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에서 '현대판 파라오'로 불린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이 권좌에서 물러난 지 오는 11일로 만 3년이 된다.
그러나 무바라크 정권을 몰아낸 시민혁명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이집트의 혼란도 지속하고 있다.
이집트와 민주화 경쟁을 펼친 '아랍의 봄' 발원지 튀니지는 정국 혼란을 끝내기 위한 출구 전략을 세우고 이를 추진하고 있다.
튀니지는 지난해 말 정치권의 합의 끝에 민주 헌법을 통과시키면서 이집트와는 다른 경로를 밟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 비슷한 초기 민주화 행보
아랍의 민주화 진원지라 할 수 있는 이집트와 튀니지는 민주화 시위가 거세게 일었던 2011년 초부터 지난해까지 비교적 비슷한 행보를 보였다.
이들 나라는 '아랍의 봄'으로 일컬어지는 중동과 북아프리카 국가들의 반독재·반정부 운동을 사실상 대표해 왔다.
튀니지는 '재스민 혁명'으로 아랍의 봄을 촉발시켰고 이집트는 이 바람을 이어받아 2011년 2월11일 '현대판 파라오'로 불린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30년 독재를 종식했다.
독재자를 몰아낸 이들 국가에서는 민주 선거를 통해 이슬람계 정당들이 권력을 잡고 '새 시대'를 약속했다.
그러나 이슬람 정권의 잇따른 실정, 세속주의 세력과 갈등, 경제 악화 등으로 또다시 여론의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특히 이집트에서는 지난해 7월 군부가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을 축출한 이후 대규모 유혈사태가 끊이지 않고 있다.
튀니지도 지난해 초 세속주의 성향의 야권 지도자 2명에 대한 암살을 계기로 이슬람계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이어져 정국이 다시 혼란에 빠져들었다.
두 국가에서는 무르시 축출 사태 이후 이슬람 정치 세력의 입지가 크게 위축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 튀니지, 정치적 합의로 정국 혼란 탈출 모색
민주화로의 이행 과정을 겪은 두 국가의 경쟁 구도는 지난해 말 개헌을 계기로 튀니지 쪽으로 급속히 기우는 양상이다.
튀니지는 지난달 26일 종교의 자유와 남녀평등을 보장하는 내용을 담은 새 헌법을 표결에 부쳐 216표 중 200표의 찬성표로 통과시켰다.
튀니지 국민이 재스민 혁명으로 지네 알아비디네 벤 알리 장기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지 3년 만의 일이다.
2012년부터 논의된 새 헌법 초안을 두고 이슬람 집권당을 주축으로 한 이슬람주의 세력과 서구식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세속주의 세력의 갈등이 고조됐으나 양측이 진통 끝에 합의를 끌어냈다.
민주주의로 이행 과정에서 양측의 숱한 조정과 타협 끝에 나온 첫 결실인 셈이다.
새 헌법은 이슬람교를 국교로 정하고 있지만 다른 아랍 국가와 달리 '샤리아(이슬람 율법)를 법의 근간으로 한다'고 명시하지 않는 점이 특징이다.
또 개정안에 따르면 시민은 고문받지 않고 정당한 법 절차를 밟을 수 있으며, 신앙의 자유를 얻을 수 있다.
폭력을 선동하거나 무슬림 배교자로 선언해 종교적인 공격을 하는 것도 금지하고 있다.
새 헌법은 법 앞에서 남녀의 평등을 보장하며 여성의 권리도 보호하도록 규정했다.
이러한 내용으로 튀니지 새 헌법이 아랍 국가 중에서 가장 진보적인 헌법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튀니지의 온건 이슬람 성향의 집권당 엔나흐당이 무슬림형제처럼 권력 독점에 애를 쓰지 않은 점은 이집트와 다른 점으로 꼽힌다.
◇ 이집트, 군사정권으로 회귀 우려
반면 이집트에서는 군부가 권력 장악에 속도를 내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군부 권한이 확대한 새 헌법 통과로 군사 정권으로 회귀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집트는 2012년만 해도 아랍권에서 자유 민주 선거로 비교적 평화롭게 정권 교체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선거를 거쳐 대통령으로 선출된 무슬림형제단 출신 무르시가 집권 1년 만에 군부에 의해 쫓겨나면서 민주주의가 후퇴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군부가 무르시 정권 축출 이후 시위대를 무력 진압하는 과정에서 1천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이슬람 세력은 "군사 쿠데타"라고 반발하며 지금도 대학가를 중심으로 군부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에 맞서 군경이 최루탄과 산탄, 물대포를 동원해 시위대를 진압하는 양상이 반복됐다.
군부의 권한을 확대하고 이슬람의 영향력을 축소한 새 헌법 초안이 압도적인 찬성률로 통과됐지만 이에 반발하는 움직임도 남아 있다.
특히 새 헌법에는 민간인도 군사 법정에 세울 수 있다는 조항이 포함돼 시위 탄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의 인권감시 단체 프리덤하우스는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에서 이집트에 대해 "민주적 정부기관들이 군사 쿠데타 이후 전면적으로 뒷걸음질쳤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 이집트의 미래는…올해 대선·총선이 중대 변수
튀니지와 이집트의 앞날은 올해 치러질 대선과 총선이 중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현재 상황으로는 튀니지의 미래가 더 긍정적이라는 시각이 많다.
지난달 새 헌법 통과로 튀니지 과도정부가 실업과 물가상승, 부채, 시위 등의 문제를 당장 해결할 수 없겠지만, 외국인 투자자에게 튀니지가 과도기를 거쳐 정상화된다는 점을 어느 정도 이해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집권당 엔나흐다당을 포함한 이슬람 세력과 세속주의 성향의 야권간 정치적 협상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튀니지는 지난달 말 중도 성향의 메흐디 조마하 신임 총리 아래 새로운 과도 내각까지 이미 구성된 상태다.
조마아 총리가 이끄는 과도 정부는 올해 튀니지 총선과 대선 일정을 확정하는 임무도 맡게 된다.
이집트는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정국 혼란이 바로 해결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집트 국민의 모든 시선은 유력 대권 주자인 압델 파타 엘시시 국가 원수의 대선 출마 여부 시점에 쏠려 있다.
이집트 과도정부를 이끄는 군최고위원회(SCAF)는 이미 엘시시의 대선 출마를 공식 승인하면서 그의 대권 행보도 초읽기에 들어갔다.
군최고위원회는 튀니지 새 헌법이 통과된 다음날 만장일치로 엘시시의 출마를 공식 승인하며 "엘시시 장관의 대선 출마는 국민에 대한 책임이자 의무"라고 밝혔다.
이집트의 아들리 만수르 임시대통령은 엘시시 국방장관을 군 최고 계급인 원수로 전격 승진시켰다.
국민의 바람과 군부의 일치된 지지를 받으면 대선에 출마할 수 있다고 한 엘시시의 요구 조건이 모두 충족된 모양새가 갖춰진 것이다.
이집트는 애초 올해 중순 이전에 총선을 치르고 나서 대선을 시행할 계획이었으나 과도정부는 로드맵을 변경해 대선을 먼저 치르겠다고 밝혔다.
엘시시의 높은 대중적 인기가 지속하고 있고 총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고 선거 일정을 바꿨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집트로서는 군부 정권이 들어설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국론 분열이라는 난제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군부가 무르시의 지지기반인 무슬림형제단 탄압 강도를 높이고 권력 기반의 주춧돌이 될 새 헌법마저 통과되면서 이에 거부감을 보이는 반대 여론도 형성됐다.
이집트 국민 상당수가 "치안과 경제가 악화했을 뿐 혁명 이후 달라진 게 거의 없다"는 내용의 불만을 잠재우는 일도 시급한 과제다.
여기에 계속된 정정 불안에 물가 인상, 높은 실업률, 더디기만 한 개혁 진행 속도에 국민 불만이 순식간에 증폭될 가능성도 있다.
(카이로=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