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영화의 틀 안에서 전형성을 벗어나는 시도를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평균 30억 이상의 예산이 투입되는 영화는 손익분기점을 넘기 위해 15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해야 한다. 어떤 제작자도 모험하고 싶어 하지 않고, 어떤 감독도 자신의 철학만을 고집할 수 없다. 그것이 충무로 상업영화의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 13일 개봉한 '몬스터'(감독 황인호)는 돌연변이 같은 영화다. '몬스터'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살인마 ‘태수'(이민기)와 그에게 하나뿐인 동생(김보라)을 잃은 미친여자 ‘복순'(김고은)의 맹렬한 추격을 그린 작품.
복순은 시골에서 노점상을 하며 하나뿐인 동생과 살고 있다. 약간 모자라지만 다혈질적인 면도 있는 복순을 사람들은 '미친년'이라 부른다. 어느 날 나타난 살인마 태수는 자신의 비밀을 감추기 위해 복순의 동생을 죽인다.
복순은 태수에게 복수하기 위해 칼 한 자루를 움켜쥐고 집을 나서고, 태수는 사건을 마무리하기 위해 복순을 쫓는다. 이 과정에서 복순은 또 다른 피해자인 나리와 유대 관계를 형성한다.
살인마와 미친 여자의 대결은 스릴러라는 장르 안에서 무척 흥미롭게 요리될만한 소재다. 강한 사람과 이상한 사람이 맞붙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장르적 쾌감을 기대하게 된다. 그러나 이 영화는 시작부터 보는 이의 예상을 빗나가는 설정과 전개를 보여준다.
영화는 초반 복순의 캐릭터를 부각하는데 많은 공을 쏟는다. 미친 것처럼 보이지만 때론 멀쩡해 보이고, 어리숙해 보이지만 때론 영민한 복순은 일찍부터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 동생의 뒷바라지를 한다. 순수한 영혼의 복순은 돌아가신 할머니를 상상 속에서 불러내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복순은 동생의 죽음을 직감한 후부터 태수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고 복수를 꿈꾼다. 태수 역시 자신의 완전 범죄를 위해 복순을 죽이려고 한다.
두 사람의 쫓고 쫓기는 관계는 긴장감과 공포감을 조성할 것이라고 예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몬스터'는 인물의 감정을 끌어올렸다가 예상치 못한 유머로 잠식시키고,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그림에서 조금씩 엇나가는 전개를 보여준다. 스릴러 장르에서 기대할 수 있는 심리적 밀당은 느슨하고, 그 자리엔 싱거운 유머가 가득하다.
이런 형태의 연출이 감독의 개성임은 분명하다. 모든 영화가 장르의 관습을 따를 필요는 없다. 그러나 미친 여자와 싸이코 살인마라는 주인공 캐릭터의 특수성을 고려한다 해도 어떤 행동들은 실소만 자아낸다.
또 어느 순간부터 복순은 친동생의 생사에 관심이 없다. 태수 내면의 악마가 태어난 배경인 가족사 또한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다. 태수와 복순이 맞붙기 전 태수와 의붓어머니, 이복형이 한 자리에서 벌이는 악다구니도 그 자체로는 흥미로운 블랙 코미디지만 이야기 전개상 동떨어지는 느낌이다.
모든 갈등이 해소된 후 마무리도 석연찮다. 개성있는 캐릭터들은 느슨한 이야기 안에서 그저 튀기만 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몬스터'는 '시실리 2km'의 각본으로 주목받고 '오싹한 연애'로 연출 데뷔한 황인호 감독의 두 번째 영화다. 그가 만들어낸 이야기들 속 캐릭터는 상식을 넘어섰고, 사건들은 예측할 수 없게 전개되는 경우가 많았다. 장르의 혼합도 공통된 특징이었다.
코미디 영화인 줄 알았던 '시실리 2km'는 뚜껑을 여니 하드코어 좀비물이었고, 로맨틱 코미디인줄 알았던 '오싹한 연애'는 호러 영화였다. 각기 다른 장르를 한 영화에 녹여낸 과거의 시도들은 관객의 호응으로 이어지며 흥행에도 성공했다.
이번 작품도 그 연장 선상이다. 그러나 스릴러와 코미디가 효과적인 시너지를 내지 못한다. 긴장은 유머가 삼켜버리고, 유머 이후의 긴장은 싱겁다. 때문에 인물의 감정에 보는 이는 함께 빠져들지 못한다.
황인호 감독은 "기존의 스릴러 작품과 차별성 있게 나만의 색깔을 찾는 것이 힘들었다"면서 "스릴러 장르지만 각 캐릭터가 가진 감정의 요소가 중요한 영화"라고 '몬스터'를 설명했다. 감독은 캐릭터를 구축하고 난 후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시나리오를 썼다고 한다.
이름만큼이나 낯선 '몬스터'는 개성과 기행이라는 모호한 지점에서 관객과 마주한다. 2014년에 만난 가장 독특한 영화 중 한편임이 틀림없다. 상영시간 113분, 청소년 관람불가.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김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