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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병원, 제약사에 약품 무조건 5원에 달라…'갑의 횡포'

남정민 기자

입력 : 2014.02.14 09:28|수정 : 2014.02.14 09:28

의약품 '시장형 실거래가', 뭣 때문에?


1월부터 종합병원들은 발빠르게 제약사에 공문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계약기간이 남은 제약회사에 대해서도 기존 계약을 파기하고 계약서를 새로 쓰자고 합니다. '재계약 견적 협조 요청',  '인하 검토 부탁' 등 점잖은 문구가 적혀 있지만 실상은 '갑이 을에 가하는 압박' 입니다. 문서로 증거가 남는 공문에는 구체적인 수치나 요구가 언급되지 않았지만, 영업사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구체적인 '요구사항'은 전화나 1:1 면담에서 이뤄집니다. 가령 납품하는 약 가격을 30% 이상 깎아달라던가, 일괄 5원에 납품하라던가, 하는 일방적인 주문 말입니다. 제약협회가 9곳 정도를 자체 조사해보니, 최고 50%까지 할인을 요구하는 병원도 있었습니다.  (이곳에 할인요구율 사진 넣어주세요)

제약사들은 거절할 수도, 다 받아들여줄 수도 없다고 하소연합니다. 거절하면 병원에서 약품 코드가 삭제되니 다시는 그 병원에서 영업을 못 하게 될 테고, 요구를 다 받아주자니 손해가 막심할 게 뻔하기 때문이죠. 병원 몇 곳의 구매담당자들에게 전화를 해 보니, 2월 1일 제도시행일에 맞추어 급하게 할인율을 정한 것이라 추후 추가 인하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럼 병원들은 왜 갑자기 이런 <갑질>을 하게 된 걸까요? 
병원들은 제약사나 도매상을 통해, 보험에 등재된 약가보다 싸게 약을 살 수록 그 차액의 70%를 '인센티브'로 건보에서 지급받습니다. 지난 2010년에 처음 도입된 '의약품 시장형 실거래가 제도' 때문입니다. 이 제도는 약품 유통을 투명하게 하고, 약가를 낮춰 환자 부담을 줄이고 건보 재정도 튼튼히 하기 위해 시행됐다가 16개월 후 잠시 중단됐고, 이번달부터 재시행됐습니다.

그런데 당초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채, 건보 재정만 낭비하고 큰 병원의 배만 불린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제도가 시행된 지난 16개월 동안 지급된 인센티브가 총 2천억 원에 육박하는데, 92%가 대형 병원에 쏠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인센티브 주더라도 약가 인하로 건보재정 절감이 잘 됐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실제로는 재정절감보다 인센티브 지급액이 더 많아서 최대 1천6백억 원의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제도가 시행되면 종합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원내조제 약을 먹는 환자들)의 약값 부담은 줄어듭니다. 종합병원의 90% 정도가 시장형 실거래가 제도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네 약국과 병원을 이용하는 대부분의 외래 환자들은 아무 혜택이 없습니다. 작은 규모의 병,의원이나 동네 약국은 이 제도에 거의 참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실질적으로 국민이 체감하는 약가인하 효과는 미미한데, 엄청난 건보 재정을 낭비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겁니다. 구매에 따른 이윤을 내놓고 인정해 주는 이 제도가 결국 '리베이트의 합법화'를 조장한다는 비난도 받고 있습니다. 또 의약품 시장에서 갑을 관계인 병원과 제약사의 위치를 더욱 악화시켜 불공정행위가 기승을 부릴 수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힙니다.

오늘(14일) 이 제도의 시행을 둘러싸고 최종 의견수렴을 위한 보험약가제도개선협의체가 열립니다. 업계의 피해 없는 공정한 경쟁질서를 만들기 위해, 또 실질적으로 약가 인하에 도움을 주려면 현 제도를 어떻게 개선해야할 지를 고민해 봐야 합니다. 정책을 도입할 때 당초 목표는 좋았습니다. 그런데 현장에선 엉뚱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시민단체와 업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시범시행 기간의 성과 만으로는 앞으로를 예단할 수 없다면서 인센티브 지급율을 조정해서라도 계속 시행하는 방안을 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구체적인 수치나 통계를 제시해 제도시행의 필요성을 이해시키면 좋을 텐데요. 지금까지로 봐선 큰 약가 인하 효과도 없는 이 제도 시행을 위해서 국민이 왜 비용을 부담해야 되는지, 납득할 만한 정부의 대답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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