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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 준설로 무너졌다는 공산성 발굴현장을 가보니

입력 : 2014.04.01 15:56

바닥은 거대한 편무암 암반, 성벽 자체가 구조 취약


박근혜 정부 출범과 더불어 전임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4대강 사업에 대한 비판이 특히 거세게 일던 지난해 여름, 공주 공산성 또한 이런 논쟁의 한 축을 담당했다. 이 사업에 비판적이던 야권과 환경단체들은 4대강 사업 일환으로 시행한 공산성 인근 금강의 모래 준설로 공산성이 위험에 처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물론 이들이 내세운 근거는 있었다. 금강변에 인접한 공산성 성벽이 곳곳에서 성벽이 바깥으로 불거져 나오는 배불림 현상이 관찰되며, 그 원인은 모래 준설이라는 것이었다.

이런 판국에 공교롭게도 공산성 구역 중에서도 금강변 절벽 위에 있는 망루인 공산정(公山亭) 인근 성벽(높이 2.5m)이 지난해 9월14일 오전 10시50분쯤 폭 9m가량 크기로 붕괴했다.

공산성 관리단체인 공주시는 전날 밤부터 붕괴 당일 새벽 사이 쏟아진 강수량 81mm의 폭우를 원인으로 지목한 반면 4대강 사업을 비판하면서 성벽 붕괴를 예고한 환경운동가들은 이를 4대강 사업을 비판하는 호재로 삼아 공세 수위를 높였다.

이때 붕괴한 공산성 성벽이 마침내 속살을 드러냈다. 붕괴한 성벽은 그 원인이 무엇이건 다시 쌓아야 하지만, 무턱대고 쌓을 수는 없으니 그에 앞서 성벽 구조, 특히 내부가 어떤 모습인지를 확인하는 발굴조사가 있어야 했다.

공주시는 관련 예산 5천800만원을 책정하고 공주대박물관(관장 이남석)에 발굴조사를 의뢰했다. 이 기관이 수십년째 공산성을 발굴 중이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5일 시작한 발굴조사가 막바지에 이르러 1일 그 속내를 드러냈다. 문화재청과 충남도, 공주시가 그동안의 발굴성과를 이날 언론에 공개한 것이다.

붕괴 원인을 둔 논쟁이 워낙 민감한 까닭에 문화재청은 김삼기 고도보존육성과장을 참석시켜 발굴조사 경과를 설명하고 향후 일정을 밝혔다.

이어 조사단장인 이남석 관장의 발굴성과와 현장 안내 설명이 있었다. 이날 공개회에서 관심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성벽이 백제시대에 처음 쌓은 흔적이 뚜렷이 드러났다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붕괴 원인과 관련한 대목이었다.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 절개한 성벽은 고고학에 문외한인 이들에게도 성벽 붕괴 원인이 모래 준설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을 무색케 하기에 충분했다.

성벽은 거대한 돌덩어리 위에 똬리를 튼 것으로 드러났다. 성벽 바로 아래로는 눈대중으로 경사가 대략 70도는 됨직한 수직에 가까운 낭떠러지 암벽 절벽 아래로 금강이 유유히 흐른다. 이 가파른 편마암 절벽에 성벽을 세우고자 백제인들은 단면 'ㄴ'자 형으로 암반을 파냈다. 이렇게 해서 암반을 편평하게 한 다음에 흙을 마치 시루떡처럼 한 켜 한 켜 쌓아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성벽 쌓기 방식을 판축(板築)이라 한다. 이런 판축기법 성벽을 만든 시기가 백제시대라는 사실은 이 토층에서 백제시대 유물만, 특히 백제 기와가 집중 출토한다는 점에서 확인됐다.

이런 암반 위에 쌓은 판축 성벽 바깥으로는 돌을 덧대어 쌓은 모습이 확연했다. 이런 석축은 수직에 가까웠다. 바깥에는 이런 석축으로 쌓은 반면, 그 안쪽에는 잔돌을 잔뜩 넣은 모습이었다. 한눈에 봐도 단순히 뒤채움한 데 지나지 않을 정도로 성벽 구조는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이런 석축 성벽 구조는 1970년대 공산성을 고칠 때 흔적이었다.

성벽 붕괴 원인에 대해서는 문화재청이건 조사단이건 명확한 답변을 피했다. 고고학 발굴만으로 그 원인을 명확히 집어낼 수는 없다고 하면서 더욱 정확한 원인은 공주대 산학협력단에 의뢰한 정밀 조사결과가 있어야 한다는 말만 했다.

하지만 이런 그들조차 성벽 붕괴가 금강 모래 준설과는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준설 때문에 붕괴된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이들은 한결같이 "알면서 왜 묻느냐"는 식으로 대응했다.

공산성이 똬리를 튼 야산 전체가 거대한 암반인 상황에서 수직에 가까운 절벽 위에다가 편마암 암반을 수평으로 깎아낸 다음에 쌓은 성벽이 준설에서 영향을 받아 무너질 수는 없는 법이다.

이와 관련해 조사단은 비록 명확한 붕괴 원인을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실상 성벽 붕괴가 붕괴된 지점의 입지조건과 취약한 성벽 구조에 있다는 사실을 비교적 분명하게 밝혔다.

이남석 관장은 붕괴된 지점이 조선후기 지도에도 이미 암벽으로 표현됐으며 1960년대 말에는 산사태가 일어난 지점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나아가 이번 발굴 과정에서 1950~70년대 수통과 사탕 봉지 등이 확인됨으로써 붕괴된 구간은 지속적인 훼손으로 개·보수가 여러 번 있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그러면서 조사단은 성벽 내부에 잔돌이 많아 "유수(흘러드는 물)의 침투도 상당 부분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1970년대 유물까지 드러나는 점으로 보아 "성벽의 상단부에 지속적인 활용과 압박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성벽이 안쪽에서부터, 그리고 위로부터 압력으로 무너져 내린 것으로 본다는 말은 성벽 붕괴가 금강 모래 준설과는 아무런 인과관계를 형성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 관장은 "1970년대 성벽을 개보수한 시기가 오래되어 일어난 현상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고 말했다.

(공주=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