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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실패로 끝난 '고이즈미 극장'…그러나 반란은 끝나지 않았다

최선호 논설위원

입력 : 2014.02.11 09:38|수정 : 2014.02.11 09:58

'고이즈미 극장'의 패인과 곧 이어질 '新 고이즈미 극장'


(사진=도쿄 교도)
 

'고이즈미 극장'이 결국 실패로 끝났습니다.

단일 쟁점으로 선명한 대립구도를 만들어 여론을 몰아가는 고이즈미식 승부, 그래서 '고이즈미 극장'으로 불리는 일본판 정치9단의 승부수가 이번에는 통하지 않았습니다. 호소가와 전 수상을 통한 간접출마라 하더라도, 전 수상의 도쿄 도지사 출마 자체가 처음 있는 일입니다. 3위에 그친 점은 일본 언론들도 다소 의의로 평가합니다. 고이즈미 극장에 생각 만큼 손님이 들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핵심은 미디어의 외면입니다.

최대 부수를 자랑하는 요미우리(1천만부), 또 우익지 산케이는 노골적으로 호소가와-고이즈미 조합을 폄하-무시했습니다. '원전 제로'가 철없는 주장이라는 취지의 기사와 사설을 연일 썼습니다. 선거운동 기간 여론조사 기사를 쓰면서, "마스조에 선두. 우쓰노미야, 호소가와 추격"이라고 제목을 뽑았습니다. 약속이나 한 듯. 호소가와가 3등이라는, 즉 바람이 불지 않는다는(사실은 바람이 불지 않기를 바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거죠.

고이즈미 스스로도 불만을 터뜨릴 정도였습니다. "미디어가 원전제로 이슈를 무시하고 있다" 고 여러차례 인터뷰에서 화를 냈습니다. 과거 고이즈미 극장의 핵심이 미디어의 전폭적인 지원과 관심이었는데, 그게 안 되니 극장에 사람이 모이지 못한 겁니다.

아사히와 도쿄신문(주니치 계열)이 그나마 우호적이었지만, '원전 제로(호소가와)' 대 '복지-경제-올림픽(마스조에)'이라는 대립구도는 그 자체로 다소 비대칭적입니다. 선명하기 힘든 구도이고, 그 만큼 미디어의 관심과 지원을 얻기는 힘들었습니다.

출마 준비도 너무 늦었습니다.

심지어 선거 포스트를 투표 4일 전에 바꿔 붙였습니다. 옛 일본신당계 그룹과 민주당 조직가들이 가세하면서 선거 슬로건을 "원전 제로"에서 "원전 제로로 올림픽을"이라고 바꿨습니다. 조금 더 대중친화적으로 가자는 취지겠죠. (도쿄 사람들은 2020년 도쿄 올림픽을 부흥의 기회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고이즈미의 호소가와 지지 선언이 나온 게 지난달 14일. 그 이후 선거 공고가 난 지난달 22일까지 거의 열흘 동안 두사람은 아예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선거전 중반까지도 70대 노 정객 두사람은 가두연설을 번화가 중심으로 하루 2차례만 했습니다. 언론 인터뷰를 우선하는 공중전(일본 언론은 미디어 우선 선거운동을 이렇게 부르더군요) 위주였습니다.

선거유세 초반, TV에 나온 호소가와 후보의 연설 한토막인데요. "원전 즉시 제로는 가능합니다. 원전 대신 태양력, 조력...음...또 하나가 뭐였지...아 바람, 지열" 이런! 자신의 정책을, 그것도 단일 이슈 선거를 하겠다는 핵심 정책을 떠듬떠듬 거리는 모습에서 유권자는 불안을 느꼈을 겁니다.

호소가와 진영의 한 간부는 "공중전을 통해 뭔가 되겠지"라는 낙관이 있었다고 솔직히 고백했습니다.

더구나 '탈핵-반원전' 표심은 쪼개졌습니다.

정치공학적으로 잠깐 짚어보죠.

일본 언론이 분석하는 도쿄 표심입니다.(마이니치 신문 참조) 자민-공명 연립 여당의 조직표를 220만표 전후로 잡습니다. 마스조에 후보가 이번에 211만 표를 획득했으니 '지상전'(일본 언론은 조직을 동원한 선거운동을 이렇게 부르더군요)으로 동원할 수 있는 표는 모두 거둬간 셈입니다.

반면 '탈핵-반원전' 표는 120~170만 표 정도로 추정됩니다. 지난해 7월 참의원 선거에서 '탈핵-반원전'을 내걸고 도쿄도 지역구에서 당선된 의원들이 받은 표가 168만표, 비례대표로는 120만표를 받았다는 겁니다.

보수진영이 하나로 뭉치고, '탈핵-반원전' 표심은 쪼개져 있는 상황. 정치공학적으로 불가능한 선겁니다.

혹시 2위를 차지한 우쓰노미야 전 일본변호사연합회장과 단일화를 했다면?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단일화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우쓰노미야 후보와 호소가와 후보는 '탈핵-반원전'을 제외한 나머지 거의 모든 부분의 입장이 다릅니다. 우쓰노미야 후보는 '혐한 시위 반대'를 주도해 온 시민운동 지도자로, 저희 SBS 8뉴스에도 인터뷰가 나간 적이 있습니다. 솔직히 도쿄 주재 한국 특파원들의 상당수가, 한일 관계를 생각한다면 우쓰노미야 후보가 당선되는 게 좋은데...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반면 고이즈미 전 수상, 어떤가요? 수상 재임시절 야스쿠니 참배를 강행했던 인물이죠. 일본의 강경 보수 정치인입니다. 호소가와 후보 역시 과거 총리 시절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으로 낙마했던 인물입니다. '탈핵-반원전' 단일화는 애초에 불가능했습니다.
고이즈미 캡쳐_50

그렇다면 '고이즈미 극장' 이대로 끝일까요?

어젯밤 TV 인터뷰에 고이즈미 전 수상의 아들 고이즈미 신지로 내각부 부흥담당 정무관(차관급)이 나왔습니다. 기자가 "고이즈미 전 총리의 역할은 끝난 겁니까"라고 묻자, 신지로는 단호한 어조로 "아닙니다. 앞으로도 생각이 있으실 겁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재차 "어떤 역할입니까"라고 물어도 더 이상 구체적인 답변은 하지 않았습니다.

고이즈미 전 수상 스스로도 어젯밤 호소가와 후보에게 보낸 메시지를 통해, "앞으로도 '원전 제로'의 국가를 목표로"라고 밝혔습니다. 이번 선거 패배가 끝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과연 무엇일까요?

자민-공명-유신회 등으로 이어지는 일본의 보수대연합, 끊임없이 '우향우'를 하고 있는 일본 정치가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습니다. '야당발 정계 개편'이 임박했다는 얘기가 솔솔 나오고 있습니다. 이번 실패를 교훈삼아 고이즈미 전 수상 아니 고이즈미 부자는, 어쩌면 조만간 닥쳐 올 일본 정계 개편에 대비한 '新 고이즈미 극장'을 지금부터 준비하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