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관들은 말조심이 몸에 배어 있습니다. 상대방의 감정을 지나치게 격하게 만들만한 어휘는 되도록 쓰지 않습니다. 그럴만도 합니다. 전쟁을 벌이다가도 상대국과 대화를 시도할 수 있습니다. 이때 과거에 뱉어놓은 말이 씨가 돼 협상을 그르치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과거에는 상대국에 외교 사절로 갔다가 목숨을 잃는 일도 부지기수였습니다. 외교관에게 말조심은 자신의 목숨은 물론, 나라의 운명이 걸려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외교적 수사'입니다. 실상을 최대한 긍정적이고 우호적으로 표현하는 어법입니다. 예를 들어 이런 식입니다.
"양국은 이번 협상에서 솔직하고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일상에서 이런 말을 들으며 '아! 마음을 털어놓고 얘기를 할만큼 협상 분위기가 좋았구나'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외교가에서 이 말의 본 뜻은 '협상에서 상대방의 의견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서로 자기 말만 하면서 대판 싸웠다'입니다.
그럼 "상당한 의견 접근을 이뤘습니다"는 무슨 뜻일까요? 간단히 말해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입니다. 아직 합의할 부분이 남았다에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가식적이라고까지 느껴지는 화법입니다만 일말의 대화 가능성이라도 남겨두기 위한 방법일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 중국과 일본 외교관들이 이런 화법을 집어 던지고 막말 싸움을 벌이고 나섰습니다. 서로 상대국에 대해 '마왕'에 '악마'라는 단어까지 동원해 비난합니다. 외교적 화법이라는 외교가의 기본 태도는 아예 사라졌습니다.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 문제로 중국과 일본이 서로 으르렁 거리고 있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죠. 여기에 최근 아베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참배까지 강행하면서 양국의 감정은 완전히 틀어진 상태입니다. 중국은 일본을 상대로 연일 맹비난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최근 영국에 주재하는 중국과 일본 대사가 제대로 붙었습니다. 현지 신문인 텔레그래프를 전장으로 삼았습니다.

류샤오밍 주영 중국 대사는 이 신문 기고문에서 '군국주의가 일본에 유령처럼 떠도는 볼드모트'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는 소설 '해리포터'에서 악의 화신이었던 볼드모트가 자신의 영혼을 7개로 나눠 호크룩스라는 상징물에 감춰뒀던 내용을 차용했습니다. 즉 일본에서 군국주의가 마치 소설속 볼드모트 처럼 끊임없이 부활을 꾀하고 있으며 이중 가장 어두운 영혼을 대표하는 호크룩스는 야스쿠니 신사라고 설명했습니다. 결국 아베 총리는 해리포터 소설 속에서 볼드모트의 부활을 위해 호크룩스를 경배하는 '죽음을 먹는 사람들'에 자리매겨진 셈입니다.
이 글에 주영 일본 대사가 발끈했습니다. 같은 신문에 반박글을 기고했습니다. 그는 "중국이 군비 경쟁과 긴장 고조라는 악의 고삐를 풀어 동아시아에서 볼드모트 노릇을 하려고 한다"고 맞대응했습니다. 그런면서 중국의 도발 사례로 지난해 중국 군함이 일본 구축함에 사격을 위한 레이더를 조준했던 것과 동중국해에서 방공식별구역을 일방적으로 선포한 행위 등을 들었습니다. 부시가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표현했던 것처럼 일본 외교관이 중국을 '마왕'에 비유한 것입니다.

이 글에 대해 중국 외교부의 화춘잉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작심하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해당 글이 "무식하고 이치에 맞지 않으며 대단히 불손하다'고 비난했습니다. "일본의 군국주의는 침략 전쟁을 일으켰으며 이 때문에 중국인 3천5백만명이 다치거나 숨졌다"고 되짚었습니다. 그러면서 "일본 군국주의는 역사상 가장 어두운 악마"라고 강조했습니다. "이 악마를 바로 보고, 반성하고, 치유하려 하지 않으면 아시아와 세계 인민들의 신뢰를 잃을 뿐더러 계속 역사의 피고인석에 앉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마왕' 캐릭터에 서로를 빗대더니, 이제 '악마'라는 단어까지 동원된 것입니다. 이쯤 되면 갈데까지 간 셈입니다. 반일 시위대도, 환구시보도, 국방부 대변인도 아닌 외교부 대변인이 사용한 단어로는 너무나 원색적입니다.
중국은 과거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매년 신사참배를 할 때도 항의와 유감 표명을 했지만 이렇게까지 날을 세우지는 않았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의 격한 반응에 비하면 형식적으로 보일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아베 총리의 신사 참배는 우리보다 한 술, 아니 여러 술을 더 뜨는 모습입니다. 지난달 26일 사태가 발생한 이후 거의 매일 대일 비난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성명이나 담화는 물론, 주중 일본 대사의 초치, 러시아 등 각국 정부에 공동 대응 요구 등 방법도 다양합니다.

댜오위다오(센카쿠) 문제를 둘러싼 여론전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전개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됩니다. 일본의 우경화를 부각시켜 우리나라는 물론 동남아까지 연대해 일본을 견제하려는 의도입니다.
외교관들까지 막말에 가까운 비난을 주고 받는 것은 양측 모두 지금 현재로서는 대화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는 방증입니다. 이대로 대결 국면으로 밀고가겠다는 뜻입니다. 사실 중국이나, 일본이나 지금의 이런 분위기가 반드시 불리한 것만은 아닙니다.
중국은 일본을 집요하게 공격함으로써 한·미·일 공조 체제를 흔들 수 있습니다. 미국이 구상하는 중국 포위선에 균열을 낼 수 있습니다.
거꾸로 일본은 중국 공포를 빌미로 자신들이 원하는 군사력 강화를 꾀할 수 있습니다. 국내적으로도 이른바 평화헌법을 개정해서 보통 국가가 되기 위한 유리한 여론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렇게 막말로 싸우다보면 자칫 감정이 격해질 수 있습니다. 국가나 개인이나 똑같습니다. 험한 말을 주고 받아 감정이 상하면 불쑥 손이 나갑니다. 그래서 중국과 일본이 치고 받게 되면…생각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해집니다.
우리나라로서는 참으로 얄궂습니다. 안으로는 북한과 끊임없이 막말을 주고 받으며 신경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밖으로는 중국과 일본이라는 두 강대국의 막말 싸움을 불안한 눈으로 지켜봐야 합니다. 외교적 수사가 가식적이지만 왜 꼭 필요한지 온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