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태어나 자란 45살 이 모 씨는 지난 2007년 9월 북한을 탈출해 2009년 6월 국내에 입국했습니다.
이 씨의 아버지는 6·25 전쟁 당시 학도병으로 참전했다가 북에 끌려가 평생을 살았고 슬하에 2남 3녀를 뒀습니다.
그러다 지난 2004년 5월 이 씨의 아버지는 중국 연길에서 동생과 사촌 동생을 만났고, 가족들도 그가 북한에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 씨의 아버지는 남한 가족과 만난 사실이 들통 나 조사를 받다 지난 2006년 12월 고문 후유증으로 숨졌습니다.
이 씨의 아버지는 1977년 법원으로부터 실종 선고를 받아 제적에서 말소됐습니다.
1961년 숨진 이 씨 할아버지의 충남 연기군 선산 5만여 제곱미터는 실종 선고 다음 해인 1978년 가족들에게 상속됐습니다.
국내에 들어온 이 씨는 "조부가 재산을 물려줄 때 부친이 살아 있었으니 상속 자격이 있었고 나도 유산을 상속받을 권리가 있다"며 지난 2011년 친척들을 상대로 소송을 냈습니다.
지난달 이 소송에 대한 판결이 나왔습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9단독 서영효 판사는 6·25 학도병으로 참전했다 북에 끌려가 36년 전 실종 처리된 북한주민의 딸이 "할아버지 상속분을 돌려달라"며 친척들을 상대로 낸 상속 재산 회복 청구소송에서 "선산 315분의 45 지분 소유권을 이전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습니다.
6·25 전쟁 중에 북한에 끌려간 주민이 남한에서 실종 처리돼 상속권을 잃은 지 수십 년이 지났어도 상속 당시 생존한 사실이 확인됐다면 상속권을 인정해 줘야 한다고 판결한 겁니다.
현행법상 북한 주민이 상속 회복 소송을 낼 수 있는 기한을 정해놓은 별도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상속권 행사 기간에 제한을 두지 말아야 한다고 본 첫 판결입니다.
민법에는 상속권이 없어진 지 10년이 지나면 상속 회복을 할 수 없도록 하고 있지만, 남북 분단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해 북한 주민에게는 예외를 인정해줘야 한다고 법원은 판단했습니다.
법정에서는 36년 전 실종 처리된 이 씨의 아버지가 상속자 자격이 유지될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됐습니다.
2012년 5월 시행된 '남북 주민 사이의 가족관계와 상속 등에 관한 특례법' 11조에는 상속권을 침해받은 상속권자가 상속회복 소송을 내게 돼 있는 민법 999조 1항에 따라 북한 주민도 소송을 낼 수 있다고 돼 있습니다.
다만, 민법 999조 2항은 해당 소송을 상속권이 침해된 지 10년 이내에 제기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습니다.
이 씨 친척들은 이에 따라 소송 기한이 지났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남북 분단이 장기화하면서 북한 주민의 상속권이 침해된 지 10년이 지난 경우가 허다할 것"이라며 "특별법은 분단이라는 역사적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민법을 그대로 적용하면 북한의 상속인이 사실상 상속권을 박탈당하는 가혹한 결과가 초래된다는 점을 고려해 제정됐다고 보이며 이에 따라 10년 제한을 두지 않아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이 씨의 아버지가 북한에서 사망함에 따라 그곳에서 상속권을 취득한 이 씨도 특례법에 따라 소송 자격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번 판결이 확정될 경우 이 씨의 아버지처럼 전쟁 와중에 북한으로 끌려가 실종 처리됐다가 생존 사실이 뒤늦게 확인된 북한 주민과 자손들의 상속권 회복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