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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폭설은 '재해' 아니다?…'매뉴얼 사회' 일본의 한계

김승필 기자

입력 : 2014.02.18 09:31

기준없어 '재해대책본부'설치않은 '지자체'


 지난 금요일(2월 14일) 저녁, 일본에는 지금까지 경험한 적이 없는 폭설이 내렸다. 후지산이 있는 야마나시현에는 기상관측 사상 최대인 114cm의 눈이 퍼부었다. 후지산 근처의 가장 큰 호수인 가와구치호에는 무려 143cm의 눈이 쌓였다. 모두 하룻밤 새 일어난 일이다. 도쿄에도 20cm가 넘는 눈이 내리면서 간토지방 곳곳에서 '눈의 재해'가 발생했다. 수도인 도쿄는 눈이 그치자 하루 만에 거의 정상을 회복했지만, 야마나시현에선 사흘째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국도에는 1백여 대의 차량이 60시간이 넘게 꼼짝달싹 못 하고 있고, 고립된 주민 숫자는 제대로 집계조차 안 되고 있다. 물류가 마비돼 편의점에는 식료품이 동난 상태라는 보도가 계속되고 있다. (2월 17일 오후)

그런데 트위터에서 새로운 소식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야마나시에 있는 지인과 전화를 했는데,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야마나시현이 이런 재해상황에도 '재해대책본부'를 설치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유는 '지진'이나 '홍수' 때는 '재해대책본부' 설치 기준이 있지만, 폭설의 경우에는 설치 기준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트위터 내용). 이 트위터는 모두 2천4백 회 이상 리트윗 되며 폭발적인 관심이 쏠렸고, 시민 반응이 꼬리를 이었다. "매뉴얼이 없으면 기능하지 못하는 행정", "지시가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하는 공무원", "룰에 기대지 않으면 일을 않는 지자체에 책임을 묻고 싶다. "등. 야마나시현에 직접 연락해서 재해대책본부가 설치되지 않은 사실을 확인한 트위터 사용자도 있었다. 이들의 한결같은 반응은 '매뉴얼이 없으면 작동하지 않는 일본 행정체계'에 대한 비판이었다. 이런 시민 비판이 전달됐는지, 야마나시현은 폭설 사흘 뒤에야 뒤늦게 (2월 17일) '재해대책본부'를 설치했다.

'야마나시현의 조례'를 찾아봤다. '재해대책본부'에 관한 내용만 모두 65페이지에 달했다. 내용도 너무나 자세하게 정리된 흠잡을 데 없는 매뉴얼이었다. 그런데 '재해대책본부'를 설치하고 전 직원을 동원되는 경우를 보면, 1) '진도 6 이상의 지진이 발생했을 때' 2)'화산 분화로 주민 피난이 발표됐을 때' 3)'대규모 재해가 발생했을 때'로 되어 있다. 결국, 지진과 화산 분화는 수치로 명기돼 있지만, 대규모 재해는 인간의 판단에 맡기고 있었다. '인간의 판단' 즉 독자적인 결정을 내리고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면, 일본의 시스템은 약점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은 데, 이번에 또 일본의 약한 구석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일본 사회는 매뉴얼에 따라 움직이고 그만큼 정확하다. 때로는 입이 벌어질 정도로 준비가 철저하다. 하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완벽하게 준비한 매뉴얼도 상황이 발생하면 늘 '빈틈'이 존재한다. 이 '빈틈'은 결국 인간의 주체적인 판단과 상황 대처 능력으로 메워야 하는 데, 그 점이 바로 일본의 약점이다. 비슷한 상황을 일본 사회에서 어렵지 않게 경험할 수 있다. 민원이 발생해 일본 관공서나 회사를 찾아가 보면 일단 너무나 친절하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맞는 주장을 해도, 실제로 직원이 일을 처리해 주기보다는 끊임없이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라고만 말하는 경우를 접할 수 있다. 당신의 말이 맞더라도, 우리 매뉴얼에 없으면 어쩔 방법이 없다는 것이고, 실제로 이럴 경우 아무리 타당한 주장을 해도 일이 처리되지 않는다. 한 가지 덧붙이면, 대부분의 일본 소비자는 이럴 때 그냥 포기하고 체념한다는 것이다. 너무나 너그럽다. 반면 한국의 소비자는 까다롭다. 일본의 서비스 산업 경쟁력이 한국보다 뒤처지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