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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하루 400명 개명…"이름 바꾸면 나아져" 상술 기승

최우철 기자

입력 : 2014.01.06 13:22|수정 : 2014.01.06 13:22

전통 작명법과 유행으로 보는 좋은 이름의 조건


"가끔 내 뜻하고 상관없이 행동으로 실수가 나오는 이름이에요. 꼭 바꾸는 게 좋아요."

  개명을 권하는 여성 역술인의 말투는 단호했습니다. 30대 중반 남성인 취재팀의 한자 이름을 보자마자, 개명 필요 소견이 나왔습니다. 이름 풀이를 받은 곳은 전문 작명소가 아닌, 서울 신촌의 한 사주 카페였습니다. 이 일대 작명료 시세는 20만 원입니다. 역술인은 상담을 받고 일어서는 취재팀에게 신용카드도 가능하니 즉시 개명 효과를 누리라고 조언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한 해 400명의 이름을 지어준다고 주장했습니다. 굳이 법원에 개명 신청을 낼 생각이 없더라도, 이름을 비공식적으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했습니다. 새로 이름을 만들어 줄 테니, 도장만 새로 파서 지니고 다녀도, 부적과 같은 효과가 있다는 거였습니다.

  서울 강남역 일대와 신촌, 명동 등 대부분 사주 카페에선 언젠가부터 개명 상담을 해주고 있습니다. 개명이 필요하냐고 물으면 돌아오는 답은 거의 똑같습니다. 해서 나쁠 건 없다는 겁니다. 그 전제는 사주는 바꿀 수 없으나, 이름은 바꿀 수 있다는 논리였습니다. 한 역술인은 "정해진 사주가 95%라면 이름으로 바꿀 수 있는 여지가 5%는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름은 옷이나 마찬가지라 옷을 잘 입으면 사는 게 편안하고, 사주대로 산다는 말보다 이름대로 산다는 말이 맞다"라는 역술인도 있었습니다. 이름을 바꾸면 조금이라도 삶이 나아진다는데, 솔깃할 만한 조언입니다.


한해 16만 명 개명 신청… 수요 증가에 상술 기승

민원 캡쳐_500  이렇게 개명을 권하는 역술인이 많은 건, 그만큼 수요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서울 서초구에 있는 서울가정법원 종합민원실엔 매달 650여 명, 주말을 뺀 평일엔 평균 30명이 개명허가신청서를 내러 옵니다. 이 가운데 70~80%는 미성년자가 아닌 성인 신청자입니다.

  우리나라의 개명 신청자는 2002년 4만 6천여 명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이 개명을 원칙적으로 허용한 2005년 이후 신청자가 급증했습니다. 2006년 10만 명을 넘었고, 2009년 한 해 동안 무려 17만 4천여 명이 이름을 바꿔달라고 법원에 개명신청을 냈습니다.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법원에 개명허가신청서를 낸 사람은 80만 7천여 명. 2010년 전후로, 한해 평균 16만 1천여 명이 자신의 이름을 바꾸길 원하는 겁니다. 

  같은 기간 법원이 개명신청을 받아들인 인용률은 94.1%에 달합니다. 법원은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중시해 개명을 원칙적으로 허용했습니다. 범죄 사실을 숨기기 위한 목적 등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마음만 먹으면 이름을 바꿀 수 있다는 겁니다. 하루 442명 꼴로 개명을 신청하는데, 94%인 415명이 매일 새 이름을 얻는 겁니다. (법원이 아직 연령대별 통계를 집계한 적은 없습니다.)

  개명 상담이 무조건 엉터리라고 말할 순 않습니다. 사주나 궁합 등 음양오행설에 기초한 동양적 심리 상담은 분명히 치유의 효과가 있습니다. 다만, 상술이 문제입니다. 개명을 원한다고 해서 좋은 이름을 권하고 많은 돈을 받는데, 좋은 이름에 대한 판별이 제각각이면 문제인 거죠.

  처음 말씀드린 취재팀의 이름엔 '갑(甲)'자가 들어 있습니다. 이 글자를 놓고 여성 역술인은 실수를 부르는 이름이니 꼭 바꾸라고 했다는 말을 썼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역술인의 해석은 정반대였습니다. 50대의 한 남성 역술인은 "어떤 분이 이름을 지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름이 나쁘다고 보이지는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개명할 필요도 없는 이름이라고 했습니다.

  사주 카페의 작명료는 비교적 싼 편입니다. 이른바 유명 학자의 수수료에 비하면 그렇습니다. 2년 전 이름을 바꾼 이재운 씨는 우리나라 최고의 성명학자라는 사람을 찾았다고 합니다. 150만 원이 기본 비용이었습니다. 그는 "작명에서 전국 세 손가락 안에 든다는 사람을 찾아갔더니 80만 원을 요구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옛 이름이 이운수였던 그는 자신의 이름이 가볍게 느껴져 개명을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이재운이란 이름을 지었는데, 크게 만족한다고 말했습니다.


"음양오행은 거들 뿐"… 좋은 이름의 조건

  '좋은 이름이 뭐기에!' 취재를 할수록 '상술'에서 작명법, 또 좋은 이름의 의미에까지 관심은 옮겨갔습니다. 우선, 좋은 이름이란 게 있긴 한 걸까요. 음양오행설에 기초한 전통 작명법에 따르면, 대답은 '그렇다' 입니다. 만물에 음양오행이 있다는 사상은 중국 전국시대 이후 폭넓게 확산했습니다. 일단 타고난 사주를 이 원리로 풀이할 수 있는데, 이름은 사주를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가진 이름은 대부분 한자로 쓸 수 있습니다. 당연히 한글로 된 이름이기 때문에, 이름을 읽을 때 각자의 독음이 있습니다. 전통 작명법은 한자 획수와 한글 독음 각각에 음양오행을 따진다고 합니다. 주어진 사주와 큰 충돌을 빚지 않도록, 두 요소의 음양오행이 잘 고려된 이름이 좋은 이름이란 겁니다.

  그런데 두 요소 가운데 어떤 것을 중시하느냐에 따라 작명법은 10개 넘는 방식으로 나뉜다고 합니다. 또, 역술인마다 그 적용 방식이 다릅니다. 작명법에 따라, 그걸 사용하는 역술인에 따라 좋은 이름의 조건을 다르게 볼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김만태 동방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는 "모든 작명 방법들을 충족시키는 좋은 이름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럼 좋은 이름은 어떤 이름일까요. 김 교수는 "음성으로 읽히는 소리가 운명에 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믿음은 모든 문화권의 공통된 요소"라고 말했습니다. 이름을 부를 때, 그 음성 속에 좋든 나쁘든 뭔가 영향력이 있다는 믿음은 보편적인 문화 현상이란 겁니다. 그런 측면에서 우선, 부르기 좋은 이름이 좋은 이름입니다. 특히 표음 문자인 한글 이름은 더욱 그렇죠.

  그다음으로 고려할 건 의미라고 합니다. 한글이든 한자든, 이름은 개인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개별성의 도구입니다. 반면, 모든 이름이 다를 순 없으므로 중복성도 지니고 있죠. 여기에 어느 나라의 이름이든 '어떤 집안 누구 아들딸'이란 표식 즉, 계통성을 담고 있습니다. 이런 요소 속에 그 사람이 어떻게 살길 바라는 의미가 담깁니다. 그 바램 혹은 욕망은 여덟 글자로 요약됩니다. '무병장수 부귀영화'. 김 교수는 행복한 삶의 욕망을 이름에 투영하려는 건, 모든 문화권, 모든 시대 인간이 보여주는 공통된 본능이라고 말합니다.

  나 또는 나의 자녀가 부르기 좋고 의미 있는 이름으로 살며 행복을 누리길 바라는 소망. 그것을 이름에 담을 때, 사람들은 준거를 찾게 마련입니다. 우리 전통에 뿌리내린 '거대한 통계학', 음양오행설을 기초로 이름을 짓는 건 어쩌면 당연한 현상인지도 모릅니다.

  말씀드렸듯이, 모든 작명법을 충족하는 좋은 이름은 없습니다. 결국, 독음과 의미 요소에 음양오행 상 문제가 있는 이름은 아닌지 검증을 거쳐 짓는 게 최상의 방법입니다. 자신 또는 소중한 타인의 행복을 바라는 작명 절차는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핫'한 이름에도 유행이 있다

 취재파일_유행 연간 개명 신청 16만 명 시대. 이 열풍 아닌 열풍의 바탕엔 20,30대의 이름에 대한 인식 변화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과거 부모가 준 이름을 평생 소중히 여기던 태도와 달리, 젊은 세대는, 이름 역시 자기 정체성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로 비교적 가변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개명 신청 건수는 해마다 비슷한 수준을 유지할 걸로 보입니다.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기초교양학부 교수는 "이름이 정체성을 담는 도구인 만큼, 그 이름이 하나여야 한다는 것 인식도 고정관념일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조선 시대만 살펴봐도, 아명과 호, 필명, 친구 간에 부르던 이름 등 여러 이름으로 자신을 표현했단 겁니다. 스스로 이름을 정해서 태어나는 사람은 없고, 사회 변화 역시 급격한 데, 이름을 바꾸어선 안 된다는 인식 역시 갈수록 희미해질 거란 얘기입니다.

  이름을 바꾸는 데는 '무병장수 부귀영화'를 희구하는 마음 외에도 개성을 찾고자 하는 속성도 있습니다. 이름엔 개별성과 중복성이란 양면이 있는 탓에 시대에 따라 유행하는 이름도 다르죠.

  대법원의 출생 신고 이름 분석을 보면, 이름의 변천사를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1945년 남자아이는 영수, 영호 영식 등 '영(永)'자 들어간 이름이 많았습니다. 여성은 단연 영자, 정자, 순자 등 '자(子)'자가 압도적이었죠. 30년이 흐른 1975년엔 남성은 정훈, 성호, 성훈, 성진 등 '성'자 전성시대, 여성은 미영, 은정, 은주, 은영 등 '은'자 유행 시대가 열립니다.

  1980년대 들어선 한글 이름짓기가 젊은 부부 사이에 크게 유행했습니다. 박차고나온놈이샘이나, 조아라우리고은이 등 파격적인 이름부터 이슬, 슬기, 초롱, 한별, 아람, 보람 등 다양한 한글이름이 여자아이를 중심으로 많이 지어졌습니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한글이름 열풍은 된서리를 맞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진학하면서, 가벼워 보인다거나 놀림감이 된다는 등의 불만이 나오기 시작한 탓입니다.

  그럼 요즘 대세 이름은 뭘까요. 2006년부터 남자는 민준, 여자는 서연이란 이름이 최고 인기입니다. 한자 표기가 가능하면서도 세련돼 보이는 이름들입니다. 최근엔 중국의 부상으로 한자 표기가 가능하면서도 영어 발음이 어렵지 않은 이름이 선호된다고 합니다. 대법원이 집계한 최근 5년 치 통계를 볼까요. 개명한 사람이 가장 많이 희망한 이름은 남성은 민준, 지훈, 현우 순이었고, 여성은 서연, 지원, 서영이 1위에서 3위를 차지했습니다.

  좋은 이름을 통해 행복한 삶을 희구하면서도 개성을 표현하려는 욕구는, 개명 열풍으로 표출될 걸로 보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좋아하는 이름을 찾다 보면, 되려 개성을 잃는 역설도 있습니다. 좋은 이름 찾기에 보탬이 되길 바라며,2008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 법원에 접수된 개명 희망 이름 10선을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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