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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소리 없는 살인자…무지가 낳은 잇따른 비극

우상욱 논설위원

입력 : 2014.04.09 13:51


행복해야 할 여성의 자살…도대체 왜?

재작년 8월28일 저녁 6시 베이징의 한 고층 아파트 27층에서 한 여성이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그 자리에서 숨졌습니다. 이 아파트에 살던 32세 탕친(가명)이었습니다.

경찰이 수사에 나섰습니다. 녹색 상의에 하얀색 바지를 입고 있었습니다. 싸움이나 폭력의 흔적은 전혀 없었습니다. 유서도 발견됐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금방 결론 내려졌습니다.

하지만 왜 세상을 버렸느냐는 부분에서는 의문부호가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탕 씨는 중국 최고의 명문 칭화대를 졸업했습니다. 세계적 기업인 IBM에서 인정받는 직원이었습니다. 칭화대 동기동창인 남편도 있었습니다. 남편은 물론 시댁과의 사이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누구나 부러워 할, 아니 질투를 살 만한 환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요?

우울증1장인과 사위의 법정 싸움

탕 씨가 목숨을 버린 지 1년 반 만인 지난달 말 62세였던 탕 씨의 아버지는 사위인 32세 루안쥔(가명)을 상대로 소송을 냈습니다. 자기 딸의 자살을 방치했을 뿐만 아니라 원인을 제공했다는 이유였습니다. 딸을 제대로 돌보지 않아 죽음에 이르게 한 데 대한 손해배상과 정신적 피해배상금으로 69만 위안, 우리 돈 1억1천7백만 원을 요구했습니다.

최근 두 사람은 법정에서 만났습니다. 장인과 사위가 딸, 아내의 죽음을 놓고 법률 공방을 벌였습니다. 장인은 울면서 사위를 향해 소리쳤습니다. "너는 내 딸을 죽게 만들었어." 사위는 장인에게 탁자를 두드려 가며 반박했습니다. "아니, 저도 가족인데 어떻게 제게 이렇게 하실 수 있죠?"

가족의 질긴 속박, 우울증우울증3

탕친의 어머니는 심한 우울증을 앓았습니다. 이미 오래전 우울증을 이겨내지 못하고 목숨을 끊었습니다. 탕친의 쌍둥이 언니 역시 우울증이 심각했습니다. 탕친이 죽기 2년 전 먼저 우울증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우울증은 결국 탕친의 가족력이었습니다. 특별히 우울증을 앓을 만큼 현실이 힘들고 어려웠던 것도 아닙니다. 그저 점점 삶의 의욕이 없어지고, 만사를 비관적으로 느끼게 되면서, 자신감을 완전히 잃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리곤 죽음을 향해 뛰어들었습니다.
이들 세 모녀에게는 도저히 떨쳐내지 못했던 질긴 유전병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주장 "남편이 안 돌봤어!"

탕친의 아버지는 딸의 죽음을 사위의 책임으로 돌렸습니다. 사위가 이미 딸의 가족력으로 우울증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여러 차례 딸의 우울증 발병 위험을 알렸고 치료의 필요성을 역설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탕 씨의 쌍둥이 언니가 죽은 뒤 계속 경고했습니다. 그런데 사위는 딸을 병원으로 데려가지도, 치료받게 하지도 않았다고 원망했습니다.

2012년 5월26일 언니의 기일에 탕 씨가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최근 건강이 매우 안 좋다, 불면증이 심하다, 직장일로 스트레스가 많다고 호소했습니다. 사위에게 알렸지만 바로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습니다. 8월26일, 죽기 이틀 전에야 사위는 처음으로 딸에게 정신과 진료를 받게 했습니다. 병원에서는 딸이 '매우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확진을 내렸습니다. 아울러 '자살 시도 위험이 있다'는 경고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사위는 딸을 철저하게 간호하지 않고 방치함으로써 자살을 막지 못했다고 공박했습니다.
오히려 딸이 죽은 뒤에 사위는 자신의 면전에서 탕친을 모욕하고 비방하는 말을 했다고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탕 씨는 딸의 죽음 이후 상실감으로 인한 탈진 증상으로 두 번이나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몸도 마음도 심하게 병들어 버렸습니다. 반드시 이런 모든 피해를 배상받아야겠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남편의 주장 "극단적 선택할 줄 몰랐어요!"

남편 루안쥔은 탕친을 대학생 때 처음 만났습니다. 첫눈에 서로 반했습니다. 대학 생활 5년 내내 사귀고 졸업과 동시에 결혼했습니다. 부부로 4년을 살았습니다. 9년을 함께 생활했지만 아내에게 우울증이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고 합니다.

쌍둥이 언니가 죽은 2년 전에야 탕 씨에게 우울증의 가족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탕 씨는 별다른 우울증 증상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 보자는 남편의 제의도 거절했다고 합니다. 괜찮다고. 부부는 항상 모든 것을 의논해서 결론을 내렸기 때문에 남편은 아내의 의견을 받아들여야 했다고 말합니다.

3개월 전부터 탕친 씨는 주중에 웨이하이에서 일해야 했습니다. 주말에만 베이징으로 돌아왔습니다. 남편은 항상 공항에서 아내를 맞아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와 함께 주말을 보낸 뒤 일요일 오후에 돌려보냈습니다. 이런 생활이 지속되자 아내는 힘들어했습니다. 7월쯤 시아버지가 탕친에게 "요즘 회사 생활은 어떠니?"라고 물었습니다. 탕 씨는 "너무 힘들어요. 스트레스도 많고요. 도저히 더 이상 견디기가 힘들 것 같아요."라고 평소 같지 않은 대답을 했습니다. 그래서 남편은 아는 친구에게 부탁해 아내를 위해 다른 직업을 찾아보려고 했습니다. 오히려 말린 것은 장인이었습니다. 딸에게 힘을 내라고 격려했습니다. "네 일을 완수해야 하지 않겠니. 지금까지 잘해 왔으니까 이번 일도 잘해낼 수 있어."

아내의 상태가 좋지 않다고 느낀 루안쥔은 숨지기 이틀 전 장인과 함께 탕 씨를 정신병원으로 데려갔습니다. 아내에게 자살 위험이 있다고 해서 그 뒤 루안쥔의 어머니가 며느리와 항상 함께 있었습니다. 사고 당일인 28일도 시어머니는 거의 하루 종일 며느리와 함께 있었습니다. 오후에 시어머니는 거실에서 뜨개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함께 있던 탕친에게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전화를 끊더니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야 한다며 안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그 문을 나오지 않은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의 죽음을 '불가항력'이었다고 주장합니다. 너무나 돌발적이고 예상하지 못했던 행동이어서 막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자신도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피해자라고 말합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일인데 장인까지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절규했습니다.
우울증2
"여보 미안해요. 다음 생에 보답할게요."
탕친 씨는 아버지에게 한 통, 남편과 시가족에게 한 통씩 유서를 남겼습니다. 내용은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삶이 너무 힘들게 느껴지고 더 이상 버틸 힘이 남지 않았다"고 하소연했습니다. "가족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자신에게 잘 대해 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도 남겼습니다.

특히 남편에게는 미안하다고 사과했습니다. "넌 내게 너무 잘해 줬어. 하지만 내가 추락하는 것을 너조차도 막을 수 없어. 미안해. 다음 생에 꼭 보답할게." 유서의 내용으로 볼 때는 가족들과의 불화가 자살의 원인은 아니었습니다.

우울증에 대한 무지가 빚은 비극들

전문가들은 이 사건에 대해 우울증에 대한 무지가 빚어낸 비극이라고 진단합니다. 흔히 우울증을 '병'으로 여기지 않고 '일시적인 기분 상태'라고 오해한다고 지적합니다. 루안쥔 씨에게도 잘못이 있다면 이 부분이라고 꼬집습니다.

26일 정신병원에서 '심각한 우울증'이고 '자살 위험이 있다'는 경고를 받았다면 당연히 바로 아내를 입원시켰어야 했습니다. 전문적인 의료진의 간호를 받고 투약을 통해 증세를 완화시켰어야 했습니다. 무엇보다 24시간 세밀한 관찰과 보호를 받아야 했습니다. 우울증은 무서운 '질병'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알지 못한 것이 탕 씨의 비극을 막지 못한 가장 중요한 원인이었습니다.

그렇다 해도 루안 씨에게 탕 씨의 죽음을 모두 책임 지울 수 없다고 말합니다. 우울증은 심리적, 즉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질병이라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환자의 증세가 얼마나 심각한지 분명히 알 수 없습니다. 특히 감정 표현을 절제하는 훈련이 잘돼 있는 우울증 환자일수록 오히려 더 힘듭니다. 자신의 엄중한 상황을 주변에 모두 드러내지 않습니다. 바로 탕 씨의 경우처럼 말이죠.

앞서 말씀 드린 대로 우울증은 대단히 무서운 병입니다. 게다가 빠른 속도로 발병률이 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지난 2008년 47만 명 수준에서 2012년에는 60만 명을 넘어섰다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밝혔습니다. 무려 25% 넘게 증가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울증을 잘 모릅니다. 가볍게 생각합니다. 게다가 정신병원에 가는 것을 몹시 꺼리는 잘못된 풍조까지 있습니다. 탕 씨 가족이 맞은 파국적 비극은 우리 주위에도 도사리고 있는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