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고드름에서 역은 ‘거꾸로’를 뜻합니다. 바닥에서 하늘로 솟아오르는 고드름이 역고드름입니다. 우리말 고드름 앞에 한자를 붙인 조어 방식이 찝찝하긴 한데, 더 깔끔한 표현은 떠오르지 않습니다. ‘거꾸로 고드름’이라고 부르기엔 좀 거추장스러운 것 같습니다. 짧은 건 엄지손톱만큼 올라오기도 하지만, 긴 건 30cm를 넘는다고 합니다. 사실 고드름에서 30cm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거꾸로 그만큼 솟아오른다고 생각하면 신기합니다. 폐광 천장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면서 바닥에 만들어지는 역고드름과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건 중력을 이겨내고 하늘을 찌를 듯 치솟습니다.
전북 진안의 한 사찰에서 만들어진 역고드름을 최근 방송을 통해 소개했습니다. 돌탑으로 널리 알려진 절인데 겨울에는 역고드름이 더 유명합니다. 고드름이 솟는 원리가 규명되기 전에는 영험한 기운, 신비로운 현상으로만 알려졌습니다. 언론을 통해 입소문도 많이 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역고드름은 진안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해당 지역에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것이 지역 명물이 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인터넷에서 'ice spike'라고 검색해보면 세계 곳곳에서 만들어진 역고드름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조건만 맞으면 우리별 어디서든 생기는 얼음 뿔입니다.
집에서도 만들어볼 수 있을까요. 저는 한 번 도전해볼 생각입니다. 우선 기온이 중요합니다. 날씨가 포근하면 당연히 안 됩니다. 그날의 최저 기온 예보를 미리 확인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현재 제가 사는 동네의 주간 예보를 보니 9일(일)의 최저 기온이 영하 3도, 11일(화)은 영하 6도입니다. 이 정도가 역고드름 만들기에는 딱입니다. 전주대학교 과학교육과 윤마병 교수는 실외에서는 영하 3~5도에서 역고드름이 가장 잘 만들어진다고 말합니다. 너무 추우면 곤란합니다. 고드름이 하늘로 솟아날 틈도 없이 차가운 바깥 공기가 수면을 빠르게 얼려버리기 때문입니다. 역고드름이 생기려면 수면이 천천히 얼면서 얼음 뿔이 솟아날 만한 구멍, 즉 마지막까지 얼지 않는 구멍이 필요합니다.
전북 진안에서 올해 역고드름이 귀해진 이유가 바로 기온 때문입니다. 진안이라고 매번 역고드름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사찰 승려는 요즘 하루에도 몇 번씩 그릇에 냉수를 받아놓습니다. 근데 역고드름 생기는 경우가 흔치 않습니다. 사찰 곳곳에 놓인 그릇만 수십 개, 취재진이 찾아간 날도 대여섯 개의 그릇에서만 고드름이 운 좋게 솟았습니다. 승려는 3주 만에 만들어졌다고 했습니다. 올해 고드름이 이상하게 안 올라온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진안의 기온 관측 정보를 확인해보니 그럴 만 했습니다. 올해 들어 최저 기온이 영하 3~5도였던 날이 달랑 5일밖에 없었던 겁니다. 대부분은 겨울치고 포근하거나, 영하 10도 안팎으로 너무 추웠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정성이 부족해서…" 라고 설명했을지 모릅니다.

역고드름 만들기, 도전의 날은 그래서 8일이나 10일 밤입니다. 다음날 아침에 확인해보면 됩니다. 기온 말고 신경 써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선 그릇의 재질입니다. 진안의 사찰에서는 오직 스테인리스 그릇만 쓰고 있었습니다. 승려는 이걸 누구한테 배웠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자연스럽게 체득한 것 같았습니다. 스테인리스는 열전도가 잘 됩니다. 그릇이 쉽게 차가워집니다. 반면 나무나 플라스틱 그릇은 별로입니다. 열이 잘 전달되지 않습니다. 나무와 플라스틱, 유리그릇을 챙겨서 사찰에서 실험해봤지만 역시 역고드름은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날씨가 워낙 추워서 스테인리스 그릇의 성공률도 낮았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당일 새벽 최저 기온은 영하 11도였습니다. 승려는 고드름이 솟지 않은 얼음을 버리고 또 버렸습니다. 서너 시간만 얼려보면 역고드름 만들기에 성공할지 실패할지 싹이 보인다고 했습니다.
그릇 재질을 따지는 이유는 역고드름의 생성 원리 때문입니다. 역고드름이 만들어지려면 반드시 그릇의 아랫부분 물부터 얼어야 합니다. 차가운 스테인리스 그릇이 바닥의 물부터 얼려줘야 한다는 뜻입니다. 바닥부터 얼기 시작한 물은 서서히 팽창합니다. 평평했던 수면은 약간 불룩해집니다. 이때 수면에는 마지막까지 얼지 않은 작은 구멍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학자들이 ‘숨구멍’이라고 이름 지은 곳입니다. 아래로부터 팽창한 얼음이 숨구멍을 통해 하늘로 치솟는 것, 그것이 역고드름입니다. 역고드름은 숨구멍을 통해 한 번 솟아오르면 10~30분의 짧은 시간에 금세 키가 커버립니다. 여러 취재진은 고드름이 솟는 이 순간을 촬영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투자하지만 번번이 실패해왔습니다. 언제 솟을지 모르고, 한 번 솟으면 금세 끝나기 때문입니다. 나무나 플라스틱 그릇을 쓰면 바닥이 얼기 전에 냉기가 수면을 먼저 얼려 역시 고드름을 만날 수 없게 만듭니다. 밥이나 냉면 그릇 정도의 크기가 적당합니다.
그릇 다음으로는 그릇을 놓는 바닥을 잘 골라야 합니다. 진안 사찰에서는 스테인리스 그릇을 돌 위에만 올려놓습니다. 그것도 특별히 배운 건 아니라고 했습니다. 돌 바닥은 대개 화강암입니다. 역시 열전도가 잘 됩니다. 전주대 윤마병 교수는 그릇을 흙바닥에 놓으면 역고드름이 절대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역암으로 된 바닥이나 모래도 안 된다고 했습니다. 낙엽 바닥도 마찬가지입니다. 스테인리스 그릇이야 집에 있으면 그만인데, 화강암 바닥은 어떻게 할지가 고민입니다. 윤 교수는 에어컨 실외기를 추천했습니다. 건물 밖에 설치된 실외기도 화강암만큼 그릇 바닥을 차갑게 만들어주기에 적당하다는 얘기입니다. 이 정도면 집에서 역고드름 만들기, 어느 정도 준비는 된 것 같습니다.
준비할 수 없는 게 한 가지 있습니다. 바람입니다. 자연 상태에서는 바람이 미세하게 불어줘야 역고드름이 잘 생긴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어느 정도의 바람이 가장 좋은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바람이 세면 수면에 역고드름의 씨앗인 숨구멍이 생기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또 바닥의 차가운 냉기가 흩어져 그릇 바닥을 냉각시키는데 방해받을 수 있습니다. 진안 사찰은 거대한 암석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강풍이 불어도 바람으로부터 안전해 보입니다. 사찰 주변의 미묘한 지형과 그로 인한 안정적인 기류가 역고드름을 유명하게 만든 핵심 원인, 즉 영험함의 실체일지 모릅니다. 집안 냉동실에 아무리 얼음을 얼려도 고드름이 솟지 않는 것, 그것도 기류 때문입니다. 냉동실 냉기는 잘 순환하도록 만들어져 물의 바닥과 수면이 같이 얼어버립니다. 바닥부터 얼어야 한다는 것, 잊지 않으셨죠?
기온, 그릇 재질, 그릇 크기, 차가운 바닥, 약간의 바람까지, 조건이 정말 까다롭습니다. 진안은 올해 ‘기온’이라는 조건 하나가 틀어져 역고드름 보기가 힘들어졌을 정도입니다. 사찰 측은 3주 만에 만들어진 역고드름을 어디론가 가져갔습니다. 사찰 냉동실이었습니다. 냉동실 안에는 이미 예전부터 만들어진 역고드름 몇 개가 보관돼 있었습니다. 승려는 지난해 12월에 생긴 것도 있다고 했습니다. 냉동실 안에서도 얼음이 증발해 고드름이 조금씩 작아진다고 아쉬워했습니다. 사찰은 애지중지 보관 중인 고드름을 여러 취재진이 찾아올 때마다 꺼내서 보여줬습니다. 멀리서 온 관광객들에게도 냉동실 역고드름이 제몫을 했습니다. 이번에 집에서 역고드름 만들기에 성공하면 저도 냉동실에 넣어두고 손님들에게 보여줄 생각입니다. 영험하고 신비로운 집이라는 설명도 덧붙이겠습니다. 가정형 역고드름 사진도 찍어 트윗도 날려보겠습니다. 최대의 장애물은 저희 집 에어컨 실외기가 실내 베란다에 있다는 것입니다. 얼른 대안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