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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독일 영화가 과거사를 바로 보는 이유

최호원 기자

입력 : 2014.03.04 10:46|수정 : 2014.03.04 10:46

-'우리 아버지 우리 어머니'를 보며


지난해 5월 독일 공영방송 ZDF가 3부작으로 방영한 TV미니시리즈 '우리 아버지, 우리 어머니(Unsere Mütter, unsere Väter)'입니다. 방영 이후 123분짜리 영화로 재편집돼 각국의 극장에서 개봉이 되고 있습니다. 지난달 27일 국내에서도 개봉했죠. 한글 영화명은 '포화 속 우정(Generation War)'입니다. 작은 업체가 수입해 국내 개봉관은 5곳에 불과합니다.
  
3부작 TV미니시리즈 자체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최고 시청률 24%을 기록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나치 독일에서 군인으로, 가수로, 간호사로, 유태인으로 살았던 네 명의 독일 젊은이들 이야기입니다. 독일어 예고편을 보시죠.[[클릭]]

 TV미니시리즈는 특히 당시 독일군의 만행을 역사적 사실 그대로 묘사해 독일 내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유태인 소녀, 소년을 사살하는 독일군 병사
-민간인들을 지뢰밭에 먼저 밀어넣는 독일군 부대
-저항군들을 공개 교수형에 처하는 독일군
-유태인을 폄하하는 폴란드 저항군들
-정권에 반대하는 자국민들도 사형에 처하는 나치 정권
-전쟁이 끝난 뒤 처벌받지 않고 연합군에 채용된 나치 장교들까지...
우리 아버지 우리이 영화를 취재하며 주한 독일 문화원의 슈테판 드라이어(Dr. Stefan Dreyer) 원장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드라이어 원장은 "한국뿐 아니라 일본과 중국까지 동아시아지역 문화원 활동을 총괄하고 있어 일본과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발언은 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독일 영화계와 방송계가 이런 드라마를 만들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요? 드라이어 원장과 문화원 관계자들의 설명을 풀어보겠습니다.

<문> 이 작품이 독일에서 큰 인기를 끈 원인은 뭔가요?
<답> 아마도 독일인의 시각에서 독일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드라마에서 드러난 당시 독일 사회의 모습들은 독일 내에서 다양한 토론을 이끌어냈습니다. 또, 각 가정에서는 아이들이 부모들에게 '2차 대전 당시 독일이 어떤 범죄를 일으켰는지'에 대해 물어보면서 가족 간에도 토론을 벌였죠.
슈테판 드라이어<문> 이 작품을 본 독일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답> 2차 대전이 끝나고 태어난 첫 번째 후세대, 이른바 '68세대'들은 2차 대전을 일으켰던 부모 세대에게 매우 비판적인 질문을 했습니다. (**68세대: 베트남 전쟁 반대로 시작해 1968년 전후 유럽 전역에서 나타났던 모든 형태의 탈권위주의 운동과 평등 인권 운동과 그에 동조하는 세대를 뜻하는 말) '2차 대전 직전에도 독일은 유럽 내 선진국이었는데, 어떻게 전쟁을 일으키고, 대학살 등 전쟁 범죄를 일으킬 수 있었나?'입니다. 드라마 '우리 아버지 우리 어머니'가 인기를 얻은 근본 요인은 이처럼 독일에서는 이미 68세대 이후 국가사회주의적 과거(나치 시대)에 대한 비판적 논쟁이 각급 학교의 교육과정에 포함돼 있기 때문입니다. (즉, 교육을 통해 독일 국민 전체가 나치에 대한 비난 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드라마에 나온 나치 만행에도 적극적으로 분노했다는 의미) 68세대 이후 독일은 교육제도 내에서 끔찍한 과거사를 적극적으로 가르쳤고, 역사 교육을 둘러싼 논쟁도 끊임없이 나타났습니다. 저는 많은 젊은이들이 '우리 아버지, 우리 어머니'를 보고 감동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독일 젊은이들이 이 TV시리즈를 하나의 경고로 받아들여 다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서는 안됨을 인지하였으리라 생각합니다.

<문> 독일이 나치 과거사를 철저하게 교육시키는 이유가 뭡니까?
<답> 국가사회주의(나치즘) 형성과 출현, 유대인 대학살과 독일인이 일으킨 제2차 세계대전은 모든 학교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수업 내용입니다. 왜냐하면 나치 정권의 탄생과 전쟁의 발발은 한편으로는 유럽의 분단(냉전체제)으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독일인을 영원히 따라다니는 주요 주제입니다. 또한, 프랑스와 폴란드 물론 이스라엘 등 주변국가와의 관계 악화도 우려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독일이 과거사 문제에 대해 철저한 교육과 반성을 하지 않는다면, 주변 국가와의 우호적인 관계는 불가능했고, 국가적 성장과 발전도 어려웠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던 것이죠.
 영원의 제로
 인터뷰가 끝난 뒤 "어쩌면 독일과 일본이 이렇게 다를까?" "왜 일본에선 독일의 68세대의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못했을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제(3/3) 8시뉴스에 '독일 영화, 과거사 생생히 묘사...일본은?'이라는 리포트를 했는데요. [[클릭]] 요즘 일본에서는 우경 애국 엔터테인먼트 장르가 인기라고 합니다. 2차 대전 당시 일본군이나 현재 자위대 이야기, 또는 일본 기업의 영웅적인 고난 극복 이야기 등을 소재로 삼는 소설, 드라마, 영화 등을 말하죠.

 "2차 대전 이후 독일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는 주변 국가들과의 우호적 관계가 필수적이었고, 과거 역사에 대한 철저한 교육과 반성 없이는 불가능했다" 슈테판 드라이어 원장의 이야기인데요. 일본의 우경 세력에게 진정한 애국이 무엇인지 묻고 싶군요. '발전하는 일본, 존경받는 일본'을 만드는 진정한 길은 올바른 역사 인식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명심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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