시더라고요. 북쪽에 선산이, 고향 땅에 선산이 있답니다. 저도 그 선산에 묻히는 걸 바라고요.

▷ 한수진/사회자:
정말 그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김섬경 할아버님 64년 만에 한을 풀고 가신 것 같은데요. 평생 그리워하던 얼굴 보셨으니까 편안히 잠드셨길 바랍니다.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요.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남북이산가족 상봉자 故김섬경 할아버지 아들 김진황 씨 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