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는 2011년 세상을 떠나기 전 회사의 한 직원을 이렇게 평가했다.
"나를 제외하고 회사의 운영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입니다. 그에게 이래라저래라 하거나 상관 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내가 분위기를 그런 식으로 만들어 놨거든요."
잡스가 지목한 인물은 조너선 아이브. 아이브는 현재 애플사의 디자인 총괄 수석 부사장이다.
아이브는 잡스와 함께 애플의 혁신을 이끈 인물이다. 애플 디자인의 정체성을 확립한 인물이지만 개인 삶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오랫동안 잡스와 일하며 애플 이미지를 빚어낸 이는 또 있다. 1997년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는 애플의 대표 브랜드 문구 등 수많은 걸작을 선보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켄 시걸이다.
아이브와 시걸은 모두 천재적인 재능을 지녔지만 잡스라는 거인의 그늘에 가려 있었다. 하지만 '애플 제국'의 건설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다.
두 사람의 삶과 철학을 조명한 책이 국내 굴지의 출판사를 통해 나란히 번역돼 발간됐다. '조너선 아이브: 위대한 디자인 기업 애플을 만든 또 한 명의 천재'(민음사 펴냄)와 '미친듯이 심플'(문학동네 펴냄)이다.
애플 역사의 핵심 인물을 다뤘다는 점에서는 비슷한 책으로 보이지만 바라보는 시각은 상당히 다르다.
'조너선 아이브'는 언론인 리앤더 카니의 눈으로 아이브의 인생과 생각을 조명했다. 반면, '미친듯이 심플'은 시걸이 직접 잡스와 겪은 일화를 소개하며 교훈을 압축해 전한다.
먼저 아이브는 제품을 디자인할 때 '디자인 스토리'를 중시했다. 사용자에게 어떤 경험과 감성을 안겨줄지에 초점을 맞췄다.
아이브의 생각은 "물건을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물건에 대한 사용자의 인식을 디자인한다"는 말로 요약된다. 그의 아이디어는 잡스의 생각과 맞아떨어졌고 아이맥,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 애플의 전설적인 제품 시리즈에 고스란히 담겼다.
성격도 잡스와 비슷한 면이 많았다고 한다. 디자인 완성도에 대한 고집이 남달랐고, 자신의 신념을 거대 조직 안에서 실현해 낸 추진력과 인내력도 탁월했다.
특히 이 책이 눈길을 끄는 것은 애플 내부에서 실제로 어떤 과정을 거쳐 혁신적인 디자인을 탄생시켰는지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알루미늄 등 재료에 대한 고민, 색상 혁신 과정 등을 촘촘하게 들춰본다.
또 영국 디자인 교육 정책가인 아버지 마이클 아이브가 미친 영향, 디자이너로서의 정체성을 심어준 뉴캐슬 과학기술대학의 교육 등 애플 입사 이전의 삶의 궤적도 담았다.
시걸은 잡스의 경영방식을 '단순함을 향한 헌신적인 집착'이라고 표현하면서 혁신을 가능하게 한 단순함의 11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시걸이 포착한 잡스 경영의 제1원칙은 '냉혹하게 생각하라'(Think Brutal)이다. 여기서 말하는 '냉혹함'은 조직이 최고의 결과를 내도록 과정과 평가에서 할 말을 분명하고 단호하게 한다는 뜻이다.
잡스의 냉혹함 때문에 애플과 협력사의 관계가 나빴을 것이라는 세간의 추측도 부인했다. 그는 "오히려 서로에게 더할 나위없이 솔직했기 때문에 문제가 생겨도 금방 해결되었고 이해관계도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아이맥(iMac)의 작명을 둘러싼 일화도 흥미롭게 전한다. 1998년 잡스는 최신 컴퓨터를 출시하면서 '맥맨'(MacMan)이라는 이름을 원한다.
하지만 시걸은 이 이름이 소니의 '워크맨'을 연상시켜 첨단 컴퓨터 이미지를 훼손할 뿐만 아니라 게임 이름 '팩맨'과 비슷해 우스꽝스럽다고 확신했다. 그는 집요하게 잡스를 설득한 끝에 '아이맥'이라는 이름을 지켜냈다.
11가지 경영원칙은 '작게 생각하라'(Think Small), '최소로 생각하라'(Think Minimal), '가동성을 생각하라'(Think Motion) 등으로 이뤄졌다.
시걸과 잡스가 일궈낸 애플의 전성기는 요즘 추억 속의 한 장면으로 다시 화제다.
애플이 삼성전자의 공격적 광고에 당황해 오랫동안 거래한 광고 대행사 TBWA 샤이엇데이를 교체할 방안까지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시걸은 한동안 이 회사에 몸담으면서 애플의 브랜드 마케팅을 담당했다.
'조너선 아이브'는 안진환 옮김. 420쪽. 2만원. '미친듯이 심플'은 김광수 옮김. 380쪽. 1만6천800원.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