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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채널 SBS]
이규혁이 올림픽 무대에 처음 나선 것은 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94년 릴레함메르 올림픽 때입니다. 그 때부터 한 차례도 거르지 않고 올림픽에 나섰으니 소치 올림픽을 기준으로 강산이 두 번 변할 동안 6차례 도전을 이어가는 셈입니다. 이렇게 동-하계 한국 선수를 통틀어 역대 최다 올림픽 무대에 나서는 이규혁은 아직까지 단 한 개의 메달도 따내지 못했습니다.
15살에 출전한 릴레함메르 올림픽에서는 결과물을 얻기에는 너무 어렸고, 1998년 나가노 올림픽 때는 부담감 탓인지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 채 500m에서 8위, 1,000m에서 13위에 그쳤습니다. (이규혁은 나가노 올림픽을 3달여 앞둔 2007년 11월에만 1,000m에서 3차례 세계 기록(비공인 기록 포함)을 경신했고 이 때문에 모든 언론의 관심이 이규혁에게 집중됐습니다. 당시 이규혁을 지도하던 김관규 대표팀 코치(밴쿠버 올림픽 감독, 현재 빙상연맹 전무)는 나가노에서 이규혁의 예상 외 부진에 속이 상해 득남 선물(김관규 코치는 이규혁의 경기 전날 첫 아들을 낳았습니다.)로 받은 양주를 축하주가 아닌 눈물주로 다 마셨다고 합니다.)
이규혁은 나가노 올림픽 이후 한동안 부진에 빠졌고 2002년 솔트레이크 올림픽에서 500m 5위, 1,000m와 1,500m에서 각각 8위를 기록했습니다. 또, 2006년 토리노 올림픽 1,000m에서는 3위에 불과 0.05초를 뒤져 메달의 꿈을 날렸습니다. 4차례의 올림픽 무대에서 좌절을 맛 본 이규혁은 절치부심하며 단거리 종목에 집중했고 우리 나이로 30살이 되던 2007년부터 최고의 스프린터로 거듭났습니다. 2007년과 2008년 세계 스프린트 선수권을 연거푸 제패했고, 밴쿠버 올림픽 직전에 열린 2010년 세계 스프린트 선수권에서도 정상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참가한 밴쿠버 올림픽에서 이규혁은 경기 직전까지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했습니다. (밴쿠버 올림픽 500m 경기 사흘 전 이규혁의 연습 기록이 모태범보다 0.2초 가량 빨랐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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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또 한 번 도전의 기회를 잡은 이규혁은 이제 내년 2월 소치에서 마지막 질주를 남겨 놓고 있습니다. 그 결과가 화려한 피날레일지, 또 한 번의 눈물일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있습니다. 우리는 20년 동안 하나의 꿈을 향해 달려온 선수를 보았고 이제는 후배들이 그 발자국을 따라 한국 빙상의 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포기를 몰랐던 이규혁의 도전은 결과에 상관없이 박수를 받아 마땅합니다.
(영상제공: SBS올림픽기획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