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뉴스

뉴스 > 국제

[취재파일] G2 부상한 중국, '내 사전에 외교적 표현은 없다'

심석태 기자

입력 : 2014.04.08 07:54|수정 : 2014.04.09 13:36

몸집에 경제력까지 커진 중국, '거친 행동'에 대한 주변국 우려 인식 못 해



한중일 갈등의 진원지는 기본적으로 일본이고 '표면적'으로는 일본의 지속적인 군사력 강화와 군국주의 시대 역사를 부정하는 태도가 3국 갈등의 출발이라고 앞의 글에 썼습니다. 제가 '표면적'으로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문제를 꼭 일본에서만 찾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엄청난 성장, 냉전 체제 붕괴 이후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던 미국과 어깨를 겨루는 G2로의 등장을 빼놓고 동북아 갈등을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2차 대전 종전 이후 일본은 다시 눈부신 경제 성장으로 미국에 이어 세계를 주름잡는 경제 대국이 되었죠.

중국 외교부 외경

1980년 중국의 GDP는 2024억 달러였던 데 반해 일본의 GDP는 1조869억 달러로 중국의 다섯 배를 넘었습니다. 미국 다음으로 2위였습니다. 1990년에 중국은 3902억 달러, 일본은 3조 1000억 달러로 차이가 더 크게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20년 뒤인 2010년 중국은 5조 9500억 달러, 일본 5조 5500억 달러로 중국이 역전에 성공합니다. 지난해에는 중국은 CIA 추정치로 8조9393억 달러, 일본은 5조72억 달러로 큰 차이로 벌어졌습니다. 한 번 벌어진 차이는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경제력뿐만 아니라 기술력에서도 중국은 인공위성을 쏘아올린 데 이어 유인우주선, 실험용 우주정거장에 이어 달 착륙까지 성공했습니다. 군사적으로는 각종 첨단 미사일에 스텔스기를 개발했습니다. 중형 항공모함을 진수시킨 데 이어 이제는 핵추진 항공모함까지 건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시진핑 중국 주석은 이른바 ‘신형대국관계’를 요구하며 세계에 미국과 중국의 양강 체제가 성립되었다고 선언했습니다.

이처럼 중국이 동북아를 넘어 세계의 새로운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것을 빼놓고 동북아 3국 사이의 갈등을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중국의 부상은 곧 일본의 위상 하락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일본의 군사력 강화나 침략 역사의 부정 움직임은 동북아 패권의 이동이라는 기존 질서의 변화에 대해 일본 우익이 보이는 반응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아베가 내세운 ‘강한 일본의 회복’이 일본 국민 전반에 먹히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겁니다. 일본 국민들 사이의 불안감, 초조감을 자극하는 거죠.

이러한 중국의 부상에 대해서는 일본은 물론 한국 내에서도 큰 경계심을 갖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일본의 역사 인식 문제, 독도에 대한 도발 등은 싫지만 중국 역시 주변국을 배려하고 공존하기보다는 힘으로 누르려고 한다는 느낌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한중일 공동 취재팀이 처음으로 만났던 중국 외교부 아주국의 홍량 부국장도 한국 기자들에게 그런 우려를 더욱 강하게 갖게 만들었습니다.

홍 부국장은 한중일 관계 악화의 주요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일본 지도자가 역사를 직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면서 “역사의 상처에 소금을 다시 뿌리지 말아야 한다. 역사를 부인하면 국가들 사이의 관계에서 정치적 기초가 존재할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 정도는 통상 중국 외교부 브리핑에서도 수시로 접할 수 있는 수준의 말입니다. 하지만 대화가 길어지자 아베 총리를 비판하면서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이런 비판을 무덤까지도 가져가야 할 거라는 취지의 발언까지 나왔습니다. 상대국 정치 지도자를 향한 외교 당국자의 발언 치고는 상당히 많이 나간 셈입니다. 마치 중국 외교관들은 “내 사전에 ‘외교적 표현’은 없다”고 소리치는 것 같았습니다.

한중일 기자단과 중

중국 외교학원 부설 한중일삼국연구소 주최 학자, 언론인 대화에서 분위기는 더 험악했습니다. 언론 문제를 연구한다는 한 학자는 한중일 관계자들이 영어를 쓰지 말아야 한다면서 통역을 쓰더라도 자기 나라 말로 해야 한다, 미국과 친하게 지낼 필요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이 연구소의 일본연구센터 부주임이라는 사람은 거의 시종일관 호통을 치는 듯한 목소리로 아베 총리를 이름만으로 부르며 비난했습니다. 학자들과 언론인과의 진지한 대화를 기대했던 건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던 셈입니다. 전문가들 사이의 진지하고 깊이 있는 대화가 3국의 갈등을 푸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기대를 갖기가 쉽지 않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 큰 영향을 주고 있고 작지만 일본에까지 영향이 미치고 있는 미세먼지 문제에 대해서도 얘기가 오갔습니다만 기본적으로는 이건 중국의 국내 문제일 뿐 한국 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별로 미안해하는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한국 등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과학적인 근거는 없다거나 어느 나라나 경제개발 과정에서 이런 문제를 경험한다, 중국에 7.5%의 GDP 성장을 유지하기를 바라면서 동시에 대기오염 문제까지 해결하기를 요구하고 있다는 등의 다소 거친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3국 기자단을 대하는 방식은 물론 언론의 취재를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에서도 중국의 독특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중국 외교부가 구성한 일정에는 중국이 해외 투자를 유치하려고 하는 천진시 신항만 공사 현장을 둘러보는 일정에는 촬영 허가는 물론 하루를 통째로 배정해 놓은 데 반해 많은 기자들이 관심을 가진 대기오염 감시관측센터 방문을 두고는 방문 직전까지 촬영 허가 여부를 놓고 실랑이를 벌였고 막상 취재를 가서도 질문을 차단하는 등 불필요한 신경전을 벌여야 했습니다. 하지만 측정 장비들이 있는 연구 시설을 안내한 연구팀들 개개인은 너무나 솔직하고 자세하게 취재에 응했습니다.

한중일 기자들에게

마침 3국 기자단 방문 기간 내내 대기오염지수가 400을 넘는 강한 스모그 상태였는데 아무리 경제 성장이 중요하지만 국민들의 건강에 심각한 위협이 되는 상황을 어쩔 수 없는 통과의례라고 주장하는 것이나 주변국에 미치는 영향을 축소하려는 건 신형대국관계, 즉 G2 대우를 요구하는 중국의 모습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어쨌든 약점이 되는 부분은 물론 일본의 역사 문제 등에서 중국 정부가 보이는 억지스러움조차 전혀 숨기려 하지 않는 단호함과 자신감은 역시 G2로 부상한 경제력이 밑바탕이 되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중국 당국자들 역시 한중일 3국 협력의 필요성이나 중요성에 대해서는 입이 마르도록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물론 동북아 지역을 중국을 중심으로 재편하고 싶어하는 의지가 엿보이기도 했지만 어쨌든 가장 가까운 이웃인 한국과 일본과의 경제적 협력이 지금까지 중국의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역내 국가들과의 협력 없이 지속적인 발전을 도모하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중국이 일본은 물론 한국 국민들까지 갖고 있는 중국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내지 못한다면 3국 사이의 갈등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을 줄여가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