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뉴스

뉴스 > 사회

[취재파일] 전자발찌 시행 6년…성범죄자의 잇단 '불복'

최우철 기자

입력 : 2014.04.10 09:14|수정 : 2014.04.10 10:02

발찌 재질 강화는 해법이 아니다


  4월, 서울에서 전자발찌 훼손 도주 사건이 잇따라 터졌습니다. 지난 4일 31살 정 모 씨가 서울 구로경찰서에 압송돼왔습니다. 끊어진 전자발찌와 송수신기, 가위를 아파트 화단 위에 버린 채 달아난 지 이틀만이었습니다. 그의 범행은 7년 이하 징역이나 2천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는 범행입니다. 그는 기자들 앞에서 작심한 듯 ‘범행동기’를 말했습니다. 그의 말엔 억울함과 전자발찌 착용 명령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반항심이 가득했습니다.

  그는 최근 한 여성을 소개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전자발찌가 “징징거렸다.”라고 합니다. 그는 “그 여자가 무슨 귀신 본 듯이 살려달라고 달아났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너무 창피하고 화가 난” 그는 전자발찌와 부속 장비, 범행 도구 모두 아무렇게나 버리고 달아나 버린 겁니다. 검거 당시 그는 서울 강북구 한 모텔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7일 새벽 서울 광진구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터졌습니다. 미성년자 성추행범으로 전자발찌를 착용해 온 39살 박 모 씨가 송수신기를 버린 채, 사라져 버린 겁니다. 닷새 만에 같은 사건이 터지자, 경찰은 즉시 공개수배로 그를 쫓았습니다. 사흘만에 그는 공원에서 붙잡혔습니다. 광진구를 벗어나진 않았는데, 발목엔 전자발찌를 찬 상태였습니다.

맘만 먹으면 끊어지는 게… 정상?!

   한 성범죄자는 전자발찌를 끊고 달아났고, 한 명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뉴스를 접한 시민들은 ‘전자발찌를 끊을 수 있다’는 데, 더 큰 불안감을 느낀 걸로 보입니다. 이런 불안의 밑바닥엔 전자발찌가 수갑처럼 끊을 수 없고, 성범죄자의 몸에서 절대 떨어질 수 없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전자발찌가 성범죄자를 감시하는 완전한 도구라는 믿음입니다. 이런 전자발찌는 ‘완전한 감시’이자, 처벌의 연장이라는 식의 접근입니다. 도입 6년, 적잖은 사람들에게 전자발찌는 형벌로 인식되는 게 사실입니다.

  우리나라의 전자발찌 제도는 어떤 선진국보다도 앞섰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GPS와 무선통신 기술이 워낙 발달한 결과입니다. 전자발찌 제도의 핵심은 사실 송수신기입니다. 인터넷 전화기만 한 크기의 이 송수신기의 기능은 위치 추적입니다. 전자발찌의 착용 여부와 훼손 상태를 인식해, 법무부 관제센터로 보내주는 기능을 합니다. 착용자는 발찌를 차고, 무선전화기를 들고 다녀야 하는 겁니다.

  잇따라 검거된 전자발찌 착용자 2명은 모두 송수신기를 버리고 달아났습니다. 위치 추적을 무력화한 겁니다. 교정 당국의 감시를 받으라는 법원의 명령을 어긴 겁니다. 그들에게 물을 죄목의 본질입니다. 

  전자발찌에 대한 선입견은 이 대목에서 깨집니다. ‘전자발찌를 끊었다’는 범행 수법이 놀랍긴 하지만, 발찌가 아니라 송수신기가 훨씬 중요한 까닭입니다. 실제 9일 붙잡힌 박 씨는 검거 당시 전자발찌를 차고 있었다고 경찰은 밝혔습니다. (송수신기가 방전되거나, 발찌로부터 먼 곳에 있으면 발찌에 진동이 옵니다. 검거 당시 박 씨의 발찌도 계속 울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발찌를 시계처럼 풀고 찰 수 있게 만들 순 없습니다. 송수신기와 함께 집에 둔 채 외출할 수도 있기 때문이죠. 이건 단지 감시의 효율을 위한 겁니다. 하지만, 전자발찌의 재질을 강화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기술적으로 전자발찌를 수갑처럼 만드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비용도 더 저렴합니다. 그러나 그럴 당위성이 없습니다. 전자발찌 착용은 ‘형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수갑처럼 만드는 건 해법이 아니다

법무부 캡쳐_500  2008년 도입된 전자발찌 제도로 지금껏 약 3천 명이 발찌를 찼거나 차고 있습니다. 현재 이걸 차고 있는 사람은 1천8백 명 남짓합니다. 이들을 감시하는 법무부 소속 공무원은 2백 명 정도입니다.

  전자발찌의 본래 목적은 감시와 재범 방지 효과를 얻는 겁니다. 성추행과 성폭행 같은 성범죄자의 재범률은 다른 범죄보다 높다는 게 정설입니다. 성범죄자 주거지 주변에서 성범죄가 발생할 경우, 24시간 위치 추적 정보를 통해 전과자의 위치를 손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이런 감시사실을 전자발찌 착용자가 늘 인식하도록 하는 기능입니다. 다시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저지를 경우, 즉시 자신의 위치가 드러난다는 심리적 경고를 하는 겁니다.

  본래 취지를 염두에 둔다면, 전자발찌를 수갑처럼 만들 순 없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너무 무거워서 이동의 자유를 제약해선 안 됩니다. 발찌에 피부가 상처를 입을 정도로 만들 수도 없습니다. 너무 커서 주변 사람에게 노출된다면, 심각한 기본권 제약이 됩니다.

  전자발찌 자체의 재질을 강화하는 건, 효용면에서도 효과가 크지 않은 걸로 보입니다. 지난해 법무연감을 보면, 2008년부터 4년간 전자발찌를 훼손하거나 도주한 범죄자가 40명입니다. 그런데 그 사이 발찌 재질은 한 차례 강화됐습니다.

  법무부는 2011년 전자발찌의 재질을 4배 강화하고, 발을 두르는 부분을 2배 정도 넓적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훼손 도주 사범은 2008년 ~ 2010년 13명이던 게 2011년과 이듬해엔 27명으로 2배 이상 늘었습니다.

  법무부는 2016년까지 일체형 전자발찌를 내놓겠다고 발표한 상태입니다. 기존 송수신기를 발찌에 넣어, 송수신기를 버릴 수 없게 만드는 겁니다. 하지만, 여전히 근본 대책은 아닙니다. 발찌 자체를 수갑처럼 만들 수 없는 이상, 보완책일 따름이죠.


형벌과 보안 처분 사이

  전자발찌 착용 대상은 2008년 9월 시행 직후 성폭력범죄자에서, 2010년 7월 살인이나 미성년자 유괴범으로 확대됐습니다. 강력 범죄가 터질 때마다 적용 확대 목소리는 높아집니다. 이렇게 대상은 느는데, 전자발찌 확대만이 능사일까요?

  지난 2010년 7월, 전자발찌 착용을 소급적용하는 법 조항이 처음 시행됐습니다. 한 달 만인 8월, 청주지방법원 충주지원은 헌재에 위헌 법률 심판을 제청합니다. 헌법재판소는 2012년 12월 판단을 내놨습니다. 전자발찌 부착 명령을 소급적용할 수 있도록 한 법 조항은 합헌이라고 결정이었습니다.

  우리 헌법은 범죄 행위 당시에 시행되고 있는 법률이 아니면 소급해서 처벌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헌재는 전자발찌가 ‘형벌’이 아니라, ‘보안처분’이라고 해석했고, 소급 적용은 헌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심판이 진행되는 2년 동안 법원은 2천1백 건 가까운 사건에서 착용 명령을 유보했습니다. 그리고 헌재 판결 직후, 소급적용은 잇따랐습니다.


‘불복 심리’ 없앨 대안이 병행돼야

  구로구에서 전자발찌를 끊고 달아났던 정 씨는, 당시 소급적용으로 발찌를 차게 된 경우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왜 발찌를 차야하는지에 대해 강한 불만을 품고 있었습니다. 정 씨는 경찰 호송차에서 기자들에게 말할 내용을 메모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메모지에 ‘성범죄 전과자지만 출소 후 5년간 잘 지내 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소급적용으로 주변 사람이…’ 라고 썼습니다.

  전자발찌는 형벌이 아니지만, 이처럼 형벌의 성격이 있는 건 분명합니다. 소급적용을 합헌이라고 판결한 헌재도 당시 9명 가운데 4명만이 합헌이란 의견을 냈습니다. 당시 헌재는 합헌 결정 이유에 대해 "국민, 특히 여성과 아동을 보호하는 입법 목적은 매우 중대하고 긴요한 공익"이라면서 과도한 조치가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당시 소급적용이 위헌이라고 판단한 재판관은 5명이었습니다. 위헌 결정에 필요한 6명에 못 미쳐, 합헌 결정이 나긴 했지만, 전자발찌 명령엔 형벌의 성격이 있다는 의견이 분명, 존재하는 겁니다.

  그럼 전자발찌의 허점을 어떻게 보완해야 할까요. 배상훈 서울사이버대 경찰학과 교수는 불복 심리를 줄이는 것에서 해결책을 찾아야한다고 조언했습니다. “내가 왜 이걸 차야 하지? 라는 불복심리를 줄여주는 대책이 반드시 병행돼야 전자발찌를 끊는 일이 사라진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재질을 무한정 강화하는 건 법적, 인권적 측면에도 모두 모순이라며, 일종의 도구만능주의에 빠진다고 경고했습니다. 프로파일러인 그는 교정과 교화 없인 유사 범죄가 잇따를 걸로 우려했습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역시 원론적이지만 본질적인 대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그는 “전자 장치의 한계가 존재하는 만큼, 성범죄 교육 프로그램 같은 재발방지책을 강화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전자발찌엔 스테인리스 재질까지 들어가 있습니다. 하지만, 정 씨 사건에서 보듯 마음만 먹으면 끊을 수 있는 게 사실입니다. 발찌 재질을 무한정 강화하면 그건 형벌이 됩니다. 그래서 재질은 웬만해선 끊기 어려우며, 형벌은 아닌 수준에서 제작될 수밖에 없습니다. 전자발찌는 감시 도구일 뿐, 낙인은 아닙니다. '낙인'의 성격을 강화하는 데만 치중한다면, 또다른 부작용이 불거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