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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뱅쇼'가 생각나는 주말-와인 즐기는 법 ②

조정 논설위원

입력 : 2013.12.01 13:24


복잡한 레드 와인 선택에 자신이 없으면 화이트 와인을 추천한다. 깊이 들어가면 화이트 와인도 종류와 선택의 폭이 무궁무진하지만 비교적 쉽게 골라 마시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부르고뉴의 대표적인 화이트 와인인 샤르도네(Chardonnay)와 쇼비뇽 블랑으로 만든 상세르(Sancerre), 알자스 지방의 리즐링(Riesling)등은 파리 생활의 마지막 1년 동안 내 혀를 즐겁게 했던 화이트 와인이다. 와인 초보자인 필자도 그 특유의 향과 맛을 구별해가며 각각의 와인을 즐길 수 있어 무척 행복했다. 화이트 와인은 해산물 뿐 아니라 한식을 비롯한 여러 가지 음식에 두루 잘 어울린다는 장점이 있다. 또 마그네슘과 칼슘이 풍부해 골다공증 등 노인성 질환에도 좋은 효과가 있다고 해 프랑스 실버 계층의 사랑을 받고 있다.

파리 최고의 한식당은 부자들이 많이 사는 16구에 자리한 우정식당을 꼽는다. 한국의 명사들이 파리를 방문하면 한번 쯤 들리는 곳이고 한식을 좋아하는 프랑스인 단골손님들도 많다. 우정의 사장 조성환씨는 한인 가운데 손꼽히는 와인 전문가다. 그 분과 교분을 쌓으면서 화이트 와인의 참맛을 배우게 되었다. 조사장 덕분에 많은 와인 딜러들이 모이는 와인 품평회에 참여할 수 있었고 파리 유명 레스토랑의 사장, 주방장들이 모이는 와인 파티에도 함께 할 기회가 있었다. 품평회에서는 와인 생산자들이 저마다 자기 밭에서 기른 포도로 정성스레 만든 와인을 직접 가져와 선보인다. 나는 그들이 소개하는 모든 와인이 너무나 훌륭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경지가 높이 오른 분들에게는 와인이 ‘마음의 술’이었다. 왠만한 와인을 모두 섭렵했다는 우정의 조사장은 프랑스 와인의 양대 산맥인 부르고뉴와 보르도 와인 중에 부르고뉴 와인을 더 높이 평가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보르도는 지나치게 상업화돼 인간미가 없다는 것. 큰 바이어에게는 헬기까지 제공하며 공을 들이면서도 소규모 상인에게는 별 관심을 두지 않는 보르도 사람들이 야박하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자기 포도밭에 대해 우직한 자부심을 갖고, 단골 고객을 친구처럼 여기는 부르고뉴를 조사장은 더 좋아했다. 와인 맛도 부르고뉴가 낫다고 칭찬했다. 내가 보기에 마음이 가는 곳이 술도 더 맛있는 법. 조사장은 부르고뉴 사람들의 고집과 인간다움에서 훌륭한 와인 맛을 찾은 듯 했다.

가격과 빈티지로 와인을 재단하지 말고 자신만의 작은 추억이 담긴 와인을 많이 만들어 보는 것도 와인을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실제로 많은 프랑스인들이 아들을 낳고 딸을 낳은 해의 와인을 많이 구입해 지하 꺄브(cave)에 보관한다. 자녀들이 성장해 결혼을 할 때 자녀의 나이와 같은 와인을 친지, 친구들과 나누며 의미를 되새긴다. 추억이 될 만한 자리에서 당시에 음미했던 와인을 기억하고 훗날 다시 찾아보는 재미도 와인이 주는 또 하나의 재미요 선물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괜찮은 와인 찾는 법을 살펴보자. 와인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다면 레스토랑에서는 하우스 와인을 시켜보자. 값이 싸고 메뉴판에 없다는 점 때문에 체면을 구긴다는 생각은 오산이다. 프랑스 전국을 여행하면서 도시와 시골 마을의 레스토랑에서 만난 하우스 와인은 대부분 깊은 인상을 주었다. 자존심 강한 식당 주인들은 절대로 허접한 와인을 하우스 와인으로 내놓지 않는다. 가격대비 맛과 향이 우수한 와인을 자기 식당의 얼굴로 소개한다. 주인장의 취향과 배려가 담긴 술을 비교하며 경험해 보는 것도 무척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하우스 와인이라는 개념이 아직 확고하게 정립돼 있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최근 서울 청담동 등지의 몇몇 유명 와인 레스토랑에서는 프랑스식으로 하우스 와인에 공을 들이는 곳이 생겨나고 있다니 반가운 소식이다.

초보자가 대형 마트에 와인을 사러 갔다면 병에 붙은 딱지를 눈여겨보자. 와인 생산국에서는 매년 수많은 와인 경연대회가 열린다. 규모야 천차만별이지만 이런 대회에서 입상한 와인들은 어느 정도 품질이 보장된 것들이 많다. 메다이 도(medaille d'or 금메달), 메다이 다르정(medaille d'argent 은메달)등으로 구분되는 경우가 많고 딱지가 와인 병목이나 아래 부분에 붙어 있다. 얼마 전 마트에 갔더니 이런 류의 와인들도 수입되고 있었다. 자신이 없을 때는 금, 은메달 딱지 붙은 놈으로 고르면 실패할 확률이 낮아진다. 한 가지 더, 소비자가 일일이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서민들이 접하는 보통 와인은 빈티지나 품종보다 보관 상태에 따라 와인 맛이 좌우되는 것을 많이 보았다. 3년전 특파원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이삿짐 사이에 끼워 넣어 들고 온 와인 몇 십 병의 운명이 지금은 크게 달라져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운 좋게 서늘한 김치 냉장고를 차지한 놈들은 아직까지 제 맛을 뽐내고 있고, 자리가 없어 다용도실에 처박힌 놈은 여름을 지나면서 향기를 잃었다.

어느 유명 요리사는 와인 세계에도 교조주의가 판치고 있다고 개탄했다. 형식과 체면에 얽매여 부담 없이 와인 즐길 기회를 잃어버리고 심지어 와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까지 있다니 한심한 노릇이다. 와인은 마음으로 마시는 술이다. 편하게 즐기자. 오늘 저녁 김치 두루치기에 ‘코트 뒤 론’ 한 병 곁들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