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게이츠의 회고록 소식으로 워싱턴이 시끄러웠다. 오바마 대통령은 아프간 전쟁의 전략이 없었다...바이든 부통령은 제대로 된 외교 정책을 펴 본 적이 없다... 조지 부시와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방장관을 지낸 게이츠의 독설이 연일 워싱턴의 뉴스를 장식했다.
'게이츠는 한국에 관해, 한반도에 대해 무슨 생각을 했을까?'
회고록 기사를 쓰면서도 기자의 머릿속에는 이 한 가지 생각이 가시질 않았다. 출판사에 메일을 보내 책 한 권 미리 구할 수 없느냐 물었지만 답이 없었다.
로버트 게이츠의 회고록 <임무...>를 한 시라도 빨리 구할 방법이 뭘까? 궁하니 통했다. 궁리 끝에 전자책을 예약 주문했고, 시판 당일 0시 자정에 정확히 모바일 배달이 와 있었다.
졸린 눈을 비비며 '미친' 듯이 읽기 시작했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코리아를 뒤졌다. 별 이야기가 없는가 싶었는데 잠이 확 달아났다. '콘틴전시 플랜(contingency planning)'이란 두 단어가 눈에 띈 것이다.
게이츠는 북한의 급변 사태에 대한 대응 계획에 관심이 컸고, 중국과 대화의 문을 열기를 바랐다고 썼다. 2009년 10월 26일 중국의 쉬차이호우 중앙군사위 부주석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이야기를 상세히 적었다.

워싱턴 근교의 링컨 대통령이 쓰던 별장에서 만찬을 했다. 내가 북한 문제를 제기했다. 그곳-북한-의 불안정의 위험(risk)과 붕괴가 중국과 한국에 미칠 위험(danger)에 관해 상세히 이야기했다. 그런 상황이 오면 함께 무엇을 할지 솔직히 대화하는 게 상호 이익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핵무기와 핵물질의 안전을 확보하는 문제까지 포함한 것이었다.
국방장관급의 고위급 인사가 이런 사실을 공개하다니.. 미국과 중국이 북한 관련 '모든 문제'를 논의했다는 커트 캠벨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의 말 - 그것도 미 의회조사국(CRS) 보고서에 해마다 나오는 구문 - 이 새 뉴스인 양 보도될 정도이니 북한 급변사태 논의에 관한 게이츠의 회고는 '빅 뉴스' 감이었다.
중국의 반응은 의외로, 아니 예상대로 싸늘했다. 쉬 부주석은 한 마디로 상황을 정리했다.
"북한에 대한 당신의 견해에 감사합니다."
미국은 큰 관심을 보였지만, 중국은 신통치 않게 반응한 것이다.
게이츠는 이보다 2년 앞서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도 북한 급변 사태 대응 계획 등 민감한 주제에 관해 대화를 열기를 원했다고 소개했다.
회고록에는 북한의 연평도 포격과 장거리 로켓 발사, 여기자 억류 당시 미 행정부의 깊숙한 이야기들도 담겨 있었다.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 때 한국의 보복 계획은 항공기 출격과 포격을 포함해 비례성의 원칙을 넘어서리만큼 공격적(disproportionately aggressive)인 것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런데, 확전을 우려한 미국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뮬런 합참의장, 그리고 게이츠 국방장관 자신이 나서 며칠 동안 한국 측 인사들과 전화통화를 했다는 것이다. 게이츠는 결국 한국이 북한 포대가 위치한 곳에 포격을 가하는 것으로 그쳤다고 평가했다. 미국이 나서서 확전을 말렸다는 의미다.
회고록에는 미국의 두 여기자가 북한에 억류됐을 때,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평양에 가려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으로 바뀐 뒷얘기도 담겨 있었다. 카터는 자신이 가게 되면 협상 조건 뿐 아니라 북미 관계 전반도 논의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게이츠는 이를 두고 "어디로 튈지 모를 일"이라고 표현했다. 카터는 "당신들이 조건을 정할 수는 없다. 그들은 주권국가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밖에 게이츠가 장관 부임 직후 주한미군 사령관을 육군이 아닌 공군 장성으로 앉히려 한 사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때 팀 키팅 태평양 사령관이 기자회견에서 요격 문제를 꺼내며 미 행정부의 시험대가 될 거라고 말했다가 오바마 대통령의 호된 질책을 받은 이야기도 흥미로왔다.
눈길을 끈 한 가지가 더 있었는데 사람에 대한 평가였다. 게이츠 회고록이 워싱턴에서 뉴스가 된 것도 바로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 오바마와 바이든 부통령에 대한 평가 때문이었다.

게이츠는 이명박 대통령을 진짜 좋아했다고 한다. 강단 있고(tough minded) 현실적인데다“아주 친미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면서 괄호를 치고 친절히 덧붙인 말이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과는 완전히 대조적이었다. 2007년 11월 서울에서 만났는데 (노 대통령은) 반미다, 어쩌면 조금 '크레이지(crazy)'라고 결론 내렸다. 그는 나에게 아시아에서 최대 안보 위협은 미국과 일본이라고 했다.

아무리 공직을 떠났다지만 고인이 된 다른 나라 정상에게 '크레이지'라는 표현을 쓰다니...그대로 해석하면 '미친', 좋게 풀어도 '이상한‘, ‘정신이 나갔다'는 말이다.
정당한 이유 없이 대량살상무기를 찾겠다며 이라크를 침공한 조지 부시 대통령 재임 당시의 세계 정세, 또 그런 격랑에 부딪친 한반도와 동북아의 복잡한 안보 상황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현실 인식에 대해서는 여러 평가가 있어 왔다.
그런 격동의 시대에 미국의 국방장관을 지낸 게이츠를 기자는 유심히 봐 왔다. 네오콘의 아성을 뚫고 국방장관을 꿰찼을 때 그랬고, 실용적 접근으로 전시작전권 전환 일정 연기를 합의했을 때 그랬다. 국방부를 출입할 땐, 서울 용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를 만나기도 했다.
게이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사람에 대한 평가는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고인이 된 동맹국의 정상을 고작 한 두 줄의 인상 비평에 근거해 '크레이지'라고 재단하는 건 아무래도 정신 나간 짓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