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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진격의 트롤' 막아줄 마지막 전사는 중국?

우상욱 논설위원

입력 : 2014.02.11 09:33


트롤은 북유럽 설화에 등장하는 괴물입니다. 3미터에 이하는 거대한 몸집과 괴력을 자랑합니다. '반지의 제왕'을 비롯한 판타지 소설에 단골로 등장합니다. 요즘은 각종 컴퓨터 게임의 인기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모습이나 행동 양식, 성질이 조금씩 변주되지만 변치 않는 한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인간과 소통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적대적입니다. 심지어 인간을 잡아먹기도 합니다. 합리적인 명분이나 납득할 만한 이유 없이 인간을 공격할 뿐입니다.

특허 괴물11990년대 말부터 지적재산권, 즉 각종 특허권을 이용해 돈을 버는 회사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특허를 이용한 생산 활동은 하지 않고 그저 특허 사용과 관련된 부수적인 수입을 전문적으로 획득하는 기업들입니다.

이들 가운데 일부가 '특허 괴물'로 진화했습니다. 사정이 여의치 않은 기업이나, 특허를 산업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개인에게서 헐값에 특허권을 넘겨 받은 뒤 이를 사용하는 기업들을 상대로 고액의 특허료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합니다. 아니면 소송을 걸겠다고 협박해 '합의금'을 받습니다. 특허를 이용해 뜯어낼 수 있는 한 받아갑니다.

이 '특허 괴물'의 영어 이름이 'patent Troll', 즉 '특허 트롤'입니다.

요즘 휴대 전화 업계는 사상 최강, 최악의 '특허 트롤'이 탄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휩싸여있습니다. 대상은 그 유명한 '노키아'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계 최고의 휴대전화 제조사였습니다. 혁신의 대명사이자 핀란드 경제의 절반이었습니다.

특허 괴물3하지만 노키아는 애플이 주도한 스마트폰 바람에 시의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급격히 대세가 옮겨가는데 머뭇거리다 한순간에 미끄러지고 말았습니다. 노키아는 결국 재작년 9월 휴대전화 사업부를 미국의 MS로 넘겼습니다.

그런데 휴대전화 사업을 포기하면서도 무수한 관련 특허는 그대로 남겨뒀습니다. 휴대전화를 생산하지는 않으면서 특허만 보유한 기업이 된 것입니다. 무슨 의도이겠습니까? 전문적인 특허 장사에 나서겠다는 뜻이죠.

휴대전화를 생산하는 업체끼리는 서로 특허료를 많이 요구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와 노키아는 서로에게 특허료를 받지 않습니다. 삼성전자도 휴대전화와 관련된 여러 특허를 갖고 있고 노키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서로에게 관련 특허료를 요구하면 휴대전화 값만 올릴 뿐입니다. 그래서 속된 말로 '퉁 치는' 것입니다. '네 특허를 공짜로 쓸테니 너도 내 특허를 무료로 쓰라'고 합니다.

자, 이런 상황에서 한쪽이 '이제부터 우리 휴대전화 직접 생산 안해'하고 나서면 어떻게 될까요? 더이상 다른 휴대전화 기업들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특허료를 마음껏 받을 수 있겠죠. 말을 듣지 않으면 거액의 소송전을 벌일 수도 있고요. 바로 '특허 괴물', '특허 트롤'이 되는 것입니다.

노키아는 게다가 한때 휴대전화 산업의 선두 기업이었습니다. 수만 가지 관련 특허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후발 휴대전화 업체들로서는 도저히 피해갈 수 없습니다. 따라서 노키아가 '특허 괴물'로 변신한다면 후발 업체들은 그야말로 난감합니다.

노키아 휴대전화 사업부문을 MS가 가져가는 상황에 대해 미국과 유럽 정부는 아무 불만이 없습니다. 유럽은 망해가던 거대 회사를 큰 돈을 받고 팔게 돼서 대만족입니다. 게다가 앞서 말한 대로 이제부터는 특허로 앉아서 돈을 벌 수 있게 됐습니다.

미국과 MS 역시 노키아가 '특허 괴물'로 변신해도 상관 없습니다. 오히려 바람직합니다. MS는 휴대전화 사업 부문을 사면서 노키아의 모든 관련 특허에 대해 10년의 사용권을 얻었습니다. 휴대전화 기술 발전 속도를 놓고 보면 쓸모 없어질 때까지 사용할 수 있는 권리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노키아가 안드로이드폰과 관련한 특허료를 대폭 올리는 상황을 은근히 바랍니다. 자신들은 아무 손해가 없는데다 안드로이드 폰들이 가격 인상 압박을 받게 되는 처지를 이용해 지금은 3%대에 불과한 윈도우폰의 점유율을 크게 올릴 수도 있습니다.

특허 괴물4문제는 우리나라와 중국입니다. 특허 기반이 약한 만큼 관련 특허를 회피할 여력이 없어 특허료 바가지의 직격탄을 맞을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시장 점유율을 높여온 중국 업체들은 존망이 걸렸습니다. 노키아가 특허료를 대폭 높여 원가 상승 요인을 가져올 경우 가뜩이나 남는게 별로 없던 휴대전화 사업은 적자로 돌아설 수 밖에 없습니다. 사업을 포기해야 할 상황에 몰리게 됩니다.

그래서 중국 정부는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MS의 노키아 휴대전화 사업부 결합 심사를 대단히 신중하게 보고 있습니다. 당초 상무부가 심사를 주관했던 1차 심사에서 결론을 내리지 않고 이례적으로 2차 심사까지 들어갔습니다. 발전개혁위원회와 공신부 등 여러 부서를 심사에 참여시켜 공정거래 여부 뿐 아니라 산업의 미래에 미칠 영향까지 따지고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의 눈치를 보는 듯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우리 공정거래위원회와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때문에 우리나라의 삼성, LG, 펜텍 등 휴대전화 사업자들은 전전긍긍하며 중국 정부의 입만 보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가 이번 기업 결합을 허가하지 않아야만 노키아의 '특허 트롤 변신'을 막을 수가 있고, 특허료 폭탄을 피할 수 있으니까요.

완전히 무산시키지는 못하더라도 노키아가 특허료를 터무니 없이 올릴 수 없는 여러 조건을 부가하기만 해도 성공입니다. 이 때문에 한국과 중국의 휴대전화 업체들은 중국 정부가 2차 심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인 오는 19일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특허 괴물'을 왜 영어로 '트롤'이라고 부르는지 이해가 됩니다.

노키아가 휴대전화 제조업체로 있을 때에는 산업 전반과 활발하게 소통을 했습니다. 다른 업체들과 경쟁하면서도 힘을 모아 새로운 기술을 창조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그럼으로써 끊임없이 혁신을 수행해나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휴대전화 생산에서 손을 떼고 '특허 괴물'의 모습을 갖추자 모든 소통이 끊어졌습니다. 휴대전화 산업 생태계야 어떻게 되든, 기술 발전에 방해가 되든, 소비자의 편익이 훼손되든, 그저 특허료를 어떻게 하면 더 받을 수 있을까 모색하는 기업이 될 태세입니다.

인간과의 소통은 안중에 없이 공격하고 잡아 먹으려고 하는 전설속 '트롤'의 모습과 완전 똑같지 않습니까? 인간 사회의 안녕을 위협하듯 '트롤'이 산업의 건정성을 깨뜨리는 모습 아닙니까? 그런데도 '진격의 트롤'을 중국 정부가 막아주기만 바라야하는 우리의 입장이 조금은 서글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