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시상식의 꽃은 여우주연상이다. 주디 덴치, 메릴 스트립 같은 관록의 여배우가 수상할 땐 기립박수가 나오고, 제니퍼 로렌스 같은 신성이 수상할 땐 극적인 드라마가 연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가장 팽팽한 긴장감을 형성하는 연기 부문은 남우주연상이다. 여우주연상이 한두 명의 두드러지는 배우간의 경쟁으로 압축된다면 남우주연상 부문은 해마다 치열한 경합을 벌여왔다.
'링컨'의 다니엘 데이 루이스, '아티스트'의 장 뒤자르댕, '킹스 스피치'의 콜린 퍼스, '크레이지 하트'의 제프 브리지스', '밀크'의 숀 펜 등 최근 5년간 오스카 남우주연상 트로피를 가져간 배우들은 대부분 교과서에 가까운 명연기를 펼쳤다.
지난 3일(한국시각) 열린 제86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남우주연상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으로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쥔 매튜 맥커너히에 이견을 달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물론 많은 영화팬들이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에서 열연을 펼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수상을 염원했다. 하지만 객관적 잣대를 댄다면 맥커너히의 압승이었다. 이는 아카데미 시상식을 앞두고 치러진 대부분의 시상식 결과로도 입증됐다.

맥커너히에게 데뷔 22년 만에 오스카 트로피를 선사한 영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은 HIV 바이러스 감염으로 30일 시한부 선고를 받은 한 남자가 자신에게 등 돌린 세상에 맞서며 7년을 더 살았던 기적 같은 이야기를 그렸다. 이 영화에서 맥커너히는 자신의 치료약이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자국에서 금지된 약물을 다른 나라에서 밀수해오는 일에 앞장서는 에이즈 환자 '론' 역할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아직 영화가 개봉하지 않았기에 혹자들은 20kg에 가까운 체중을 감량하며 캐릭터에 다가간 맥커너히의 노력이 아카데미 위원들이 큰 점수를 받았을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맥커너히는 병에 걸려 수척해진 환자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외모부터 파격 변신을 했다. 촬영 4개월 전부터 체중 감량에 돌입했다. 식이요법과 운동으로 근육으로 다져진 80kg의 몸무게를 61kg까지 줄였다.
하지만 진짜 놀라운 것은 체중 감량을 넘어선 섬세한 감정 연기에 있다. 술, 로데오, 마약, 여자, 섹스로 점철된 방탕한 생활을 즐기던 론은 어느 날 HIV 바이러스 감염 판정을 받는다. 충격도 잠시 론은 치료제를 찾아 나서면서 미국 FDA와 맞선다.
맥커너히는 쇠약해가는 신체와 반대로 생에 대한 의지를 키워나가는 론의 모습을 실감나게 연기했다. 피골이 상접한 얼굴 위로 뚫고 나오는 생을 향한 집념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놀라움을 선사한다.
영화를 연출한 장 마크 발레 감독은 "매튜 맥커너히는 정말 프로다. 대본이 그의 메모로 가득 찼을 정도인데 이렇게 준비를 철저히 하는 배우는 본 적이 없다"고 감탄했다.

미국 텍사스 출신의 매튜 맥커너히는 1992년 드라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들'로 데뷔했다.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활약하던 그는 1996년 개봉한 '타임 투 킬'로 스타덤에 올랐다. 구릿빛 피부에 다부진 몸을 가진 그는 전형적인 텍사스 미남으로 수많은 여성팬을 확보하기도 했다.
이후 영화 '콘택트', 'U571', '웨딩 플래너', '10일안에 여자친구에 차이는 법', '사하라' 등 상업영화에서 활약해온 그가 연기파 배우로 조명받기 시작한 것은 2011년 무렵부터다.
그는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버니', 스티븐 소더버그의 '매직 마이크', 제프 니콜스 감독의 '머드'에 잇따라 출연하며 명감독들과 시너지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에서 자신의 능력 최대치를 발산했다. 그 결과 '아메리칸 허슬'의 크리스찬 베일,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네브래스카'의 브루스 던, '노예 12년'의 치웨텔 에지오포' 등 쟁쟁한 배우들과의 경쟁에서 확실한 비교 우위를 점했다.
올해로 46살. 연기의 맛을 제대로 내기 시작한 매튜 맥커너히의 차기작은 '다크 나이트' 시리즈와 '인셉션'으로 국내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확보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다.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김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