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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물건 훔치는 것에 쾌감…'병적 도벽', 왜?

박아름 기자

입력 : 2014.02.22 16:53|수정 : 2014.02.22 16:54

주부 우울증·스트레스가 '병적 도벽'으로..


# 사건 1.
47살 여성 박 모 씨는 서울에 있는 유명 백화점을 돌며 상습적으로 옷을 훔쳐 오다가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지난 2010년부터 수십 차례에 걸쳐 훔친 옷은 1천3백만 원어치. 주로 백화점이 붐비는 주말 오후를 노려 매장에 진열된 옷을 미리 준비해간 쇼핑백에 몰래 숨겨 나오는 수법이었습니다. 박 씨는 물건을 훔치면서 느끼는 쾌감으로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왔다고 경찰 조사에서 진술했습니다.

# 사건 2.
40살 여성 박 모 씨는 3년 동안 백화점을 돌며 물건을 훔쳐오다가 붙잡혔습니다. 백화점 안에서도 CCTV 사각지대에 있는 할인 행사장을 노렸습니다. 훔친 물건은 가방, 지갑, 선글라스, 스카프, 옷, 장갑 등 다양합니다. 경찰이 압수한 물품만 120개가 넘는데 대부분 베란다 창고에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훔친 물건을 팔거나 사용한 것이 아니라 그저 집에 쌓아두고 있던 겁니다. 조사 결과 박 씨는 범행 전력이 없는 주부로 나타났고 남편과 자녀들은 박 씨가 범행을 저질러왔단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절도 피의자가 40대 여성이라는 점, 그리고 ‘생계형 범죄’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두 사람 모두, 필요에 의해 물건을 훔친 것이 아니라 훔치는 행위 자체에서 만족을 얻었습니다. 잘못된 행동이란 걸 알면서도 충동적으로 물건을 훔치고, 이 행동이 상습적으로 반복되는 '병적 도벽(kleptomania)' 현상입니다.

병적 도벽 현상은 충동 조절 장애에서 비롯되는 정신 질환입니다. 모든 정신과 질환이 그렇듯 원인을 특정할 수는 없습니다. 고려대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정현강 교수는 “스트레스를 받는다거나 내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욕구 불만이 있는 경우 병적 도벽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병의 원인을 하나로 단정 지을 수는 없으며 각각의 증상에 따른 임상적인 판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여성들의 경우 조금 다른 해석도 가능합니다. 병적 도벽 현상이 월경 전 증후군으로 나타나는 겁니다. 여성들은 월경하기 전 급격한 호르몬 변화를 겪습니다. 이 변화는 정서와 행동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심한 경우 기분 장애로까지도 이어질 수 있다고 합니다. 불안감과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물건을 훔치는 극단적인 선택이 나오게 되는 배경입니다.

이렇게 다양한 원인 분석이 가능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절도 행위 자체가 용서되진 않습니다. ‘우울증 때문에' 혹은 '극심한 스트레스나 호르몬 변화 때문에’라는 설명은 가능할지 몰라도 이로 인한 범죄행위를 정당화할 수는 없겠죠. 경찰은 병적 도벽이라 할지라도 엄격하게 절도 혐의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병적 도벽은 범죄인 동시에 정신 질환입니다. 처벌뿐 아니라 약물치료나 정신과 상담을 병행하면서 공동의 노력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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