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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대륙의 도둑에게는 道가 있다

우상욱 기자

입력 : 2013.11.26 14:00|수정 : 2013.11.26 14:00


공자가 살던 시대에 중국에는 도척이라는 유명한 도둑이 있었습니다. 9천명에 달하는 부하를 거느리고 천하를 종횡하며 약탈과 살인을 일삼는 악당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도둑은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습니다. 노나라의 대학자 유하계가 자신의 친형이었고 공자를 변론으로 꼼짝 못하게 할 만큼 달변이었습니다.

도척에게 한 졸개가 "도둑에게도 도덕이 있냐고" 물어보자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천하에 도덕이 없는 분야가 어디 있겠느냐. 첫째, 남의 집에 재물이 어디 숨겨져 있는지 아는 것을 聖(성스러움)이라 한다. 둘째, 도둑질을 할 때 남보다 먼저 들어가는 것은 勇(용기)이다. 셋째, 도둑질을 하고 가장 나중에 나오는 것을 義(의리)라 한다. 넷째, 도둑질을 할지, 말지를 잘 판단해야하니 이를 知(지식)라 한다. 다섯째, 훔친 재물을 동료들과 공평하게 나누니 이를 仁(어짊)이라 한다. 이 다섯가지를 갖춰야 큰 도둑이 될 수 있다."

말은 그럴듯 합니다. 하지만 떼로 도둑질을 잘하기 위한 도리이지 피해자를 생각하는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도덕이라 이름 붙이기에는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최근 중국에 도를 갖춘 도둑이 있어 화제입니다.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쳤으니 나쁜 짓이 분명합니다만, 그 와중에도 피해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갸륵하다는 반응입니다.

도둑의 도2안후이 안칭시에 사는 22살 아가씨가 지난 20일 겪은 일입니다. 이 아가씨가 몹시 피곤해 초저녁부터 곯아떨어졌습니다. 새벽 1시쯤 은행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그 시간에 누군가 아가씨의 현금카드에 잔액이 얼마 남았는지 조회를 했다는 것입니다. 아가씨는 부랴부랴 소지품을 점검해봤습니다. 노트북, 현금과 현금카드를 넣어둔 지갑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가씨는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관들이 찾아와 방안을 수색했습니다. 잠금장치가 강제로 열린 흔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가씨의 공책에서 범인이 남겨둔 글을 발견했습니다.

내용인즉 이렇습니다. "각씨!-중국어로 아가씨라는 뜻의 姑娘(구냥)을 艸+姑凉(구량:버섯과 차가움)으로 오기- 이 물건들(직장 신분증, 슈퍼마켓 포인트카드)은 다시 돌려드립니다. 제게는 필요가 없네요. 밤에 잠을 잘 때는 문과 창문을 잘 잠그세요. 죽은 듯이 주무시더군요. 혼자서 세상을 살아가기가 쉽지 않네요. 밥을 먹어야 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이 글을 본 경찰은 실소를 금치 못했습니다. '증거를 남기고 간 것으로 봐서 초보 도둑'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누리꾼들은 "도리를 아는 도둑이다", "양해를 구하는 글까지 남길 만큼 여유가 있으니 경험 많은 도둑이다", "도둑이 애교가 있다" 등등 비교적 우호적인 댓글을 더 많이 남겼습니다.

도둑의 도3이번에는 후난성 창사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쩌우모씨는 차로 4시간 거리에 있는 이양시의 친구 결혼식에 참석했습니다. 결혼식은 유쾌했습니다. 축하주를 상당히 마셨습니다. 그런데 창사로 돌아갈 일이 걱정이었습니다. 마침 창사역으로 간다는 낯 모르는 사람 3명과 각자 50위안씩 내고 함께 택시 한 대를 타기로 했습니다. 택시 안에서 술기운이 올라 쩌우씨는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

창사에 도착해 택시 기사가 깨워줬습니다. 내리려던 쩌우씨는 안주머니에 넣어둔 최신 스마트폰이 없어진 것을 깨달았습니다. 택시 기사는 쩌우씨 옆 자리에 탔던 파란색 옷의 남자가 기차역으로 가는 길에 갑자기 세워달라더니 내렸다고 말했습니다. '아뿔사, 그 남자가 훔쳐갔구나!' 쩌우씨는 집으로 돌아와 자신의 휴대전화로 여러 번 전화를 걸어봤지만 이미 전원이 꺼진 상태였습니다. 휴대전화가 없어진 것도 속상했지만 그 안에 저장해둔 수많은 연락처가 더 큰 일이었습니다. 따로 보관해두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도둑의 도4
쩌우씨는 자신의 휴대전화로 문자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당신이 택시에서 내 옆에 앉았던 사람인 걸 안다. 안심해라. 당신을 찾을 생각은 없다. 다만 한 번 스마트폰 안을 살펴봐라. 내가 얼마나 곤란한지 알 것 아니냐. 내 말을 이해한다면 아래 주소로 휴대전화를 보내다오."

쩌우씨는 원래 시원하게 욕을 쓴 문자 메시지를 보낼까도 생각했지만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에 간곡하게 부탁하는 글만 보냈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택배로 자그마한 상자가 왔습니다. 상자 안에 휴대전화는 없었습니다. 대신 쩌우씨 휴대전화에 보관돼 있던 각종 연락처 1천개를 일일이 손으로 베껴적은 11장의 편지가 들어있었습니다. 사람 이름과 그의 휴대전화, 집전화, 사무실 전화 등을 빠짐 없이 적었습니다. 쩌우씨는 어이가 없으면서도 그 휴대전화 도둑의 정성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실 문자 메시지를 보내면서 휴대전화를 돌려줄 것이라는 기대는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그럴 거면 아예 훔처가지도 않았겠죠. 11장에 달하는 연락처를 적은 종이를 보면서 제 눈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1번부터 1천번까지 빠짐없이 모두 손으로 적었더군요. 아마 적어도 반나절은 걸렸을 것입니다. 손에 병이 나지 않았을지 걱정될 지경이었습니다." 쩌우씨는 도둑이 휴대전화를 훔쳐간 짓은 꽤씸하지만 그래도 마음이 아주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다며 웃었습니다.

중국 고대의 대사상가인 장자는 모두에 쓴 도척의 일화를 전하면서 이렇게 평했습니다. "착한 사람도 성인의 도를 얻지 못하면 그 몸을 편안히 할 수가 없고, 도척과 같은 도둑도 성인의 도를 얻지 못하면 훌륭한 도둑질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세상에는 착한 사람이 적고 악한 사람이 많기 때문에, 성인의 도란 결국 세상을 이롭게 하기보다는 해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치는 도둑은 물론 나쁜 사람입니다. 하지만 장자의 눈에는 다른 사람을 위한다, 세상에 봉사한다, 입에 발린 소리를 하면서 사실은 더 큰 재물과 명예, 권력을 훔치는 위정자들이 더 나빠 보였습니다. 더 큰 도둑이라고 비난했습니다.

한 끼 밥을 위해, 푼 돈을 위해 물건을 훔쳐가지만 그래도 피해자에게 미안해하는 중국의 도둑들은 일부 위선적인 정치인들보다 훨씬 양심적이고 애교 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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