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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중국의 밸런타인…3천5백만원 장미 꽃다발까지

우상욱 논설위원

입력 : 2014.02.14 14:48


밸런타인 데이, 전 세계 연인들의 날입니다. 우리나라는 여성이 남성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며 사랑을 고백하는 독특한 풍속으로 자리 잡았죠.

중국의 젊은이들도 밸런타인 데이를 중요한 절기로 여깁니다. '情人節(칭런제)'라고 부르며 연인과 선물을 주고 받습니다. 특히 중국에서는 초콜릿 외에 장미꽃 선물을 많이 합니다. 매년 칭런제면 중국의 거리마다 커다란 장미꽃 다발을 안고 행복한 표정으로 다니는 연인들로 넘쳐 납니다.

그런데 올해는 칭런제가 공교롭게도 元宵節(위엔샤오제)와 겹쳤습니다. 위엔샤오제는 우리로 치면 정월대보름입니다. 그때문에 중국의 젊은이들이 목하 고민에 빠졌습니다. 왜냐고요?

칭런제2중국에서 정월대보름은 춘제 절기의 마지막 날이자 그 자체로도 중요한 명절입니다. 일반적으로 가족들이 모두 모여 함께 위엔샤오를 먹습니다. 위엔샤오는 우리의 경단과 비슷한 모양의 떡입니다. 다만 속에 땅콩이나 팥, 콩, 또는 고기 등의 소를 넣는다는 점이 다릅니다. 북방에서는 쪄서 먹고 남방에서는 물에 넣고 끓여 먹습니다.

중국인들은 위엔샤오제에 다시 한번 요란한 밤을 보냅니다. 이날 옛것을 일소한다는 의미에서, 또 모든 귀신을 쫓아낸다는 의미에서 다시 대대적으로 폭죽놀이를 합니다. (시끄러운 것은 참을만 하지만 극심할 스모그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숨이 막힙니다.ㅠㅠ) 그러니 중국의 젊은이들은 이날 가족 모임에 참석해 위엔샤오를 먹고 불꽃놀이를 할 것이냐, 아니면 애인과 만나 초콜릿과 장미꽃을 주고 받고 사랑을 속삭이느냐, 갈등을 겪게 된 것입니다.

중국의 SMS에는 "家人(가족)이냐, 佳人(애인)이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한탄이 넘쳐납니다. '애인과 어머니가 물에 빠졌을 때 누구를 먼저 구하냐'는 질문과 같이 답을 낼 수 없는 문제라며 탄식합니다. 그런가하면 SMS에 나름의 해법도 속속 올라오고 있습니다.

일부는 '뭐니뭐니 해도 가족이 가장 소중한 만큼 가족 모임에 참석하는게 우선'이라며 전통 윤리에 투철한 대답을 합니다. 다만 댓글에 '너 곡부(공자의 고향) 출신이냐?', '명나라에서 시간여행 왔니?', '결혼하기 쉽지 않을 듯' 등 반감을 표시하는 것이 많아 보입니다.

'애인과 함께 영화를 본 뒤 가족들과 저녁을 먹는다'는 절충안을 내놓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거꾸로도 있네요. '가족들과 얼른 저녁을 먹은 뒤 애인과 밤새 논다'는 아이디어입니다. '애인을 부모에게 데려가 소개를 시키고 약혼을 해 가족으로 만들어버린다'는 다소 과격한 방법도 올라옵니다. 그런데 설사 가족이 되는데 성공해도 남자집과 여자집 가운데 어디로 가죠?

상당히 아카데믹한 분석이 있어 관심을 끌었습니다. 원래 정월 대보름은 고대의 칭런제라는 것입니다. 과거 결혼 적령기의 처녀들은 집 밖 출입이 자유롭지 않았죠. 집안에만 갇혀 지내던 당시 처녀들이 정월 대보름 딱 하루만 연등과 초롱 구경을 핑계로 야간에 외출할 수 있었습니다. 오랜만의 자유에서 오는 용기, 휘영청 뜬 보름달이 주는 흥분, 떠들썩한 거리에서 느껴지는 들뜬 분위기속에서 밤산책에 나선 처녀와 총각들은 평소보다 쉽게 눈을 맞추고 마음을 훔쳤다고 합니다.

서방의 낭만적인 절기와 동방의 뜻깊은 명절이 합쳐졌으니 '사랑의 심화'라는 절기의 의미가 더욱 강화됐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니 올 칭런제에는 연인의 마음을 얻기가 더더욱 쉬울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칭런제3중국의 젊은이들은 이 마지막 주장이 가장 설득력 있다고 느꼈나봅니다. 올 칭런제에 장미꽃을 찾는 젊은이가 크게 늘었습니다. 중국의 최대 화훼 생산지인 윈난에서 품귀 현상까지 빚어지고 있습니다. 장미꽃 값은 평소의 30배, 지난해 칭런제와 비교해서도 배가 올랐습니다. 사상 최고가 기록을 경신했다는군요. 오늘 꽃가게에서 장미꽃을 사려면 딱 한 송이에 평균 5천 원 넘게 줘야 합니다. 우리나라보다 중국에서 꽃값이 훨씬 싼 점을 고려하면 어마어마하게 비싼 가격입니다.

또 특별한 날 결혼신고를 해야 평생 좋은 금실을 유지한다며 결혼 등기소로 신혼 부부가 밀려들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 베이징에서만 4천 쌍이 결혼 신고를 예약했다고 합니다. 각 지역 결혼등기소는 특별 근무에 들어갔습니다.
칭런제5
저장성 진화시에서는 기네스북에 오를 법한 일도 벌어졌습니다. 천모씨는 자신의 여자 친구에게 장미꽃 999송이를 선물하며 프로포즈했습니다. 그런데 이 장미꽃의 가격이 적어도 20만 위안, 우리 돈 3천5백만원입니다.

뭐가 그렇게 비싸냐고요? 이 장미꽃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일이 손으로 접어 만들었습니다. 중국의 최고액권 화폐인 1백 위안권 2천 장으로요. 1백 위안권이 붉은 색이라는 점에 착안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소식들을 접하면서 마음 한 구석이 왠지 허전해집니다. 우리나라의 밸런타인 데이도 그렇고, 중국의 칭런제도 그렇고 돈 냄새가 물씬 풍깁니다. 그 무엇보다 순수하고, 깨끗하고, 아름다워야 할 사랑이란 감정이 이제는 상업적인 팬시 상품으로 변했습니다. 굳이 초콜릿이나 장미꽃, 수천만원짜리 지폐 다발 장미꽃이 없으면 사랑의 감정을 주고 받을 수가 없을까요?

둥근 보름달과 마을 곳곳에 걸린 연등, 밤 하늘을 채우는 젊은 남녀의 웃음 소리만으로도 사랑을 싹틔웠던 그 옛날의 풍속이 더더욱 '사랑의 절기'답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